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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은 실제 196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기괴한 살인행각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사회 주변부 인물들의 강렬한 생존본능과 은폐된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복수는 나의 것〉 역시 연쇄 살인이라는 범죄를 통해 일본 사회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인간 생태계의 그림자를 과격하고도 차갑게 형상화하는 작품이다.
제작년도 1979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 今村昌平 1926~2003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칸느영화제 대상 수상)
출연 오카타 겐: 살인자 이와오 역1937~2008 173cm 나라야마 부시코 주연,
바이쇼 미쓰코 : 1946~ 163cm 살인자의 부인 카즈코 역
미쿠니 렌타로, 오가와 마유미, 기요카와 니지코
시놉시스
담배 배달차를 운전하는 이와오는 우발적인지, 계획적인지 아리송한 살인을 저지른다. 동료 수금원 두명을 살해하고 현금을 빼앗아 달아난 것이다. 경찰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자, 그는 배를 타고 가다 부모에게 가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한 것처럼 꾸민다.이후 그의 범죄 행각은 더욱 대담해진다. 그는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신분을 위장하고 새로운 여자들과 어울리며 절도와 살인을 일삼는다. 점잖은 대학교수 혹은 정의로운 변호사를 연기하며 그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간교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범죄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이와오는 어느 하숙집에 머무르며 그곳의 여주인인 하루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함께 사는 하루의 어머니는 살인죄로 감옥에 다녀온 과거가 있는 여자다. 이와오는 결국 이 모녀 또한 살해하고 다시 도피를 감행한다.한편, 일찍이 이와오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그로부터 버림받은 가즈코는 이와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와오의 아버지 시즈오는 망나니 아들을 대신해서 가즈코를 돌본다. 그러나 시즈오와 가즈코 사이에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를 넘어서는 은밀한 감정이 흐른다.
작품해설
1. 감독과 스타일
이마무라 쇼헤이는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대표적인 감독들 중 한명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그림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드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요컨대, 일본 뉴웨이브의 또 다른 대표자인 오시마 나기사는 〈청춘 잔혹 이야기〉(1960), 〈일본의 밤과 안개〉(1960), 〈백주의 살인마〉(1966), 〈교사형〉(1968) 등을 통해 일본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과격하고 논쟁적이며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은 감독이다. 그와 비교해, 이마무라 쇼헤이는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보다는 그 시스템으로부터 밀려난 밑바닥 삶의 질긴 본능에 주목했다. “내가 농부라면, 오시마는 사무라이”라는 이마무라의 유명한 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이마무라는 ‘일본적인 것’, 즉 종교나 풍속을 탐구하는 동시에 인간의 은밀한 성적 충동을 가감 없이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마치 곤충학자가 곤충의 생태계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일본인들의 내밀한 욕망을 인류학적으로 탐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그의 영화들 중에는 〈일본곤충기〉(1963), 〈인류학입문〉(1966)처럼 그런 성향을 단적으로 명시하는 제목의 영화들이 있다.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이마무라 쇼헤이가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졸업 뒤, 쇼치쿠 영화사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는 쇼치쿠의 제한적이고 보수적인 방식은 물론, 오즈의 스타일에 불편함을 느꼈다. 마치 정물처럼 자세를 취하는 인물들의 구도나 공간의 선택, 그리고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절제를 요구하는 연기연출 등 이마무라 쇼헤이에게 오즈의 제한은 위대한 예술의 근원이 아니라 갑갑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쇼치쿠를 나와 닛카쓰 영화사로 옮긴다.이후 그가 만든 작품들을 보면 쇼치쿠 시절 당시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밑바닥 인생들의 에너지는 욕망과 충동의 노골적이고 혼란한 분출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범죄나 강렬한 성적 욕구 등이 결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제의 과감함은 형식적인 도전으로도 이어진다. 60~70년대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종종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서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실험하며 주제를 형식화한다. 혹은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지극히 무감하고 차가운 방식으로 쳐다본다.〈도둑맞은 욕정〉(1958), 〈일본곤충기〉, 〈인류학입문〉, 〈신들의 깊은 욕망〉(1968), 〈인간증발〉(1976), 〈복수는 나의 것〉 등이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후 이마무라는 세상을 떠난 2006년까지 〈나라야마 부시코〉(1983), 〈우나기〉(1997), 〈간장선생〉(1998),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 등을 만들며 칸영화제에서 두 차례나 황금종려상을 수상(〈나라야마 부시코〉와 〈우나기〉)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2. 주제
연쇄살인마를 다룬 스릴러물을 볼 때, 가장 기본적인 호기심 중 하나는 무엇이 한 인간을 그토록 잔혹한 살인마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단 한순간의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기계처럼 살인을 저지르는 이와오라는 괴물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이와오가 마침내 체포된 시점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살인과 사기로 점철된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영화는 그 끔찍한 살인의 순간들을 감정적인 흔들림이나 장황한 설명 없이 냉정하게 응시할 뿐이다. 일반적인 스릴러에서 관객이 기대할 법한 살해 현장의 스펙터클은 여기 없으며 거칠고 불쾌한 폭력과 죽음만이 나열된다. 영화는 관객이 이와오에게 일말의 연민이나 감정을 이입할 순간을 마련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살인하고 거짓말하고 섹스를 하는 괴물일 뿐이다.물론 단 한번, 그를 괴물로 만든 계기를 추측하게 만드는 과거 장면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이와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가 군인에게 배를 빼앗기는 순간을 목격한다. 군인은 “폐하를 위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라고 외쳐봐”라고 명령하고 아버지는 별다른 저항 없이 무력하게 수긍한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자신의 소유물을 빼앗기고도 용서를 비는 겁쟁이 아버지를 용납할 수 없어 한다. 이후 그의 반항은 심해져 전쟁 중에는 소년 형무소에 드나들게 되며, 미군과 어울려 마을의 여자들을 희롱한다.그가 살인마가 된 근원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영화가 이와오를 통해 그런 아버지로 상징되는 군국주의, 종교,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이런 배경들이 그의 살인 행각을 모두 이해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히려 이와오를 그런 해석을 넘어서는 괴물의 상태에 두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그림으로써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하고 끔찍하며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은 살인 그 자체가 아니라, 끝내 설명되지 않는 이 괴물의 면모다.
3. 인물들
이 영화에서 가장 악한 인간은 에노키즈 이와오처럼 보이지만, 실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병들어 있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폭력에 공모하거나 폭력을 수용하는 자들이다. 아버지 시즈오는 군국주의에 저항하지 못하고 언제나 현실과의 대면을 피하며 종교로 도피한다. 그는 아들을 도덕적으로 탓하지만, 실은 그도 그 도덕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들의 아내, 즉 며느리 가즈코를 욕망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즈코 역시 시아버지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시즈오와 가즈코의 숨겨진 잔혹성과 욕망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가즈코가 개에 물리자, 시즈오는 그 개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쏴서 죽이고, 가즈코 역시 말리지 않는다. 짧고 단호하게 지나가는 이 장면은 피를 뒤집어쓴 이와오의 살해 장면만큼이나 폭력적이다. 말하자면 시즈오와 가즈코는 피해자나 희생양이 아니라 이와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흉악한 본성을 지닌 인간인 것이다.한편, 이와오가 깊은 관계를 맺는 하루의 어머니는 이와오와 마찬가지로 살인 전과가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매일 밤 손님들이 섹스하는 장면을 음탕하게 훔쳐본다. 심지어 자신의 딸이 집주인에게 겁탈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 장면을 구경하며 방으로 뛰어들려는 에노키즈를 말린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와오를 유일한 악인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지 않는다. 대신, 이와오라는 이해 불가능한 인물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폭력에 연루된 인간 욕망의 뒤틀린 생태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
에노키즈 이와오(오카타 겐) : 수년간 살인을 저지르며 신분을 위장하고 도망다닌 연쇄살인마.
에노키즈 시즈오(미쿠니 렌타로) : 이와오의 아버지. 충실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며느리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못한다.
에노키즈 가즈코(바이쇼 미쓰코) : 이와오의 아내이자 시아버지 시즈오를 사랑한다.
아사노 하루(오가와 마유미) : 하숙집 여주인. 이와오와 깊은 관계를 맺지만, 결국 그의 손에 죽는다.아사노 히사노(기요카와 니지코) : 아사노 하루의 어머니. 살인 전과가 있고 딸과 마찬가지로 이와오의 손에 죽는다.
명장면 명대사
- 시즈오 : “난 널 용서 못해.”
- 이와오 : “누가 용서해 달랬어?”
- 시즈오 :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해. 네 피는 내 피이기도 해. 내 피 속에는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지. 난 네 어머니도, 너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부님에게 부탁해서 내 자신을 파문했어. 그래서 나도 가문 묘지에 묻힐 수 없다.”
- 이와오 : “난 신 필요 없는데. 난 죄 없는 사람을 죽였어. 그래서 나도 죽임을 당해. 그걸로 된 거야. 그 뒤는 아무것도 없어.”(중략)
- 시즈오 : “부모 자식이란 피로 연결된 게 아닌 거냐?”
- 이와오 : “죽어도 당신과 난 남남이야. 당신도 날 용서하지 못하겠지만, 나도 당신을 용서 못해. 어차피 죽일 거면 당신을 죽였어야 했어.”
- 시즈오 : “넌 날 못 죽여. 부모를 죽일 수 있을 만한 남자는 없어. 원한도 없는 사람들밖에 못 죽이면서.” (아들에게 침을 뱉음)
- 이와오 : “제길. 죽이고 싶다, 당신을.”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과 마지막 면회를 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오랜 원망과 증오, 그렇지만 끝내 끊어내지 못한 혈연의 질기고 끔찍한 운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수상
• 1980년 일본 아카데미 최고작품상, 감독상, 조연상, 각본상, 촬영상, 조명상• 1980년 블루리본상 작품상, 조연상, 감독상• 1980년 〈키네마준보〉 작품상, 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1980년 마니치필름콩쿠르 각본상, 녹음상• 1980년 요코하마필름페스티벌 주연상, 각본상
음악
영화의 도입부, 체포된 이와오가 눈 오는 밤,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른다. “우릴 데려가주오, 천국의 사원으로.” 이 가사를 영화의 결말에 이와오의 아버지 시즈오가 아들의 유골을 뿌리며 다시 부른다.
연관 영화
〈추격자〉(2008, 나홍진) : 이유 없이 여자들을 죽이는 살인마 지영민의 이야기.
〈살인의 추억〉(2003, 봉준호) :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봉준호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의 열렬한 팬이다.
집필 남다은
영화평론가. 1978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인문학부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 석사. 200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인디포럼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감수 김영진교수, 영화평론가
교수.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이자 전주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이다. 쓴 책으로 <미지의 명감독>,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평론가 매혈기>, <코스타 가브라스>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복수는 나의 것 [復讐するは我にあ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