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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식상해하는 것은
종교가 욕심, 독선, 세력화 등으로
울타리를 쌓고 있기 때문
조광호 신부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7평 남짓한 작은 예배당, 강화도 동검도 채플. 그곳에 알록달록한 빛이 가득 스민다. 예배당이지만 지붕 위 십자가 대신 천장과 벽면에 걸쳐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를 새겼고, 그 십자가를 타고 실내로 들어온 빛은 아름다운 위로가 된다. 채플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통창 너머 바닷가 풍경은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공간을 채운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유명한 조광호 신부(세례명 시몬·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돌아보면, 오랜 계획이었다. ‘조용하고, 거룩하고, 열려있는’ 채플을 만드는 것. 그러다 강화도 남동쪽 작은 섬 동검도에서 지금의 장소를 만났다. 그렇게 자연과 예술과 영성을 담아낸 동검도 채플과 갤러리(우리나라 최초 스테인드글라스 갤러리)가 탄생했다. 올 4월에 축복식을 한 이곳에는 벌써 하루 방문객이 100여 명에 이른다.
이곳은 힐링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동검도 채플은 문이 있지만 언제나 열려있어요. ‘주인 없는 집’이자, 이 공간에 들어와 머무는 동안에는 그 사람이 주인 되는 집이죠. 내어놓은 공간이에요. 이곳에서 누구든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바람구멍을 열길 바라요. 채플과 갤러리는 혼의 숨터, 영혼의 쉼터입니다.”
그는 사제이자 예술가로 살아왔다. 1979년에 서품을 받은 후 1985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현대미술을 전공했고,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 현대화에도 앞장서 왔다. 부산 남천동 성당의 벽면·천장 유리화, 문화역서울284 1층 중앙홀 천창, 숙명여대박물관 로비 유리화 등으로도 유명하다.
사제이자 예술가로 사는 삶은 어떤가요.
“저는 ‘진리를 담아내기 위해 예술을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의 진리는 거창한 게 아니에요. 아름다움이 곧 진리죠. 독일말로 ‘쉔하이트(Schönheit)’, 즉 프리티나 뷰티플 정도에 그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질서정연하고 조화롭다’는 의미의 아름다움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설명이나 풀이가 아닌, 한 인간이자 신앙인으로서 느끼고 희망하고 경험한 것들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뿐이에요. 진리를 드러내는 역할로서요.”
조 신부는 ‘예술은 무한한 자유 속에서 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유는 끊임없이 또 구속을 당한다. 구속을 당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라고 했다. 진리 앞에 끊임없는 겸허, 진리 앞에 두손 두발 다 내려놓고 순수한 자세로 들어가려 노력하는 마음이 참 자유라는 것이다.
석양빛을 머금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더욱 아름답다.
예수 그리스도를 반가사유상으로 표현한 작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부처님이 출가 전 우주적인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을 표현한 거잖아요. 그렇게 보면 예수님도 다르지 않아요. 나사렛의 한 청년으로서 고뇌에 빠진 모습은 같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예수님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한 사람’을 그린 거라고 할 수 있죠. 예수님일 수도, 부처님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그 모습을요.”
미래 종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경계를 허물어야 해요. 경계를 허문다는 게 내가 상대와 똑같아진다는 의미는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종교를 식상해하는 것은 종교가 오히려 욕심, 독선, 세력화 등으로 울타리를 쌓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결국은 삶과 실천으로 나타나야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처럼 역할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 소금이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하면 부패할 수밖에요. 창고 문을 헐어 재화도 실력도 나눌 때 종교로서 생명력이 있어요.”
이웃 종교와 관련해 50년도 더 된 이야기를 한 편 들려주는 조 신부. 그는 신학대 1학년 사월초파일에 조계사에 갔다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의 등을 달아줬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이름은 무엇인지를 묻는 한 여성에게 대답을 했다. 이후 35년이 흐른 어느 날,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계사에서 등을 달아준 적 있냐며, 신문에서 글을 보고 물어물어 연락한 것이라고 했다. 약속을 잡아 만난 자리에서 여성이 전한 말이 있었다. “그때부터 부처님께 기도했다. 이 사람이 신부의 길을 잘 가게 해달라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복은 절대 저절로 오지 않아요.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거죠. 비싼 옷이 아니면 아닌 대로, 작은 방이면 작은 방 나름대로 주어진 상황 안에서 각자가 예술가가 되면 행복해요. 기독교적 용어로 ‘성사화’라고 하는데,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이미지가 나에게 의미 있었다면 성사화 된 거예요. 모든 사람의 모든 곳과 시간에는 성사화 할 거리가 있어요.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각자가 자기 환경에서 만들어보세요.”
성경 속에서 예수는 때마다 ‘아버지’를 찾고 외친다. 이를 조 신부는 ‘늘 진리에 향해 있고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먼 곳에 있지도 않고, 내 마음에만 있지도 않다며, “날아가는 새와 어제 만난 택시기사에게도 있다”고 했다.
해가 뉘엿 저물며 썰물 때를 맞이한 갯벌에 주황색 반짝임이 가득 내려앉는다. 그 아름다움이 그대로 진리다.
[2022년 5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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