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드라마 얘기를 좀 할까 합니다. 드라마를 좀 더 깊이 감상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 정치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SBS특집 뿌리깊은 나무. 세종이 쌍욕을 서슴지 않고 노비 똘복이 왕에게 칼을 겨누는 등 픽션이 넘쳐 정통 사극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좋은 역사드라마를 봅니다. 세종의 치적과 사람의 크기, 인간적 고뇌를 담아내기에는 좀 역부족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바보(세종을 가리킴), 고작 글자때문에." 뿌리깊은 나무 13회에서 본원 정기준이 한 대사입니다. 드라마에서 정기준은 왕도정치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후계자로 그려 집니다. 유림의 지존, 그의 새 글자에 대한 인식이 "바보, 고작" 이 두 마디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찮은 일이란 것인데, 나아가 유림의 정신적 지주 혜강 선생은 새 글자를 이적(오랑캐)의 문자라 질타합니다. 당시 유림의 새 글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와 같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한글이 주는 의미와 고마움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한글이 태고부터 있었던 것인 양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한글날이 우리나라 최대의 국경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혜택의 크기와 지속성에서 그 어떤 역사적 사건도 한글창제를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글과 세종대왕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한글이 얼마나 큰 난관을 뚫고 만들어 진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그 얘기를 다루고 있지만, 드라마가 상세히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제가 좀 보충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이 드라마는 어렵습니다. 제대로 이 드라마를 감상하려면 역사지식이 좀 있어야 합니다. 역사학자들이 그런 배경지식에 대해 좀 알려주면 좋으련만 고고한 학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니 모자란 제가 하게 되는군요.
밀본.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정도전과 사대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중국에서 공맹의 유학사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사람이 주자인데 이를 고려에 도입한 사람이 문성공 안향입니다. 안향의 영향을 받은 고려 말 학자들이 길재, 정몽주, 정도전 등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주자가 역설한 왕도정치의 이상을 이 땅에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있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바, 정몽주 등은 고려왕조 속에서, 정도전은 새 왕조를 열어 왕도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조선은 흔히 이성계가 열었다고 알고 있지만, 세 사람의 합작품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입니다. 바로 이성계를 얼굴로 내세우고 이방원과 정도전이 실질적 일을 맡아 한 것이지요. 정도전은 개국 후 경국대전을 만들어 조선 통치시스템의 근간을 확립하였는데, 그것은 지금의 헌법과도 같이 조선 왕조 전체를 지배하였습니다. 그 체계는 근대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간략히 살펴보면, 경연제도를 통해 신하와 왕이 토론과 합의를 거쳐 나라일을 결정하였으며, 사관을 두어 정무의 모든 언행을 기록하되 당대의 왕은 그 기록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왕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였습니다. 간관을 두어 언로를 개방하였는데, 간관의 직언은 그것이 왕조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한 보장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의정부를 두어 재상으로 하여금 육조(행정 각 부)를 관장하게 하여 왕권을 견제하였습니다.
이런 장치들은 세습왕이 어리석을 수도, 포악할 수도 있기에 신하들이 중심이 되어 왕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이 때, 신하란 신분상의 양반이 아니라 엄격한 교육과 학문을 닦아 과거를 통과한 관료들을 이르는데, 이를 사대부라 일컬었습니다. 정도전은 이같은 통치 시스템을 안착시키고자 이성계를 꼬득여 강직한 이방원을 배제하고 정종을 제2 대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종을 폐위하고 정도전을 주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처가인 민씨 일파를 죽이고 나중에는 아들(세종)의 처가인 심씨 일가까지 죽입니다. 왕권에 도전할 싹을 다 잘라 버린 것인데, 그것은 왕도정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대부의 나라라는 이념을 지켜내고자 만들어진, 정도전의 유지를 받드는 비밀결사체가 밀본입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문서화된 유지나 결사체는 없었다고 합니다만, 그 정신은 살아 있었기에 밀본이라는 상상력을 펼친다 하여 역사적 진실에 아주 어긋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지요.
사대부의 나라를 만들어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주자학(성리학)의 유림들에게 한글(새 글자)을 만드는 일은 정기준의 말대로 하찮은 것이었고, 혜강의 직언처럼 중화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통치의 교본이 되는 공맹의 사상과 주자의 학문을 기록한 한자만으로 부족함이 없었기에 새 글자는 유교 이념과 그 종주국으로서의 중국에 대한 반역으로 이해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세종은 정인지 등 극소수의 어용(유림들의 관점에서)학자들만을 데리고 극비리에 새 글자를 연구하였고 그 완성품을 기습적으로 반포하였던 것입니다. 세종은 그의 사후에 반드시 한글이 유림들에 의해 짓밟혀 사라질 것이라 예상하였고,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용비어천가를 짓게 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에서 태조, 태종, 여섯 임금의 행적을 한글을 사용하여 시가로 만든 것으로 그것이 한글을 사용한 최초의 문헌인 바, 왕들의 행적에 대해 감히 시비를 걸지 못하게 함으로써 한글을 보전코자 하였던 것입니다.
왕의 예상대로 세종 사후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은 성종임금과 김만중, 정 철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바른 글로 대접 받지 못 하고 언문으로 전락하여 겨우 명맥만을 유지합니다. 한글이 겨레의 문자로 새로이 조명을 받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나라를 잃은 후입니다. 만일 나라를 잃지 않았다면 한글이 겨레의 문자가 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지요.
한글은 이렇게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과 중국적 세계질서에서 나름의 독자성을 추구하고자 했던 꿈을 바탕으로 90 %가 넘는 사대부 유림들의 반대와 중국의 감시를 뚫고 아주 어렵게 만들어졌고, 세종의 안배에 의해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비로소 우리의 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글자가 된 지 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는 한글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학술서적을 쏟아내었고, 아름답고 뛰어난 문학작품을 창작하였습니다.
한글은 오늘의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성취를 가능케한 일등 공신이자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게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독립유공자입니다. 나아가 정보화시대에 가장 효율이 높은 문자로서 정보화문명을 한국이 이끌게 하는 데 크나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왕이 태평한 태평성대는 없다. 나는 지옥 속에 살고 있다." "(아버지 태종이 무수히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걸 보며) 기다리고 인내하고 설득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말한 대사입니다. 세종이 얼마나 백성과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일생을 살아 왔는지가 이 짧은 대사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측우기와 해시계, 물시계 등 과학기술을 진작하여 백성의 농사일에 활용케 하였고, 아악을 집대성하고 향약집성방을 편찬하였으며, 활자를 정비하여 서적을 보다 쉽게 보급하였고, 집현전이라는 왕립학술기관을 만들어 학문을 진흥시켰습니다. 물론 최대의 치적은 한글창제. 세종임금은 열 명의 훌륭한 왕이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 해 내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선을 일 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는 이념과 지역이라는 티끌과 족쇄를 스스로 지우고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한 때는 경제대통령이란 실체 없는 이미지로 지도자를 선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과연 그것이 잘 된 선택이었는지 국민 모두 한 번쯤은 냉철히 반추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시는 똑같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더는 종북좌파 타도, 반미자주, 반독재 민주, 그런 이념이 선택의 제 1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실체를 알지도 못 하는 이미지에 즉흥적으로 나의 표심을 내맏겨서도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누가 진실로 오랜 세월 참고 인내하며 내일을 준비해 왔는지, 누가 과연 수많은 인재를 규합하여 충실한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해 왔는지, 누가 세종 반만큼이라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진실로 가지고 있는지. 냉정한 눈으로 평가하고 비교하여 지도자를 선출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념과 철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생각만이 옳고 남은 타도의 대상이라는 이 낡은 이분법의 사고를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세종의 한글창제도 당시에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크게 훼손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미지와 이념의 잣대가 아닌 지도자의 참된 내용을 보고자 노력할 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런 쪽으로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고, 그래야 진정 훌륭한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번 생각을 크게 고쳐먹어야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나라의 번영은 지도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