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시는 82개의 동굴이 산재해 있는 ‘동굴도시’다.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 문화재나 지방기념물 등 관리 대상 동굴로 지정된 곳만 55개소에 달한다. ‘환웅(桓雄)이 백두산 신단수(神壇樹)가 아닌 삼척으로 내려왔다면 사람 되기를 소망하는 곰과 호랑이를 어느 동굴에 넣어야 할지 무척 고민했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민들은 “백두산 동굴 속에서 삼칠일(21일)을 버텨 여자로 변한 단군의 어머니 웅녀도 이 지역 동굴에 있었다면 절경에 취해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자랑한다. 다소 생뚱맞게 들리는 가설이다. 하지만 기묘한 모습의 종유석과 석순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로 가득찬 동굴내부를 한번 쭉 살펴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웅장한 규모의 환선굴 통일광장 <제공 : 삼척시>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된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산 117번지에 위치한 ‘대이동굴군’엔 환선굴, 관음굴, 사다리바위 바람굴(제암풍혈), 양터목세굴, 덕밭세굴, 큰재세굴, 대금굴(물골동굴) 등 7개 동굴이 자리잡고 있다. 이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동양 최대의 석회암 동굴인 ‘환선굴’이다. 1997년 10월부터 개방된 환선굴엔 그동안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국민 5명중 1명이 환선굴을 관람한 셈이다. 동굴 개방으로 연간 100억원 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거둔 삼척시는 2002년 21개국 53개 도시 및 단체가 참가한 세계 최초의 ‘동굴 엑스포’를 개최하기도 했다.
환선굴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돔형 석순인 ‘옥좌대’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2차 생성물이다. <제공 : 삼척시>
환선굴은 해발 1071m의 덕항산(德項山) 기슭 5부 능선 절벽 밑(해발 535m)에 위치해 있다. 이 산의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사면이다. 서쪽은 고위평탄면을 이룬다. 석회암 사면은 ‘지하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환선굴을 품고 있다. 첩첩산중에 자리한 골말은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였다. 그러나 환선굴이 공개돼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가 찾아왔다. 한국전쟁도 모른채 지나갔던 마을엔 넓은 주차장과 식당 등이 들어섰다. 관광객들은 덕항산 중턱에 위치한 환선굴을 보기 위해 대이리 매표소에서 산비탈을 따라 1.5㎞ 가량 걸어서 올라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는 매표소에서 환선굴 입구까지 모노레일이 설치돼 좀 더 편하게 동굴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종유석과 유석, 종류과, 산호커튼 등 2차 생성물이 모여 거대한 종류벽을 이룬 ‘꿈의궁전’. <제공 : 삼척시>
환선굴은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이란 명성에 걸맞게 스케일이 장대하다. 동굴 입구폭이 14m, 높이가 10m이고, 내부는 폭 20~100m 높이가 20~30m에 달한다. 길이는 6.2㎞로 현재 1.6㎞ 구간만 개방돼 있다. 5억3000만년 전 고생대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의 내부엔 종류석, 석순, 석주 등 각종 ‘동굴 생성물’들이 잘 발달돼 있다. 환선굴에서 발견된 동물은 꼬리치레도롱뇽, 김띠노래미, 관박쥐, 꼽등이, 장님굴새우 등 모두 47종이다. 이중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종은 환선굴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거대한 편심종유석인 ‘도깨비방망이’ 위엔 물이 흐르고 표면에는 산호와 커튼이 형성되어 있다.<제공 : 삼척시> |
광장 남쪽 구석의 작은소 위 벽면 새 형상의 종류석 위에 형성된 석순인 ‘마리아상’. <제공 : 삼척시> |
경사복합형 석회암 동굴로 노화와 생성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환선굴 내부를 한번 둘러보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도 동굴내부의 온도가 10~15도를 유지하고 있어 피서철에 찾는 이들이 많다. 동굴 인근에는 300여년 된 너와집(국가중요 민속자료 221호)과 굴피집(국가중요 민속자료 223호)을 비롯, 100여년전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통방아(국가중요 민속자료 222호) 등 색다른 볼거리도 풍성하다.
커다란 싱크홀로부터 쏟아지는 폭포가 소를 이루는 제1폭포’. 왼쪽 가지굴을 통과하면 만물상이 펼쳐진다. <제공 : 삼척시>
환선굴의 첫 발견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1662년 허목선생이 저술한 척주지에 최초로 기록돼 있을 뿐이다. 그 옛날 화전을 일구던 주민들이 발견한 후 구전을 통해 척주지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6년 환선굴이 위치한 대이동굴지대 일원이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된 이후 30년만인 1996년 군립공원이 됐다.
환선굴에는 많은 전설과 설화도 전해진다. 옛날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수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멱을 감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쫓아가자 지금의 환선굴 근처에서 자취를 감추고 바위 더미를 쏟아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여인을 선녀가 환생한 것으로 보고 바위가 쏟아져 나온 곳을 환선굴이라 부른 뒤 제를 올리며 평안을 기원하게 됐다. 주로 ‘선녀가 환생했고, 스님이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들이다. 동굴 안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선계(仙界)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왜 이같이 많은 전설이 전해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굉음을 내며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동굴 내 폭포수는 범접하기 힘든 세계에 함부로 들어온 인간을 꾸짖는 듯 하다.
퇴적된 점토층 상부가 석회화돼 만리장성의 성벽처럼 형성된 ‘만리장성’. <제공 : 삼척시>
환선굴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약 5억3000만년전)에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굴 주변에선 삼엽충, 극피류 등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열대지역의 수심이 낮은 바닷속에 있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이동해 덕항산 중턱(해발 500m 부근)에 위치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일대엔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조선누층군의 석회암이 널리 분포한다.
환선굴 소망폭포.<제공 : 삼척시>
환선굴은 하부고생대의 퇴적암류인 조선누충군 태백층군의 대기층에 주로 발달돼 있다. 동굴 구조 또한 독특하다. 수평 및 경사, 수직 통로를 갖춘 환선굴은 남북방향으로 발달한 복합동굴이다. 내부에 수로와 호수, 폭포가 연속적으로 발달해 있고, 연중 많은 양의 동굴수가 흘러나온다. 물이 흐르는 방향이나 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의 퇴적물이 동굴바닥에 분포하고 있다. 동굴수가 활발히 흐르는 수로 등은 사질과 역질 퇴적물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고, 운반에너지가 낮은 호수 같은 지점엔 이질퇴적물이 많다.
환선굴 옥좌대<제공 : 삼척시>
환선굴엔 태고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억 년을 이어 오면서 발달한 종유석과 석순 등 다양한 2차 생성물을 간직하고 있다.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기묘한 형태의 2차 생성물들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동굴 내부엔 10여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6개의 폭포, 축구장 크기의 거대한 광장이 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웅장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환선굴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돔형 석순인 ‘옥좌대’다. 옥좌대는 수천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광장 한복판 30m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형성된 평평한 모양의 거대한 석순이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옥좌대 표면에 연꽃 형상을 그려내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천정의 싱크홀이 하트모양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사랑의 맹세’. <제공 : 삼척시>
커다란 싱크홀로부터 쏟아지는 폭포가 소(沼)를 이루는 ‘제1폭포’의 왼쪽 가지굴을 통과하면 만물상이 펼쳐진다. 광장 남쪽 구석의 작은소 위 벽면 새 형상의 종류석 위엔 마리아상 석순이 형성돼 있다. 종유석과 유석, 종류과, 산호커튼 등 2차 생성물이 모여 거대한 종류벽을 이룬 ‘꿈의 궁전’과 거대한 편심종유석인 ‘도깨비방망이’, 천정의 싱크홀이 하트모양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사랑의 맹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걸작들이다.
환선굴 지옥의 다리.<제공 : 삼척시>
이밖에 백색유석이 자란 후 황색유석이 그 위를 덮으면서 형성된 ‘미녀상’과 수많은 림스톤 풀이 모여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 계단식 논을 연상케 하는 ‘만마지기 논두렁’, 천정의 낙수에 의해 만들어진 ‘대머리형 석순’, 퇴적암이 만든 웅장한 ‘만리장성’ 등 볼거리가 수없이 많다. 천정에 발달된 용식구와 용식공들은 작은 동굴엔 없는 지형들이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소망계곡의 소망석 앞에서 저마다 소원을 빈다. 출렁다리 ‘지옥교’를 건너 ‘천당계곡’을 오가다 보면 세상사에 찌든 속인의 번뇌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종유관이 1㎜ 가량 자라는 데 필요한 기간은 200년. 삼라만상의 모습을 만들어 낸 시간의 화석으로 가득한 환설굴은 발걸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환선굴의 입장료는 어른 4000원(30인 이상 단체 3500원), 청소년·군인 2800원(단체 2500원), 어린이 2000원(단체 1700원)이다. 모노레일 이용료는 별도다. 동굴을 둘러본 후 천은사나 준경묘, 영경묘 등을 찾는 것도 좋다.
- 경향신문 전국부 기자
- 경향신문 강원도 주재기자로 자연 생태·환경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동안 동·식물학자 등 전문가 그룹과 함께 여러 차례 비무장지대의 하천을 탐사하는 등 DMZ의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