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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간이세미나] 나는 단주를 어떻게 찾았나? (2부- 신월동에서 태을도를 만들다)
애초에 벌어놓은 돈 없이 결혼하고 남편의 월급만으로 살았던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며 시부모님의 예금, 시집간 첫째 시누이, 결혼 안한 시누이 둘의 적금까지 선거비용으로 다 들어갔지만 비용 보전을 못 받아, 살림집과 사무실 보증금으로 금산살이의 뒤처리를 하고 나니 남은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런 저희에게 분당에 있는 친정으로 들어가라 권하셨습니다. 48평 아파트에 손님방이 2칸이라, 여유가 있었거든요. 그러나 가부장적인 친정아버지께 사위의 처가살이 설움이 불 보듯 뻔했기에, 저는 신월동 시댁으로 들어오겠다 버텼습니다. 차라리 시집살이가 낫겠다 싶었고, 남편이 맏이고 외아들이라 언젠가는 시부모를 모셔야 할 입장이기도 했고요. 차제에 제가 최선을 다해 봉양해서, 증산신앙에 결사반대이신 시부모 마음을 돌려놓겠다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제가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 없이 2칸짜리 연립에 살고 계셨던 시부모와 시누들은 안방으로 합치고, 작은방을 우리 5식구가 차지했습니다. 금산서 다 처리 못하고 가져온 살림살이는 12가구 연립 지하에 한 집씩 배당되어 세를 놓다 마침 비어있던 1칸짜리 쪽방에 죄다 집어넣었습니다. 시댁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창고 같은 지하방을 정리해 조금의 공간을 만들어 남편의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면피용도 되지 않는 빚잔치를 하고, 그나마 쥐고 있던 기십 만원이 책값에 다 들어갔습니다. 책들을 구해 공부하는데 뭔가 공부하는 길이 있어 따라가는 느낌이라, 책값은 내가 알아서 댈 테니 걱정말고 공부하라 당부했습니다.
1996년 5월 금산에서 올라와 1997년 가을까지 공부는 계속되었습니다. 그사이 남편은 정치판이 아닌, 종교 원판으로 해야 한다고 결론을 지은 상태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신이 누구인가, 왜 내가 이 일을 맡았나, 종교로 하려면 이름을 뭘로 해야 하나 등으로 고민이 계속되었습니다.
1997년 여름의 막바지 무렵, 이중성 선생의 [천지개벽경]을 발행한 ‘김진성’이란 사람을 찾고자 출판사로 찾아간 남편은 출판사 사장을 만나, 귀한 책이지만 팔리지 않아 버릴 수도 없어 오랜 시간 창고에 쌓여있던 [천지개벽경]을 맡길 임자로 보이니, 다 가져가라는 제안에 몇 차례에 걸쳐 900여 권의 [천지개벽경]을 차에 실어 날랐습니다. 곰팡이가 심해서 도저히 볼 수 없는 200여 권을 처분하고 깨끗한 것과 곰팡이를 털어내고 쓸만한 것들을 남겨서, 700권 정도를 지하방에 보관하며 훗날 태을도 초기 입도자나 원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1997년 가을, 남편은 [태을도]로 이름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처음 태을도라는 명칭을 들었을 때 저는 고루한 느낌이 난다, 우리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증산’이 빠졌다, 이러면서 못 마땅해 했는데, 남편은 왜 태을도여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더군요. 첫째, 우리가 할 일은 태을주를 전하는 것이기에 ‘태을주를 전하는 도’ 해서 태을도가 맞고 둘째, 공부해보니 ‘태을’이 상제님 진리의 핵심이기에 ‘태을의 도’, 그래서 태을도라 부르는 게 정명(正名)이라고요. 그렇다면 태을도를 하는 우리는 태을도인인 거고, 이중성 선생의 [천지개벽경]에 나오는 ‘내 도 아래에서 세상사람들이 태을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나오면 태평천하가 된다’는 구절에도 부합한다고요. ‘아, 이게 상제님 진리의 진짜 이름이구나.’ 바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상제님 신앙인들은 태을도라는 명칭을 생경스럽고 불편하게 생각했습니다. ‘증산’이 빠져있다는 게 주 이유였습니다. 1997년 겨울에 남편이 김제에 내려가 이중성 선생의 장녀인 이옥수 여사를 처음 만났는데, 그분 역시 자기 아버지가 태을도인만 얘기했지 태을도는 얘기한 적 없다며 태을도 명칭을 거부하고, 상생대도나 무극대도 중 어느 명칭을 쓸지 고민하셨습니다. 별세 전 요양병원에 계셨던 이옥수 여사를 마지막으로 찾아뵀는데, 자신이 죽으면 시아버지인 박공우 성도와 아버지와 함께 훈오씨 태을도를 돕는 것 말고 저세상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냐며 비로소 태을도를 받아들였지요.
1997년 겨울에 남편은 이옥수 여사 말고도 용화동을 찾아가 이정립 선생의 부인 장옥 여사도 만났습니다. 그분은 남편 보고 출신지역을 물어서 금산사람이라 하니, 남해 금산인지 인삼나는 충남 금산인지 재차 물어서 인삼나는 금산이라 대답했더니, 얼마 전 통천궁에서 체험했던 얘기를 해주시더랍니다. 신도 몇 분과 통천궁에서 수행하는데, 하늘에서 큰 인삼이 내려와 청수동이 위에 가로걸치더니 청수동이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어가는 광경을 수행하던 신도들도 함께 봤답니다. 수행 후 청수동이 물을 다함께 나눠마셨는데, 그리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면서요.
1998년 2월, 남편은 일주일 수련을 위해 금산사로 내려갔습니다. 원래 상제님이 수련하신 대원사로 가려 했으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입산 금지라,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 앞에 ‘태을도’라 쓴 종이를 놓고 기도한 후에 용화동에 들어가 묵으며 일주일간 통천궁에서 거의 하루종일 수련했습니다. 외부인이 들어와 수행한 것은 처음이라는데, 장 사모님이 허락하셔서 가능했습니다. 당시 용화동 간부들도 연초라 회의차 용화동에 모였는데, 낮 수행은 그분들과 함께 했다고 합니다.
1998년 봄에는 증산상제님 생가가 있는 고부 객망리에 갔다가, 계시를 받고 객망리 생가터에 자리잡고 계신 민병환 선생의 친손녀 민병주 여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얘기를 나눠보니 그분의 아들이 남편의 연대 후배였습니다. 1998년 5월 하순, 남편은 속육임을 결성해 태을도 기두천제를 객망리 생가터에서 올리기로 마음먹고 민 여사에게 동의를 구했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5월 말로 날짜를 잡았습니다. 원평 숙소에서 1차 모이기로 했는데, 서울에서 합류하기로 한 도인도 당일 연락이 두절되고, 대전 도인도 약속시간 직전에 자기는 빠지겠다 했는데, 숙소에서 합류하기로 한 대구 도인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아 숙소에서 계속 기다리다 예정된 저녁 천제가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객망리로 가니 밤 11시가 훌쩍 넘게 되었습니다.
민 여사는 며칠 전 객망리 앞 들판에서 펼쳐지는 7인 음악회 꿈을 꾸었다며 기꺼이 동참해, 민병주 여사와 그 아들과 우리집 4살 막내까지 포함해 총 7명이 자시에 천제를 지냈습니다. 남편이 기두 때 객망리에 모셔져 있는 대0000 영정이 아닌 오성산 영정을 모셨으면 했는데, 얘기를 들은 민 여사가 사위가 마침 찍어서 조그만 액자로 만들어둔 영정이 있다고 해서, 남편 소원대로 오성산 두 분 영정을 모시고 천제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민 여사가 늦은 밤 손님 접대와 천제 준비를 기꺼이 해준 덕분에 무사히 태을도 기두천제를 지내고 새벽에 원평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김제 기룡리 이옥수 여사 댁으로 이미 초대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이날 도착한 대구 도인과 다같이 기룡리로 가서 보니 이날이 이중성 선생의 생일이었고, 우리는 선생의 생일상을 대접받았습니다. 차녀 이용수 여사도 이날 처음 뵀는데, 두 따님이 꿈 얘기를 하더군요. 전전날 둘이 아버지 꿈을 똑같이 꿨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상제님과 박공우 성도가 오니 집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하셨다 했습니다. 이날 새벽에는 이옥수 여사 꿈에 아버지가 한 아이 손을 잡고 들어오셨다면서 5살 막내를 보며 얘를 보려고 그랬나 보다 얘기했습니다. (몇 년 뒤 이옥수 여사에게 따로 들었는데, 사실 아버지가 손잡고 데리고 온 아이는 남편의 어린 모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많아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다고요.) 차려놓은 생일상 앞에서 예를 올리고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옥수 여사가 평소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시며 ‘기룡리 뒤 구성산에 상제님께서 장검을 묻으셨는데, 이날 드디어 진도 진법이 나왔다’며 엄청 기뻐했습니다. 식사 후 이옥수 여사를 모시고 금산사와 박공우 성도가 수련하던 최씨 재실을 들렀습니다. 고부 객망리까지 가서 이옥수 여사와 민병주 여사가 서로 인사도 나누고 오성산 영정을 다시 모시고 간단히 치성을 모시며 천지개벽경 서문도 읽었습니다. 태을도 포교 활동은 이때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 남편은 1997년에 태을도를 펴기로 결정하고, 그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다 1998년 초 본인이 단주인 것 같다면서, 결혼 초부터 제게 몇 번 들려준 꿈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남편이 반복해서 꾸는 꿈들 중 하나인데, 유독 이번 생을 살아오며 겪은 게 아닌 좀 뜬금없는 꿈이라, 들을 때마다 제가 무심히 듣고 흘렸던 꿈이었지요. 바닷가 같은 데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데, 저 멀리 보이는 소나무 우거진 동산 꼭대기에 한 여자가 보일락말락 자기를 보고 있어 그게 죽어가면서도 무척 서운했다면서, 그 여자가 아무래도 저인 것 같다는 겁니다. 그리고 적대세력에 쫓기다 자기 사람들 다 잃고 쓸쓸히 바닷가에서 죽어간 자신은 단주인 것 같다면서요.
상제님 고수부님 행적과 천지공사를 살펴보며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천명을 받은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이어야 할까를 되짚어보면서, 마침내 우리는 천명을 받은 남편을 단주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동안 단주는 신명으로 존재하며 역사하는 걸로 배웠던 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주를 성사재인의 중심에 세우게 되면, 상제님이 후천의 당요가 되고, 상제님 고수부님이 정음정양의 아버지 어머니 하느님 즉 천지부모님이 되어, 단주는 진리의 적장자로 태을도인들은 도자로 자리매김해 세계일가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상제님 고수부님의 천지공사 신정공사의 단주 관련 내용들이 아주 명쾌하게 해석되었습니다.
또 하나, 저는 사실 천명을 받았을 때부터 ‘왜 이 사람인가?’를 계속 고민해 왔습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전혀 비범해 보이지 않는 이 사람이 대두목이라고? 저부터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천명을 받는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저보다 잘나보이지 않는 이 사람이 대두목이라는 것에도 승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일단 천명이 내렸고 그 현장에 있었던 제가 천명 자체를 부정할 수 없으니, 저를 납득시키고자 하늘에서 남편에세 천명을 내린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인간성이 순수하고 정음정양에 진심이다. 꿈속에서도 내가 자기 부인이라는 걸 잊지 않아서, 그렇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받아들이지 않고 상제님께도 반발한다. 둘째, 학생으로 치면 학업성취도가 매우 뛰어나다. 즉 목적하는 바를 반드시 이룬다. 셋째,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 지극정성이요, 일심혈심이다. 꿈에서도 늘 상제님 생각을 한다. 그러고 나니 남편에게 천명을 내린 이유는 분명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봐도 비범해 보이진 않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점에서요.
그럼 왜 천명 당시 내 질문에 자신이 대두목이라고 즉답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오랜시간 제 화두였습니다. 남편은 대두목이란 용어 자체를 처음부터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상제님 사후 증산종단에서 대두목이라 하여 개안시켜준다, 도통시켜준다 하면서 사람들을 매달리게 하고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죄를 많이 지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을 무조건 매달리게 하는 노예신앙은 진리의 어진 벗을 원했던 상제님께서 기대하는 성숙한 신앙을 위한 바른 방법이 결코 아니라 생각했지요. 기독교 신앙을 했던 제게도 대두목이라 하면 소위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뜻인데, 그래서 대두목은 너무 높고도 먼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남편은 개벽을 넘어서 영원을 지향하고, 도통을 넘어서 일상에서 실천하는 신앙과 그러한 길을 걷는 도인을 원했습니다. 그래야만 상제님이 말씀하신 인존시대를 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깨침과 생각들을 남편은 하나하나 책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사실 1998년도 초 용화동 수련을 하고 온 이후에 우리는 태을도라는 이름으로 책을 3권은 내자. 그래야 사람들이 태을도 존재를 인식하고 태을도 주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두 직후부터 원고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첫 책이 1999년도 말에 출간한 [강증산과 태을도]입니다. 부제는 ‘증산종단의 총결론 태을도, 증산신앙의 총열매 태을도인’입니다. 최소 3권은 내자고 했던 것이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어느새 19권이 되었습니다. 얘기가 길어지니, ‘태을’에 대한 것은 3부로 넘겨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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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지대사의 인연이 알고 보면 필연인데 모르고 보면 우연처럼 보입니다. 물 샐 틈 없이 짜여진 천지도수가 돌아닿으면서 인사가 펼쳐집니다. 천지부모님이 모사재천하신 성사재인의 핵심은 단주수명 진산수명입니다. 삼계를 주재하는 증산상제님도 인신출세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까지 일정한 세월이 걸렸듯이, 자미원의 단주도 인신출세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기 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부모님이 단주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시고 단주 자신도 스스로 혜두가 열려가면서 천지부모님의 의통천명을 받들게 됩니다. 단주를 찾아가는 신앙간증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중성 선생의 [천지개벽경]은 이제 여유분이 없습니다.
시부모와 함께 거주하던 연립은 1층 저희가족이 묵던 작은방에 쥐가 들어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재건축을 하게 됐는데,
남편 책값과 태을도책 출판비용 및 홍보비용을 대느라
남편 명의였던 연립을 담보한 기존의 대출과 재건축으로 추가발생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이자만 간신히 물던 중 거치기간 끝나며 연체로 들어가 하루하루 연체이자를 메꾸던 중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집을 팔아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으려던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겨, 이걸 메꾸느라
집에 보관하고 있던 천지개벽경과 태을도 책들을 대거 고물상에 폐지로 처분했습니다.
몇 권 보관하고 있던 천지개벽경은 그뒤 태을도에 입도한 분들에게 차례로 나눠드리며 소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