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레지오회합과 상급평의회 월례회의 그리고 연수회를 통한 나눔에서 여러가지 의견을 듣게 되는데 여기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단체에서 신앙의 모든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레지오는 1920년경 에이레의 불안한 환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열악한 여성권리와 병들어 신음하는 이들에게는 물질적인 도움보다는 기도가 더 절실했던 것이기에 그 당시 물질지원해 주는 단체인 빈첸시오하시는 이들이 모임을 가짐으로 시작된것입니다
1970년도 아마도 광주.전주는 지금처럼. 물질로도 풍요롭지 못했으리라 여깁니다 성서본문을 들으려면 본당미사때나 피정 그리고 특이한 때 성직자나 수도자의 강론이나 가르침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는 개신교와 함께 만든 공동번역성서가 나오기이전이었 지만 신부님들은 영어성경과 영어성경주해서를 참조해서 강론을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각가정이나 본당에서 쉽게 성서를 접할수가 있고 편리하게 미사에 사용되는 성서귀절은 매일미사책으로 발행되어서 각자 이를 읽을수가 있었지먀 그때에는 미사때에 강론을 통해서 듣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그래서 성경을 자주 접하기위해 성서형제회를 만들어서 모임을 하면서 성서이야기와 교육의 기회를 가졌다고합니다 특히 헌장속에서 성서를 연구하고 보급함으로서 제2의 예수가 되자고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분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과 함께 지냈거나 이들로 직접 들을수 없는 우리를 위해 성서가 교회를 통해 발간된 것이기에 성서는 옛날이야기를 적은것이나 좋은말을 모은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 들어와 있어야하는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코이노니아에서 회원이 돌아가면서 그주의 복음말씀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고 함께 하는이는. 이를 바탕으로 대화방향을 정해서 각자의 생활속의 체험한바를 꺼집어내는것이다
그러기에 소식지에 들어있는 묵상자료나 복음개요는 나눔에 필요한 참고자료는 될수가 있는데 내이야기나 우리들의 내용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세째주 자료를 준비하느라고 여기저기서 좋은글을 인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고 제가 바라보는 시야도 한정적입니다
제가 작성할때 지난번에 적은 내용이나 수녀님이나 사비오형님의 글도 읽어봅니다 특히 사비오형님이 여행중에서 겪은 강론이나 이야기들은 나와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어보이지만 우리 삶에 분명. 영향을 줍니다
특히 기억나는것은 우리나라정부가 세계대회에서 공인을 받기위해서 프랑스를 방문한 장면박사일행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글을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식민지를 갓. 벗어난 가난한 나라로 인식되었던 그당시 사정은 암울했고 사절단도 목표를 이루기가 어렵다고 느끼던때에
그들은 프랑스에 있는 어느 수녀원을 방문하였던,,것인데 그곳이 소화데레사의 수녀원이었다고 합니다 이이야기는 천주교인인 장면박사가 아닌 천주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느 작가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성서말씀은 그안에 등장하는 인물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하듯이 이를 읽고 묵상하면서 스스로 아지못하는 사이에 변화되고 이를 함께 듣고 나눗는 사람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성서를 다알고 이해하야만이 말씀이 우리삶안에 뿌리를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말씀은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도 모르게 자란다는 것이다
제가 안산에서 정년직전 2년간 어린이공원에서 청소등 관리를 했다 공원안에는 놀이터가 있고 미끄럼틀 시이소 그네등이 있고 주변은 모래사장이 있다 이곳도 다른곳처럼 비가 오면 모래가 파이고 물이 고이기도합니다만 햇빛이 내리면 곧 말라버리는데
놀랍게도 잠시 물이 있는동안 풀씨가 날라와 이곳에 자리잡고 뿌리를 내리는데요. 이런곳은 제초기를 사용하기가 어려워서 호미로 일일이 제거해야합니다 더운여름에 하루도 멀다않고 모래사장에 번지는 이를 제거 할려면 모자를 쓰고 머리에: 찬물을 뿌려도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