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7 연중 제11주일)
겨자씨의 위력
어릴 적 초등학교 생물 숙제로 강낭콩 키우기가 생각납니다. 샤알레에 솜을 깔고 물을 적신 다음 그 위에 강낭콩 하나를 놓습니다. 매일 관찰 일지를 적습니다. 오늘은 싹이 낫다. 오늘은 뿌리를 내렸다. 오늘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오늘은 잎이 무성해지고 점점 자라나 키가 30cm나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성장·변화되는 모습에 마냥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은 씨앗의 비유입니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고 했지요. 이른바 하느님 나라의 은닉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즉, 하느님 나라는 숨겨져 있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지요. 가끔 이런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할 게 뻔해서 기대초차 하고 있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놀랍게도 일이 잘 풀려 성공하게 된 경우 말입니다. 인간의 실수와 실패를 하느님께서는 선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목 체험을 많이 합니다. 제게 있어 본당 사목, 학교 사목, 교포 사목 모두 어려운 점은 항상 있었지만 저의 부족함을 하느님께서 채워주셨고,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결국 사목이 순조롭게 잘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음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이지요. 겨자씨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떨어지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겨자나무라 불릴 만큼 급속도로 성장해버리는 것이지요. 큰 것은 3m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새들이 깃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겨자씨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작고 보잘 것 없다. 둘째, 그러나 번식력이 대단하여 나무처럼 커버린다. 셋째, 그래서 새들의 안식처가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두고 이 겨자씨의 비유를 하신 것일까요? 바로 갈릴래아 사람들입니다. 요즘말로 갈릴래아 사람들은 소외지역의 빈곤 계층을 말합니다. 그들을 민초라고 말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들은 헤로데 왕과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따로 바쳐야 했습니다. 게다가 순례 중에는 성전세와 같은 종교세를 따로 내야 해서 사실 십일조를 지키지 못하는, 그래서 율법을 어기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어부와 농부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팍팍하고 궁핍했습니다. 시골 출신인 그들은 기득권에 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연명하며 힘들게 살아갔습니다. 반면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서에 등장하는 향백나무는 겨자풀과 다르게 이스라엘의 영광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향백나무는 예루살렘이고, 온갖 새들은 만민입니다. 이제 그 향백나무를 겨자풀이 대신합니다. 비록 겨자풀은 나무가 아니라 풀이지만 새들이 깃들일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랍니다. 다시 말해 민초 갈릴래아 사람들은 보잘 것 없고 가난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씨앗 삼아 영적으로 크게 자라나 다른 사람들의 안식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갈릴래아 출신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나자렛 출신의 예수님과 갈릴래아 출신의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제관 뒤뜰에 풀들이 많습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일부터 뽑지 않고 내버려 둘 때가 있습니다. 꽃 화분과 토마토도 있는데, 이들은 매일 물을 주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합니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곧 죽습니다. 그러나 이름 모를 풀은 다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랍니다. 큰 것은 1m가 넘는데, 자세히 가서 보면 그 꽃도 아름답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은 화분과 잡초를 구분하지만 하느님은 저마다 있는 그대로를 예뻐하시고 사랑하시겠지.’ 어쩌면 잘 생기고 주목받는 향백나무보다 관심 없이 버려진 겨자씨가 자라나 새들의 안식처가 되듯이 하느님은 보잘 것 없고 가련한 이들을 통하여 당신의 나라를 성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성당이 겨자씨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200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이지만 어느 성당보다도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 훌륭한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작다 보니 말도 많지만 작다 보니 서로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제 우리가 겨자씨가 됩시다. 겨자씨가 되어 서로 봉사하고 사랑을 나눕시다. 겨자씨는 비록 풀이지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의 씨앗에서 수백 수천의 씨앗이 나오듯 우리 공동체 또한 숫자를 떠나 영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 때문입니다. 그 땅은 바로 하느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 말씀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부디 6월 예수성심성월, 미사성제와 성경 봉독을 통하여 큰 겨자 나무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