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는 오후》
12부 ― 이번엔 내가 질투할 차례야
현관문이 닫히자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혜진의 메시지가 끼어 있었고, 질투와 서운함이 말끝마다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민재는 서윤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서윤은 그의 셔츠 깃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까 뭐라고 했지?”
민재가 물었다.
“뭘?”
“뜨겁게 화해하고 싶다고.”
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꼭 다시 말하게 해야 돼?”
“듣고 싶어서.”
“싫어.”
“그럼 내가 기억할게.”
민재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 서윤은 피하지 않았다.
“아직 화났어?”
“조금.”
“그럼 어떻게 풀어야 해?”
“네가 알아서.”
“아까도 그랬지.”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해보려고.”
민재의 손이 서윤의 허리에 닿았다. 잠시 멈췄다. 서윤이 그 손을 내려다보다 다시 그의 얼굴을 봤다.
“왜 또 멈춰?”
“확인.”
“또?”
“응.”
“강민재.”
“왜.”
“지금은 그냥 와.”
그 말이 끝나자 민재가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입술이 닿았다. 이번에는 달래듯 조심스럽기만 한 키스가 아니었다. 서윤이 먼저 셔츠 깃을 잡아당겼고, 민재는 그녀를 가까이 끌어안았다. 서운했던 마음과 안도감, 조금 전의 질투와 지금의 사랑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떨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고, 서윤은 민재의 어깨를 잡은 채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민재가 낮게 웃었다.
“이 정도면 화 좀 풀렸어?”
서윤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아직.”
“아직?”
“응.”
“큰일이네.”
“왜?”
“나는 벌써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서윤이 그제야 웃었다.
“조금 전까지 다른 여자 메시지 받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또 그 얘기야?”
“왜? 찔려?”
“아니.”
“그럼?”
민재가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질투하는 건 조금 좋았는데.”
서윤의 눈빛이 바로 날카로워졌다.
“뭐?”
“아니, 그러니까.”
“다시 말해 봐.”
“취소.”
“늦었어.”
서윤이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이제 진짜 가.”
민재가 웃었다.
“농담이야.”
“안 웃겨.”
“서윤아.”
“몰라.”
그녀가 거실로 돌아섰다. 민재가 뒤따라왔다.
“정말 화났어?”
“아니.”
“그럼 왜 그래?”
“내가 질투한 게 좋았다며.”
“네가 나 좋아하는 게 보여서 좋았다는 뜻이지.”
서윤이 멈췄다.
“그 말하고 그 말이 같아?”
“내 머릿속에서는.”
“너 머릿속은 믿을 게 못 되네.”
“그건 인정.”
서윤은 소파에 앉았다. 민재도 옆에 앉으려 하자 그녀가 손으로 막았다.
“저쪽.”
“왜?”
“떨어져 있어.”
“얼마나?”
“한 사람 정도.”
민재가 마지못해 소파 끝으로 옮겼다.
“이 정도?”
“조금 더.”
“그러다 바닥에 앉겠는데.”
“그래도 돼.”
민재가 한숨을 쉬는 척했다.
“연애 어렵다.”
“이제 알았어?”
“응.”
“특히 중년 여자 만나는 거 쉽지 않아.”
“그건 이미 알았어.”
“왜?”
민재가 서윤을 바라보다 웃었다.
“좋아하는 만큼 눈치도 많이 봐야 하더라.”
서윤이 웃음을 참았다.
“지금 웃었지?”
“안 웃었어.”
“봤는데.”
“잘못 봤어.”
“조금 풀렸네.”
“아니라니까.”
민재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럼 손만.”
“안 돼.”
“손도?”
“응.”
“이건 너무한데.”
“반성해.”
“뭘 반성하지?”
“내 질투를 좋아한 거.”
민재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진짜?”
“응.”
“뭘 알았는데?”
“네가 질투하도록 일부러 만들지 않기.”
서윤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진짜 지킬 수 있어?”
“응.”
“왜?”
민재가 낮게 말했다.
“아까 네 표정 보고 알았어.”
“뭘?”
“질투하는 얼굴이 귀엽기도 했지만… 그 안에 불안도 있더라.”
서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서 싫었어.”
민재가 말했다.
“네가 나 때문에 불안해하는 거.”
서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민재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잡아도 돼?”
서윤은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을 잡았다.
“딱 손만.”
“응.”
“다른 생각하지 마.”
“안 해.”
“거짓말.”
“조금.”
서윤이 웃었다.
“정말 못 말려.”
둘은 그렇게 한동안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서윤이 민재의 어깨에 기대었다. 민재는 약속대로 손만 잡고 있었다. 오히려 그 얌전함이 이상했다.
“왜 가만히 있어?”
“손만 잡으라며.”
“그래도 그렇지.”
“그럼 안아도 돼?”
“또 묻는다.”
“중요하니까.”
서윤이 한숨을 쉬는 척했다.
“알아서 해.”
민재가 웃었다.
“그 말 제일 좋다.”
그가 서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서윤은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잠시 뒤 민재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둘 다 동시에 화면을 봤다.
서윤의 몸이 살짝 굳었다.
“또 혜진 씨야?”
“아니.”
“그럼 누구?”
민재가 화면을 보여줬다.
‘정민호.’
남자 이름이었다.
서윤이 피식 웃었다.
“괜히 긴장했네.”
민재가 웃었다.
“질투 귀엽다.”
“또!”
“미안.”
민재는 전화를 받았다.
“어, 민호야.”
서윤은 그의 품에서 몸을 떼려 했다.
민재가 팔을 놓지 않았다.
“왜.”
서윤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전화하잖아.’
민재가 손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제법 컸다.
“야, 너 내일 모임 나올 거지?”
“내일?”
“응. 대학 동문 모임. 까먹었냐?”
민재가 잠시 생각했다.
“아.”
“혜진도 온다던데.”
서윤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민재도 그것을 느꼈다.
“민호야, 나 내일은…….”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여자 생겼냐?”
민재는 서윤을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응.”
서윤의 눈이 커졌다.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뭐?”
“여자친구 생겼어.”
서윤이 민재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었다.
“진짜냐?”
“응.”
“누군데?”
민재가 서윤을 보며 말했다.
“예쁜 사람.”
서윤이 다시 꼬집었다.
“아!”
“왜 그래?”
“아무것도. 어쨌든 내일은 못 갈 것 같아.”
“야, 얼굴 좀 보여줘. 혜진도 오랜만에 온다는데.”
민재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래서 더 안 갈래.”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민재는 차분하게 덧붙였다.
“괜히 애매하게 만들 필요 없잖아.”
서윤의 손이 멈췄다.
“그래, 알았다. 나중에 보자.”
전화가 끊겼다.
서윤은 아무 말 없이 민재를 바라봤다.
“왜?”
“아까 뭐라고 했어?”
“뭐가?”
“여자친구.”
“응.”
“예쁜 사람.”
민재가 웃었다.
“사실이잖아.”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왜?”
“내가 좋아하잖아.”
민재의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알았어.”
“그리고.”
“응?”
“혜진 씨 때문에 모임 안 가는 거야?”
“응.”
“나 때문에?”
“그것도 있고.”
“그럼 가지 마.”
“안 가.”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칭찬해 주는 거야?”
“응.”
“보상은?”
“없어.”
“왜?”
“당연한 걸 했으니까.”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서윤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민재가 말했다.
“응?”
“내일 네 일정 있어?”
“왜?”
“같이 있고 싶어서.”
“어제도, 오늘도 같이 있었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논리야?”
“연속성이 중요해.”
서윤이 웃었다.
“정말 말은 잘 만들어.”
“내일 뭐 해?”
“오전에 약속 있어.”
“누구랑?”
“왜?”
민재의 표정이 바로 달라졌다.
서윤이 알아차렸다.
“또 질투하려고?”
“아니.”
“표정이 그래.”
“누군데?”
서윤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남자.”
민재의 눈이 커졌다.
“누구?”
“친한 사람.”
“얼마나 친한데?”
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봐. 너도 똑같잖아.”
“누구냐고.”
“편집장.”
민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아.”
“아?”
“그럼 괜찮네.”
서윤이 눈썹을 올렸다.
“왜 편집장은 괜찮아?”
“일이잖아.”
“남자야.”
민재가 다시 굳었다.
서윤은 더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나한테 관심 좀 있는 것 같던데.”
민재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진짜?”
“응.”
“어떻게 알아?”
“여자는 알아.”
“뭘 했는데?”
“밥 먹자고 하지.”
“업무 때문에?”
“글쎄.”
민재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서윤은 웃음을 참으며 계속 말했다.
“옷 예쁘다고도 하고.”
“뭐?”
“머리 바꿨냐고 알아보기도 하고.”
민재가 몸을 바로 세웠다.
“그건 좀 이상한데.”
“뭐가?”
“편집장이 왜 네 머리를 봐.”
서윤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지금 질투하는 거 맞지?”
“응.”
이번에는 너무 솔직했다.
“어?”
“질투해.”
서윤이 웃음을 멈췄다.
민재가 그녀를 바라봤다.
“싫어.”
“뭐가?”
“다른 남자가 네 머리 바뀐 걸 알아채는 거.”
서윤의 입가에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왜?”
“그건 내가 하고 싶으니까.”
“뭘?”
“네가 머리 조금 잘라도 알고 싶고, 립스틱 색 바뀌면 알아보고 싶고.”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제보다 피곤해 보이면 무슨 일 있었는지 제일 먼저 묻고 싶어.”
서윤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 건.”
민재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어.”
그 말은 질투라기보다 욕심에 가까웠다. 상대의 일상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욕심.
서윤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럼 잘 봐.”
“뭘?”
“나.”
민재가 웃었다.
“매일 보고 있는데.”
“더 잘.”
“알았어.”
“그리고.”
서윤이 일부러 진지하게 말했다.
“내일 편집장 만난다.”
민재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알아.”
“둘이.”
“…….”
“점심도 먹을 수도 있고.”
“서윤아.”
“왜?”
“지금 나 놀리지?”
“조금.”
민재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서윤이 그의 쪽으로 기울었다.
“어머.”
“재미있어?”
“조금.”
“질투시키는 거 하지 말라며.”
“너도 한번 당해봐야지.”
“이건 반칙인데.”
“왜?”
민재가 서윤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내가 생각보다 질투 심하거든.”
“알 것 같아.”
“내일 끝나면 바로 연락해.”
“왜?”
“데리러 갈게.”
“필요 없어.”
“갈 거야.”
“왜?”
민재가 낮게 말했다.
“편집장한테 보여주려고.”
“뭘?”
“너 남자친구 있다고.”
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유치해.”
“알아.”
“몇 살인데.”
“네 앞에서는 자꾸 어려져.”
“그럼 와.”
민재가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응.”
“안 말릴 거야?”
“대신.”
“뭔데?”
“회사 앞에서 막 손잡고 그런 거 하지 마.”
“왜?”
“부끄러우니까.”
“그럼 팔짱.”
“안 돼.”
“어깨.”
“안 돼.”
“그럼 그냥 서 있기만?”
서윤이 웃었다.
“응.”
“그건 너무 약한데.”
“싫으면 오지 말고.”
“갑니다.”
“말 잘 들어.”
“네.”
잠시 뒤 민재가 묻더니 웃었다.
“그런데 서윤아.”
“응?”
“편집장 진짜 너 좋아하는 거 맞아?”
“왜?”
“확인 좀.”
서윤이 웃으며 그의 코끝을 살짝 눌렀다.
“몰라.”
“박서윤.”
“왜?”
“이러면 나 내일 아침부터 신경 쓰이잖아.”
“그러라고.”
“복수야?”
“응.”
“질투 많이 한 죄?”
“응.”
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무서운 여자네.”
“이제 알았어?”
“응.”
“그래도 좋아?”
그는 바로 대답했다.
“더.”
“왜?”
“나한테 이렇게 구는 사람 처음이라.”
“싫은데?”
“아니.”
민재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좋아.”
서윤이 그의 어깨에 다시 기대었다.
잠시 후 민재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서윤아.”
“응.”
“내일 정말 갈게.”
“와.”
“편집장보다 내가 잘생겼어?”
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왜 물어?”
“중요해.”
“나이 먹고도 이런 게 중요해?”
“연애하니까.”
“몰라.”
“비교해 봤어?”
“내일 비교해 볼게.”
민재가 몸을 일으켰다.
“나 지금 집에 갈래.”
서윤이 놀라 그를 쳐다봤다.
“왜?”
“상처받았어.”
“정말?”
“응.”
그런데 입꼬리는 웃고 있었다.
서윤이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앉아.”
“싫어.”
“강민재.”
“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자 누군지 알아?”
민재의 움직임이 멈췄다.
서윤은 그를 바라보았다.
“너야.”
민재가 다시 앉았다.
“다시.”
“싫어.”
“한 번만.”
“방금 들었잖아.”
“그래도.”
서윤이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강민재.”
“응.”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자는 너야.”
그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지금만?”
서윤이 웃었다.
“욕심내지 마.”
“조금만 더.”
“그럼.”
서윤이 생각하는 척했다.
“내일까지.”
민재가 웃었다.
“그 뒤는?”
“내일 다시 계약.”
“매일?”
“응.”
“평생 갱신할 수 있어?”
서윤은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장난처럼 넘기지 않았다.
“네가 잘하면.”
민재가 웃었다.
“그럼 잘해야겠네.”
“아주.”
“뭐부터?”
서윤은 그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일단 오늘.”
민재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늘 뭐?”
서윤이 가까이 다가가 낮게 말했다.
“질투한 사람 달래주기.”
“어떻게?”
“그것도 내가 가르쳐야 해?”
민재가 웃었다.
“아니.”
“그럼?”
그의 팔이 서윤을 감쌌다.
“오늘은 내가 알아서 해볼게.”
이번에는 서윤이 먼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 뒤, 소파 옆 탁자 위에 놓인 두 사람의 휴대전화는 동시에 조용해졌다.
누구의 과거도, 누구의 연락도 끼어들지 못하게.
그 밤만큼은 오직 둘의 현재만 남아 있었다.
― 1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