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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품창 제주 15년 - 서울展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_55×68cm_한지에 아크릴_2016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구. V-갤러리)
2016. 7. 23(토) ▶ 2016. 7. 31(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T.02-580-1300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_44×54cm_한지에 아크릴_2015
나의 그림은 모든 자연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와 인간이 서로 어울리는 공간이며, 그들 모두가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소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상세계이다. -작가노트-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_128×130cm_한지에 아크릴_2014
제주 풍광(風光)의 김품창 최근 작품
예술비평가 홍 카이(洪 可異)
김품창의 제주도환상 연작은 틀림없이 대단히 훌륭한 예술적 성취이다. 우선 그의 작품들은 제주도 풍경이나 풍정이 아니라 제주도 풍광 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중요한 개념적인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고, 심지어 미술창작에서 어떤 개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의 주제를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내용적인 깊이와 창의적 조형의 수준과 예술 창조적 성취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략)
방법론적으로 나는 어떤 작가의 전시 도록 글을 쓸 때, 그 작가의 전기적 스토리텔링 보다는 그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내 눈을 끌고, 내 판단에 중요한 예술적 성취의 결과물이라는 확신이 드는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의 분석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왜냐하면, 그의 성취의 결과물이 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의 거장들이 거장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의 또는 몇 개의 뛰어난 예술적 성취 물을 내 놓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한다는 것은 공장에서 공산품을 찍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과정이다. 같은 공정을 거친 공산품은 모두 같지만, 예술가의 작품들은 같은 공정을 거친 공산품이 아니어서, 들쑥날쑥 할 수 있다. 모든 피카소의 작품들이 다 같이 메스터피스가 아니다. 내가 수강한 마이틀 후리드(Fried)의 1974년 봄 현대미술 강의에서, 그는 피카소의 Guerrnica(궤르니카)는 왜 Modernist Painting으로서 실패작인지를 그리고 또 어떻게 추상화의 거장 칸딘스키의 추상화들이 현대추상으로서 실패작인지를 설득력 있는 논리로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번 뛰어난 그림을 그렸으면, 그는 다시 그런 그림을 그릴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전제이다. 그래서, 나는 내 판단으로 새로운 담론을 전개시킬 어떤 Clue(단초)를 제시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그 작가의 전시 도록 에세이를 쓴다. 이런 나의 방법론적 예술작품과 작가에 대한 접근은 물론 김품창의 아래 글에서도 이어지는 것이다.
(중략)
현재 김품창보다 더 유명하고 작품 값이 몇 배 더 나가는 제주도 화가들은 제주도의 풍경을 그리는데 그치고 있어서, 제주도의 풍광에는 접근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내 주장이 너무 독단적인 것 일까?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왜? 설득력에서 설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_85×124cm_한지에 아크릴_2013
우주와 자연에는 리듬 있다. 사계절이 있듯이. 그리고 여자의 몸에는 생리 역시 리듬을 탄다.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행’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 기형이 막히면 병이고, 통하면 건강한 것이다. 바로 자연, 그것이 바다건 땅이건 하늘이건, 그 한 단면의 풍경이 아니라, 바로 자연의 그 순환성, 그 필연성의 순환 운동이 바로 자연이지, 어떤 정적인 자연의 단면을 그리는 것으로는 바로 그 천혜의 자연환경의 제주도의 특징인데, 제주도의 그림은 바로 제주도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야 할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동양의 예술정신을 구현하는 것이지, 그냥 정적으로 제주도 일상의 한 단면을 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 구도와 작품이 얼마나 세련되고 정인적이어도, 그것은 서양의 풍경화의 아류로서 동양적 예술성을 구현하는 독특한 제주도 풍광을 잡는 것은 아닐 것이다. 풍경이나 풍정이 제주도 자연과 생활의 한 정적인 단면의 묘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작가의 예술가적 능력에는 무관하게, 그의 개념적 이해의 불충분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일 것이다. 즉, 동양적 예술성의 구현을 통한 현금 허무주의적 서구중심 예술의 위기에 출구를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예술을 하자면, 개념적으로 우선 서구의 문화적 철학적 쇠뇌 에서 해방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풍광이란 개념의 우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풍광은 바람과 빛이다. 둘 다 파장을 의미한다. 파장은 움직임이고, 파장을 통한 모든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파장 또는 물결은 하늘에선 바람으로 구름으로, 바다에선 파도로 조류로, 땅에서 역시 감지가 어렵지만 파장의 움직임이 있다. 지진이나 화산 분출이 바로 땅의 파동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우주의 모든 파동들은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거대한 자연의 순환계를 이루는 것이다. 김품창은 바로 제주도 자연의 순환계를 그의 풍광그림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그의 2010년 ‘어울림의 공간: 제주환상’을 보라. 맨 밑에 두 개의 봉우리 같은 것이 보인다. 그 봉우리 위에는 나무나 다른 식물군으로 보이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 바로 제주도에 널려있는 오름의 봉우리로 보면 될 것이다. 이 오름 들은 제주도 육지에 곳곳에 솟아올라, 한라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로 퍼져나가는 어떤 지층파동운동의 그 파장의 CREST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맨 밑의 두 봉우리도 눈에 다 안 보이는 띠의 파동의 일부이다. 그 위로 여러 개 의 오름과 내림, 즉 wave crest 와 wave trough 가 있는 파동들이 첩첩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각기 오름과 내림이 있는 파동으로서 바다의 파도라는 파동의 오름과 내림이 될 수도, 또는 하늘에 부는 바람 파동의 오름과 내림일 수도 있다. 또, 바다 해저에도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어 수많은 어류와 해조류들이 그 곳에 서식하고 있다. 바로 이런 여러 가지의 파동을 타고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와 갖가지 개체들이 서로 얽혀서 진동하면서 어울리는 것을 동적인 화면을 구현하여 어디서도 정체 되지 않고 계속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보여준다. 풍경화나 풍정화가 정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어, 계속적인 순환의 운동성이 그 핵심인 자연을 담는데 실패하여, 캔바스의 경계 안에 가두어 놓은 임의의 자연이라면, 김품창의 자연은 어떤 한계가 없이 계속 움직임을 부여하여, 그의 화면 속의 각 파동의 움직임들이 각기 캔바스의 밖으로 진동하여 뻗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그림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풍광을 그것도 동양적인 이해의 자연관을 담은 그림은 김품창한테서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홍 카이 록펠러대학 특별연구원 프린스톤, 캠브릿지, MIT 대학 교수, SIAT USA 및 연세-시아트 프로그램 Director 역임. 카이 홍 전, 외국어대 영어인문학 교수는 예술철학, 미학, 언어철학자로 예술비평가로 명성 있는 융합형 인문학자의 전형이다.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_128×164cm_한지에 아크릴_2010
어울림의 공간_제주환상_128×164cm_한지에 아크릴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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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품창
작가 김품창은 1966년 강원도 영월생으로 추계 예술대학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권위 있는 미술대전에서 수상을 하였으며 서울에서 화업을 쌓고 16년 전 제주로 정착하여 그 일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와 권위 있는 공모전 심사를 하고 있으며 단체전과 초대전을 비롯하여 사회 기여적인 기획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작가로써 뿐만 아니라 교육과 지역사회 전반의 공공적 가치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어 사랑채와 같은 공간에서 삶을 나누고 교류하며 작업하는 소박한 이상을 갖고 있다. 그의 부인 장수명은 수십 편의 동화를 집필한 문학가로 부인이 집필한 동화에 삽화가로 참여 하기도 하였으며 이들의 삶과 이야기들은 KBS, SBS, MBC뉴스데스크와 EBS, 한국기행과, 휴 채널, 3D 방송, 지역 TV, 라디오와 다큐프로그램에 소개되어 잔잔한 공감을 선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