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만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 한성기 (韓性祺.1923~84) '역' 전문
간이역은 슬프다. 한때 나는 그런 간이역 역장이 내 장인쯤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역을 급행열차는 무시해버리고 통과한다.
역장은 그런 열차의 뒤에 남아 신호 깃발을 내린다.
한성기의 '역' 도 그런 역이다.
쓸쓸한 코스모스 가꾸어진 작은 역을 그 자신의 자화상으로 삼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이랴. 이렇듯 시인의 외로움 같은 것이 드문 세상이기도 한데….
(1999.3.18 고은) ----- 한성기 시인은 1923년 함경남도 정평군 광덕면에서 출생, 1942년 함남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당진군 합덕읍 신촌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후 중등학교 서예교사 자격에 합격하여 합덕중학교, 대전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대전에 정착하게 된다.
1946년 첫 번째 부인 정씨와 결혼을 하였으나 한국전쟁의 와중에 부인이 병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그의 나이 불과 25세 때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를 썼으나 1959년 신경쇠약으로 병을 얻어 학교를 그만두고 경상북도 금릉군 어모면 소재 용문산 기도원에 들어가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시작 활동에 전념하다가 1984년 뇌일혈로 쓰려져 8일 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두고 만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을 잃은 외로움은 그를 자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시인은 자연을 가까이 하며 주된 관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작품은 사색적 탐구가 아닌 관조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경향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