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금시집 [☆소금시☆]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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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시 ]
시와소금 대표시선 001 / 나무아래서(2013.12.10)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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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시」를 펴내면서
날마다 식탁에 오르는 정갈한 시, 반지르르 윤기를 불러오는 시, 거친 성질을 밀어내고 가스에 와서 선뜻 안기는 시, 스스로 제 낡은 몸과 추운 기억을 불살라 타인을 위해 조건 없이 풍장風葬의 삶을 여는 시.
시를 모르는 사람조차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기억의 끝말잇기가 한 세계에서 또 한 세계를 열어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 마실수록 새살이 돋고 뼈가 융기되는 그런 시, 시들……
눈 감으면 더욱 선연한, 진경산수화처럼 맛깔스런 그런시를 찾아나서는 일을 위해 <시와소금>은 늘 앞장서고 있습니다
장황한 수사는 버리고 무수한 써레질로 빚어낸 소금의 결정, 우리 『소금시』는 잘 여문 모국어의 성찬입니다
감히,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 앞에서 소금시집을 선보입니다. 소박하고 정갈한 시집을 통해 따뜻한 나눔의 시대를 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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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시 ★

염전에서
임동윤
저것은,
당신의 흘린 눈물의 꽃
달과 별을 끌어당겨 몸에 가두는
파도소리와 물거품까지도 몸에 쟁이는
대낮의 햇살로 짭짤한 문신을 새기는
당신의 곧고 곧은 이념의 징표 같은
우리들이 오래 지탱해온 팔다리의 골격같은
귀 밑에 오롯이 돋아나는 잔물결 같은
점점 더 순백의 꽃잎으로 눈을 뜨는
검버섯 천둥까지 눈멀게 하는
오로지 단단한 몸으로 식탁에 오르는
저것은,
당신이 흘린 눈물의 꽃
마지막 눈물이 피워 올린 꽃
장어집에서
강희근
장어가 토막난 채로 죽어서 석쇠에 올라와 있다
다비식多毘式은 곧 시작될 것이다 잘 피어오른
숯불이 그의 주검을 뜨거움으로 축복해줄 것이다
그는 다만 죽어 있을 뿐 내생으로 가는 열찻간 침대에 누워
신망애信望愛*의 몸을 지지게 될 것이다
몸에 적힌 신망에 세 글자가 지글지글 다 타고 나면
그는 토막나인 채로 열차에서 부려지고
풋것 이파리에 봉인될 곳이다
봉인이 된 것들은 사람의 입으로 찍혀 들어가
소정의 절차를 밟을 것이다
아, 그가 씹히는 것을 잔인하다 하지 마라
주검을 위한 예의일 뿐
그의 몸은 택배로 갈라져 사람 곳으로 구석구석 스며들어가리라
보라, 장어가 토막난 채로 죽어서 석쇠에 올라와 있다
그가 이 집으로 들어올 때 따라온 바다는 그의 추억과 함께 죽어서
저 사리같이 단단한 소금알로 남았다
이제 이것들도 톡톡 소리내며 맛갈의 다비로 탈 것이다

소금
류시화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ㅓ
소금의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세상의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걸
염막鹽幕을 지나며
나호열
수평선 너머 난바다가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온 날부터
행복한 천형天刑은 시작되었다
푸르고 울렁거리는 그 말
바다의 살을 발라내는 한여름이 지나고
저녁노을
그 불길의 그림자를
허물어져가는 창고 쪽으로 늘어뜨리자
그제서야 바다는 남김없이 재 몸을 화염에 던져주었다
사리로 남은 흰 꽃
발이 없어도 천리를 가고
생의 간간에 슬며시 발자국을 남기는 법
염막 같은 한 사내가 수없이 되뇌인 빛나는 눈물 속에는
독과 약이 함께 부화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소금의 노래
복효근
바다는 뉘를 그려
제 몸에 사리를 키웠는지
곰소 염전에 쌓인 소금더미 보겠네
그대,
혹 소금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푹푹 빠지는 갯벌이거나
난바다 바닷물 속
뒹굴고 나자빠지면서 부서지고
아우성치던 흐느낌도 잦아들어
내 것 아닌 것 바람에 들려주고
햇살에 돌려주고 끝끝내
더 내어줄 수 없을 때까지 내어주고
비로소 부르는 순백의 소금노래를
그대 듣는가
에라 모르겠다 다 가져가라 내던지고
돌아서는 그대 가슴에서
묵주알 구르는 소리 같은 것
눈무링 사리가 되어 내는
그 고요한 소리의 반짝임 같은 것
미루나무 정정
김왕노
자욱한 안개가 흥건히 고여 흘러가는 샛강 가에는 징병당한 장정이 있다
자신의 독을 터뜨리는 큰물이 져서라도 더 큰 강물로 흐르기를
꿈꾸는 샛강,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장정이 있다
대구지역인가 아니면 광주지역에서 징병당한 장정이 있다
나는 그들의 건장한 어깨에서 솟구쳐 오르는 푸른 물총새 울음을 들었다
낮달까지 이르렀는지 낮달이 부르르 떨었다
여름이면 그 푸른 장정과 울력으로
더 깊게 강바닥을 파서 큰 배가 오르내리는 운하를 만들고 싶었다
갓 장가가자 징병당한 장정이 두고 온 색시의 소식
바람으로 끝없이 불어오는 세상의 모든 이파리마저 끝없이 나부낄 것이다
징병이 해제되지 않는 미루나무 장정처럼‘
그리움으로부터 해제되지 않는 나도
그들과 생강 가에서 오랜 노역으로 향수병에 절어 늙어가고 싶었다.
그 생강 가에는 징병당한 사내들이 풍기는 남자 냄시도
안개처럼 자욱하다, 난 낙타가 물 냄새를 맡듯이 킁킁거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굽이 다 닳도록 오래 강둑을 서성거려야 할 것이다

눈물소금
고영민
노을이 염전에 담긴 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나무 그늘 안쪽으로
태양이 기울며 햇살을 밀어 넣는다
눈 밝은 그대여!
화첩畵帖을 넘기며
당신은
먹황새처럼 서 있다
몸이 야위었다
짜다
밑간을 보듯‘
두어 뼘 띠 이삭이 눕는다
나는 도무지 사랑을 모른다
치맛자락을 말아 쥔 묵묵한 손바닥에서
소금가루가
쏟아진다
꽃에 대한 가벼운 담론
진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맹렬한 화염의 땅, 다나킬에
갇혀버린 바다와 천 년을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
그 경계를 살아가는 아파르 부족을 보았다
소금밭에서 소금을 캐내야 하는 맨발의 부역들
네모나게 잘라낸 소금을 짐 지고 가는 낙타와 카라반
그들에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좋은 시절을 가족과 함께할 여가도 없다
그럼에도 삶은 희망이었다
에테오피아의 그 오지에서, 혹은 수천 지하 광도의 탄광에서,
붉은 쇳물이 쩔쩔 끓는 용광로에서도 탱탱한 그들의 등에 피어나는 소금꽃!
뜨거운 햇살의 무게가 저 흰빛으로 뜨고
나비떼 같은 푸른 바람에 피어나는 꽃소금
대파를 치면 조각난 바다에 흰 메밀꽃들 일어선다
화염의 절창, 소금꽃이다
바둑판같은 해주에 바다를 가두고
목도채로 밀고 다니는 염부의 등에도 짭조롬한 흰 메밀꽃이 핀다
염부의 뼈를 녹이여 피어나는 소금꽃
등이 휘어지도록 단내가 입안에서 유쾌해지도록
그대, 삶의 여름을 소금꽃 피워보앗는가
다른 계절의 맛을 생생하게 해 준 적 있었는가

소금같은 남자
이채민
밀양군 상동면 도곡리 짠지 마을서
제 몸의 물기 다 날려 보냐고
스스로 빛 알갱이가 되어
허물어진 성벽을 쌓아올리고
쓴맛 매운맛 넘실대는 세상을 겁 없이 살아내는
소금 같은 남자
빳빳한 나의 이기심과 허영을
단 한줌으로 제압하고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저 무덤덤한 무표정으로
파랑 같은 삶을 지휘하는 알피니스트
56층 구름 속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짠지처럼 비명도 없이 그러나
매일 조금씩 쪼그라드는 남자
조금 짜면 어떠리
물 말아 먹으면 되지
소금밭 은유隱喩
박일만
썩지 않을 구석이 남아 있을까
방부된 이성과 감성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다리 놓을 수 있을까
안으로 단단해진 심장에 뿌리내리고
들판에 흐드러진 미세한 꽃
물줄기 찾아 떠돌던 바람의
푸른 빛깔도 머무는구나
부식의 상처 덮어주며 어깨도 받쳐주는
중심이 시릿발로 피는 꽃, 피는 자리
정수리를 밝히며 햇빛을 삼투하는
백색의 순결함이 등고선을 이루었다
비상하는 자세다
흙살을 가장한 구린 구석도 이곳에서는
무채색을 띌지 몰라
바닷새가 까딱대며 집착을 몰고 간 거기
가장 가벼운 최적을 향해 익어가는 소금더미
짜게 혹은 깊게 폐부에 와 닿는,
나도 이제 썩지 않고 절여질 수 있을 지
흰 꽃잎 번지는 의식이 솟구친다
체중만큼 환하게 속으로 피는,

소금
고안나
나는 누구인가
당신 입 속으로 또는 혓바닥 위에서
몇 번 구르다 사라지는
쩝쩝 입맛 다시듯 내뱉는 소리
누구는 짜다 하고
또 누구는 싱겁다 하고
대체 어느 장단에 내 한 몸 풀어야 하는가
가끔 알맞다 고개 끄덕이는 당신
어쩌다 화사한 당신 표정이 내 삶의 기준인가
당신들 입속에서 멋대로 평가받는 나의 운명
대충 살아보자 했다
빼던지 더하던지 이판사판
저녁때 되려면 서너 시간 남았다
남은 한 때 식사를 위해
또 한 번 빙긋이 웃는 당신 표정을 위해
가장 알맞게 몸 녹일 터
가스 불 위 달그락거리는 냄비 뚜껑 열고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는 분량으로
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소금쟁이가 사는 방식
유현서
소금쟁이에겐 소금이 없다
어디서 났을까
당신을 밟지 않고서는 당신에게 갈 수 없는 길.
소금 한 줌 잔잔한 물결 위에 흩뿌려진다
하늘을 팽팽히 당기던 웅덩이가 수천의 볼우물을 만든다
당신의 몸속에 가두었던 구름들이 하나 둘씩 뛰쳐나온다
나는 물 위를 걷는 낙타
당신을 흔들어 깨울 때마다‘
내 몸속에는 신기루처럼 당신의 거울이 자란다
‘다시는 깨지지 않기 우이해 두 팔과 두 다리로 힘껏 버틴다
집채만 한 소금방울이 떨어진다
당신과 나를 위해 아늑한 물속으로 피신할 수 없을까
내가 가진 한 움큼의 소금 속엔 당신의 눈물이 말라 있다
물 위를 걷지 않고서는 소금을 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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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시조 ★

눈물
권도중
눈물이 많은 것은
미래가 많다는 것
눈물이 적은 것은 바램이 적다는 것
살아서
썩지 말라고
삶 속에서 생긴 것
씻기며 달래면서
눈물샘 말라가며
살면서 그 많은 상처 다 닦을 수 없어
짠 눈물
흘러 간 바다,
뼈를 풀듯 빛난다
천일염
윤금초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소금 한 줌의 빛
윤종남
누가 풀섶에 숨어
내 어두운 귀를 뚫나
달빛을 타고 와서
머리맡에 쌓인다
쓸쓸한
소금 한 줌의 빛
내가 받을 가을의 은총
소금꽃
김임순
물꽃이 피는 날 풀씨 곧 여물 것임을
소금꽃 이는 날 저 바닷물 여물겠다
염원이
이뤄질 때면
꽃이 먼저 기별한다
밀물과 바람살을 햇살 품에 가두면
섬 그늘 그리며 신의 손길 순응한다
사내의 뼈 빠진 등짝에도
소금꽃이 피었다
달무늬 이불 덮고 파도소리 젖어들면
저 하늘 별빛 내려 소금꽃에 꽂히는 날
세상은
시가 소금이듯
소금꽃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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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나 죽으면/ 맛으로만 남아라/ 향기도 색깔도 모양도 버리고/ 오직 짜디짠 맛/ 정신으로만 남아라/ 살아 내 먹장가슴은/ 나 죽으면/ 연꽃 눈부신/ 진흙못이 되지 말고/ 향기 황홀한/ 백합의 골짜기도 되지 말고// 삼복 타는 불볕 아래/ 비로소 살아나는 소금맛 하나로/ 결단코 썩지 않는/ 정신의 텃밭 되거라/ 한 뙈기 소금밭이 되거라” (유안진 시인의 ‘소금밭’ 전문)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윤금초 시인의 ‘천일염’ 전문)
“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물속에 숨어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힘든 노역이 있다/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정일근 시인의 ‘소금성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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