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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506 하나님의 비밀 맡은 자(고린도전서4장1-5절)
성경말씀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 고린도전서의 중심부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개 앞 부분에는 고린도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었다 하는 얘기를 했는데, 그 문제 중에 하나가 사람을 놓고 비교하거나 또 판단하거나 이런 일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비교 안할 수가 없죠.
교역자가 첫 번째 교역자가 있고, 그 다음 두 번째 교역자가 있으면 바로 비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바울이 초대교역자이고,
그 다음에 두 번째 아볼로가 부임하게 되니까 당장 비교하는 거죠.
바울과 아볼로 중에 누가 나으냐?
틀림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데, 누가 나으냐? 비교하는 것 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바울은 바울대로의 은사가 있고 또 그런 사명이 있다는 거죠.
아볼로는 아볼로대로 자기 할 일이 있어서 거기 간건데, 그것을 비교하고 또 비교만 하고 마는게 아니고 판단하고 그래서 파가 갈라지고 이렇게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판단하고 비교하는게 없을 수는 없는데, 거기에 매여가지고 그 다음에 파가 갈라지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비교 안 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비교합니다.
하다못해 바울은 키가 작다든지 비교 되죠.
아볼로가 말을 잘 한다든지 비교되는 거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심을 해야 돼요.
지금은 우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샤론교회 제가 초대 교역자이니까 지금 우리 교회 안에서는 비교할 사람이 없죠. 저 혼자니까..
그 다음에 교역자 바뀌고 나면 비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어떤 목회자가 있을 거란 말이죠.
머리 속에 남아 있으니까 비교할려고 하면 비교되는 거죠.
비교해가지고 그 다음에 판단하고, 판단을 넘어서 정죄하고, 또 지나치게 사람을 칭친하고 이것도 문제가 돼요.
지금은 이게 어떤 사람들이 누구를 지나치게 칭찬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하면 반드시 반대의 의견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무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비교하고 판단하고 하면 뭐든지 지나치게 되면 또 반대 의견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이게 고린도 교회가 유치하다는 증거인데, 바울을 지나치게 칭송하고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반면에 아볼로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그 다음에 나는 베드로파다. 베드로를 보지도 않고 베드로파다 이렇게 한다든지, 나는 그리스도파다. 이렇게 된 모든 것이 누구를 나쁘게만 말한게 아니라 누구를 더 좋다고 칭찬하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여러분 사람을 지나치게 자랑을 할게 아니야.
지나치게 자랑하면 반드시 거기에 반대 의견이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여기 우리 신약성경에 교만이라는 단어가 열네 번이나 나와요. 교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게 아닙니다.
열네 번 나오는데, 그 중에 여섯 번이 고린도전서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사람들이 사실은 아직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상당히 교만한 생각을 했다는 거야.
교만한 생각을 해가지고 바울을 평가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아볼로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정죄하고.. 이렇게 해서 싸움이 붙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우리’ 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나를’ 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한 것은 사도바울 자신과 아볼로도 바울이 에베소에 일하고 있을 때 아볼로도 지금 바울에게 와 있거든요. 둘 다 함께 있는데, ‘우리를’ 할 때는 ‘아볼로와 바울’ 우리를..
..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맡은 자’는 청지기라는 뜻이죠.
여러분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사안수 받기전에 면접이 있어요. 노회에서..
선배 목사님들이 목사안수 받을 사람을 놓고 면접을 하는데, ‘교회 주인이 누구냐?’ 묻더라고..
그런데 교회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죠?
그 때 왜 교회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느냐 하면, 우리 교단에 언론계에 종사하던 어떤 장로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너무 똑똑한 거야.
그래서 ‘교회 주인은 장로다’ 해가지고 온 한국 우리 교단 전체를 뒤흔들었어요.
‘교회 주인은 장로고, 목사는 우리가 봉급 준다. 이 등신아.. 우리 장로가 교회 주인이고 목사는 우리가 고용한 사람이다.’
그래가지고 전국 장로세미나를 하면서 모든 전국의 장로들에게 그렇게 세뇌를 시킨거야.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우리 통합측 모든 당회마다 어떤 시원찮은 장로는 거기에 혹해가지고 야 우리가 주인이구나..
그래가지고 그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니까 우리 진주노회에서 제일 힘있는 그런 목사님이 면접을 하면서 교회 주인은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예수님이다..
그것을 분명히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난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그것을 우리가 왜 그게 무슨 말이 되느냐? 그게 당연한 건데 면접에서 묻느냐 싶은데 사실은 지금도 생각을 해봐야 돼요.
교회 주인은 목사도 아녜요. 그런데 실제로 너무 목사들이 교회 주인처럼 생각하는 거야.
잘못된 겁니다.
그렇다고 장로님이 주인이냐? 장로님도 아니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고 우리는 다 종들이예요. 일꾼.. 맡은 청지기..
여기 일꾼이라는 말이 ‘오이코노모스’라는 말이 ‘집에 일 맡은 관리인’입니다. 관리인..
..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구한다’는 것은 요구한다는 것이 아니고 ‘찾다’는 것입니다. 찾다..
충성은 충성하라 그 말이 아닙니다.
여기 이 말도 우리가 노회에서 교회에 임직할 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할 때 충성하라 이렇게 하는데, 여기 앞뒤 문맥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서 무엇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느냐?
‘충성하다’는 말이 ‘피스토스’라는 말인데, 얼마나 믿을 만하냐 신실하냐 그것을 따져야지, 얼굴이 잘 생겼다 못생겼다 키가 작다 크다 무슨 말을 잘한다 못한다. 그런 것 가지고 평가하지 말라는 그 얘기를 하면서,
그 바울이나 아볼로가 충성되게 일 했으면 그것으로 끝나야지, 다른 것을 가지고 외적인 것을 가지고 칭찬하거나 책망하거나 비판하거나 판단하거나 하지 말라 하는 것 때문에 나온 말이예요.
3절에 보면 바로 나오죠.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대단한 거죠.
저도 참 괴로운 말들을 가끔 듣습니다.
굉장히 듣기 괴로운 말을 가끔 듣는데, 그 때 나를 추스리고 저 자신을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구절이 바로 고린도전서 4장 3절이예요.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나 자신을 제일 잘 알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내가 나를 판단하는게 맞느냐? 그것도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절은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인데,
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것은 어려운 일이죠.
여러분 스스로 자책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까?
바울은 적어도 스스로 자기를 자책할 것이 없을만큼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가지고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나를 바르게 판단하실 분은 주님밖에 없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그 때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니까 바울은 칭찬받아도 하나님께 가서 칭찬받는게 중요한 것이지, 사람들이 막 바울을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하는 것은 하나도 그것 가지고 연연할게 아니다.
그리고 또 바울에 대해서 고린도 사람들이 ‘자칭 사도요 무슨 덜떨어진 사람이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다.’ 별 소리를 다 했거든요. ..
체격이 좀 우람하지 않고 그런 것을 가지고 달이 덜 찼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말을 했다 그말이죠. 그런 얘기가 나중에 나와요.
그래서 바울이 자기를 소개할 때, ‘그래 너희 말대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 주셨어.’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니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하는 소리예요.
그러니까 고린도 교인들이 꽤 교만해졌어. 아직은 그리스도 안에서 젖이 덜 떨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교만해가지고 그래서 사도바울을 칭찬하는 것을 두고,
여러분 칭찬이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벌써 교만해가지고 바울을 칭찬하거나 아니면 판단하거나 하는 것 자기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이 바울을 칭찬하거나 정죄하거나 판단하거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때 바울이 아주 초연하게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이 내게 매우 작은 일이라. 칭찬 받아도 아무 것도 아니요, 너희가 판단해도 그 판단이 옳은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제가 ‘음식을 가려먹는 것이 좋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가서 ‘노우호 하면 율법주의..’ 이런 판단을 제가 받거든요.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이 지극히 작은 일이다.’
그 외에 별별 소리를 다 듣지만 그것 가지고 잠도 못 자고 그렇지 않아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사람이 젊은 날에 그런 말을 들을 때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런 말 들어도, 이제는 괜찮은 거야. 자기 생각이니까..
여러분도 이런 저런 말을 들을 때,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여러분 음악의 세계에서 어떤 분이 피아노 바이올린 독주를 했는데 온 청중들이 다 박수를 쳐도 하나도 기뻐하지도 않고 떨떠름해 있더니, 지도한 선생님이 만족하니까 그제서야 기뻐했다.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야 그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막 칭송받는 것 사람들에게 우리가 비난받거나 돌아볼 것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에 너무 연연해 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에 5절 끝에,
..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잘 한 게 있으면 하나님이 칭찬할 것이지, 사람이 칭찬해봤자 별것 아니라는 겁니다.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거기 ‘교만’이라는 말이 한번 나오죠.
그래서 우리가 기록한 말씀 이것도 잘 못 배우면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막 그저 누구를 판단하거나 그런 것은 잘못된 거죠.
그래서 서로 대적하여서, 대적하는 것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대적하고 교만한 거죠.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자랑했고 교만했고 고린도인들이 칭찬도 하고 판단하고 이런 것을 너무 많이 했어. 아직은 어린애 수준에 있으면서..
지난번에 3장에서 봤잖아요. ‘너희가 아직도 사르키코스 수준이다. 젖도 안 떨어진 사람, 사르키코스이면 육신에 속한 사람 아직도 젖이 안 떨어진 사람들이 바울을 판단하고 그렇게 할게 아니지 않느냐’ 그런 얘기죠.
너희가 칭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여러분 사도바울이 굉장히 영광스럽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도살장으로 갈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미말에, 맨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비천하게 그렇게 지금 처해 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후욕’이라는 말은 ‘비난’입니다.
바울이 비난을 당합니다. 영어로 슬랜더(slander) 헐뜯는 거죠.
헐뜯는 소리를 해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사도인 우리가 만물의 찌끼같이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복음으로 낳은 것을 말하면 내가 너희의 아비뻘이지, 스승이야 일평생 많은 스승을 만날 수 있지만, 참 복음을 가지고 자기를 낳아준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는 것 아니냐..
..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여러분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본받는 자라는 것은, ‘죽이기로 작정된 자 미말에 있고 만물의 찌끼같이 되고 매맞고 천사와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고, 그렇게 항상 약하고 비천하고 그런 낮은 자세를 취하라’ 그 말이죠.
17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가 지금 이 고린도전서를 가지고 가서 읽어주고 가르치고 할 거거든요.
18절,
18 어떤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최고의 문제죠.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교만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러니까 내가 너희에게 못 갈 줄 알고 그렇게 교만하냐? 그런 말이죠.
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그 능력이 무슨 기적을 행하는 능력뿐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봉사하고 얼마나 충성하는지.. 그런 능력도 없이 말만 잘해가지고..
여러분 고린도 사람들이 말을 잘 하거든요.
지혜와 언변에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을 잘 못하는 것을 가지고 평가하고 그렇게 판단하고 했던 것이다 옳지 않다 그 말이죠.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그러니까 ‘맞을래? 어쩔래?’ 그런 얘기죠.
‘매를 가지고 가랴? 사랑의 마음으로 가랴?’
이렇게 굉장히 격하게 바울이 하는 거예요.
이것은 굉장히 부드럽게 한 말이 아니고, 이러한 말을 듣고도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한 것이 아니고 더 교만한 소리를 했어요. 더 교만한 소리를..
디모데가 이것을 가지고 가서 읽어주고 설명할 때, 이 디모데는 나이가 어리잖아요. 젊고 어리니까 그것을 가지고 고린도 교인이 얼마나 바울도 비난하고 디모데도 그냥 깔보고 업신여기고 해가지고 그 얘기는 나중에 고린도후서를 읽으면 그 때 바울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5장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아비의 아내면 자기 어머니 뻘이예요.
아버지도 참 못된 사람이죠. 진짜 어머니가 아닌 모양이죠. 그렇죠?
아마 자기 아비가 너무 젊은 여자를 취했다가 아버지가 죽고 나니까, 그 아버지가 데리고 살던 여자를 취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을 취했다 하니까,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쫓아내야지 그런 것은 당장..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무서운 얘기죠.
사도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를 사임하고 지금 에베소에서 개척하면서 이 편지를 보냈는데, 에베소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마음으로 판단해가지고 기도하는 중에 이 사람을 그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줬다는 거야.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건데, 옛날에는 교회에서 치명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광을 훼방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재판 해요.
재판할 때 판결문이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너를 사단에게 내어주노라’ 하고 내어 쫓아버립니다.
그러면 대개 죽어요.
교회 밖에 나가서 얼마 있다가 죽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이는 육신은 멸하고, 육신은 멸한다는 말은 이미 지은 죄는 일순간 실수로 보고 더 이상 지속적이고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죄를 짓지 않게 해서 그 영혼이라도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할려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할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권징이 오늘날 교회에서 사라졌습니다.
제가 성경학교 공부할 때 하동읍교회에 있는 이성찬 목사님이라고 아주 참 거물급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분은 우리 총회에서 헌법 해석위원이었고, 여러 자녀를 길렀는데 자녀교육에 아주 성공한 그런 존경받는 그런 목사님이셨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목회학을 가르치면서 자기 경험을 한번 이야기 했어요.
자기 평생에 그때만 해도 법이 시끄럽고 이분은 아주 법통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잘못하면 정말 치리를 정상적으로 치리를 하신 거예요.
뭘 했느냐 하면, 형제간 두분이 나란히 장로가 된 거예요.
장로가 될 때까지 잘 했대.
집사 시절에 너무 너무 잘해가지고 점수를 따가지고 장로가 되었는데, 장로가 된 후에 알려지게 된 것은 담배를 못 끊은 거야.
혹시 우리 교회 담배 피는 분이 있으면 그런 분은 제가 알지도 못하고, 그 이성찬 목사님 하는 얘기가 그래서 한번 권면했다는 거야.
‘담배 피는 것은 성령의 전이 되는 우리 육체를 더럽히는 것이고 병들게 하는 것이니까 끊어야 됩니다.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합니다.’ 끊으시라고 권면했대요.
그런데 못 끊고 또 그 소식이 들려온 거야.
두 번째 불러서 또 다시 권면하고, 권면한 다음에 견책입니다.
견책이라는 것은 책망인데 징계에 속해요.
그래서 책망을 했는데, 책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안 끊었어요.
세 번째 불러가지고 치리를 한 거야.
장로 시무정지로 이렇게 했는데, 큰 벌입니다.
시무정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수찬정지예요.
성찬식에 참여 못하는 것이고, 더 큰 벌은 교회에서 출교하는 겁니다. 제명을 하는 거예요. 이름을 제하는 것..
여러분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인다고 했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
그런데 이분이 끝까지 형제 장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담배를 안 끊고 회개를 안 했다는 거야.
그래서 결국은 치리를 했는데, 치리하자말자 형님 먼저 돌아가시고 그리고 동생도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그래서 이성찬 목사님 하는 얘기가 절대로 치리를 함부로 하지 말라.
자기 평생에 충격이 되어가지고 자기가 법을 전공했지만 치리를 함부로 할 것이 아니더라. 하시면서 우리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은 제가 들었어요.
저는 다행히 치리를 한번도 안 했죠.
안했는지 못했는지 어떻든 그런 일이 없었는데,
지금 같으면 누가 담배 핀다고 치리하고 그런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마음놓고 피우라 그 말은 아닙니다.
지금 같으면 누가 담배 핀다고 당장 치리하고 그렇지 않거든요.
전에 있던 무안교회 지금 장로님이 되셨는데, 무안교회는 굉장히 짭니다. 제가 있던 교회이지만..
여간 해서는 장로가 안 되는 겁니다.
나이가 저와 동갑이고 시의원을 두번하고 지금 도의원인데, 다 좋은데 담배를 못 끊는 거예요.
그래서 벌써 되었어야 될 분이 장로가 안 되었는데, 교회가 오래 지켜봤어요.
그런데 제가 나오고 나서 교회가 그렇게 짜게 하는 교회가 그 담배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가 이분에게 담배피는 것 한 가지 말고는 뭘 가지고 흠 잡겠냐? 충분히 우리 교회 장로로 일 할 분이다 해가지고 담배 피는 것을 알고도 그 교회가 장로로 세웠어요.
잘 한건지 못 한건지 하나님은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면에서 무안교회도 상당히 열려있고 옛날과 다르게 교회가 오히려 성숙한 편이다.
그렇다고 제가 우리 교회도 담배 피워도 장로된다. 그런게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치리중에서 참 굉장히 무서운 치리였는데, 사도바울이,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더 이상 죄를 안 짓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해야 영이라도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할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치리를 한다해도 이것이 감정으로 한게 아니라 사랑하는 하는 거예요.
이런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돼요.
성경에 이런게 있으니까 우리도 치리하자. 이런게 얘기고 아니라, 바울이 이런 치리하는 정신도 사랑하는 것이지, 그것을 감정으로 한게 아니라는 거죠.
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이란게 좋게 말할 때 보다는 좋지 않게 말하는 수가 많은데, 이게 교회를 변질시키는 그런 누룩이 온 교회에 퍼지기 쉽다.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우리가 마치 하나님께 드려졌던 진설병이라는게 누룩 없는 것으로 하거든요.
그런 것처럼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질 진설병같은 떡이라면 그 떡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없는 떡으로 드려졌으면 좋겠다..
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여기 줄을 그으세요.
5장 9절에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하는 말이 이게 지금 현재 쓰는게 아니고, 과거로 되어 있어요. 과거로.
그래서 ‘에그라파 엔테 에피스톨레’ 하면 ‘내가 그 편지에서 쓰기를’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말이 지금 쓰고 있는 이 고린도전서가 아니고, 이것보다 먼저 고린도에 전달된 편지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을 제가 이름 짓기를 ‘고린도전전서’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은 거야.
지금은 그 편지가 없습니다. 지금 보존되지 않고 찾을 수도 없는데, 분명히 이 편지 앞에 또 한 편지가 더 갔다는 것을 학자들도 다 동의를 합니다.
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우리가 만약에 그런 사람과 도무지 상종도 안 하고 이렇게 할려면 지구에서 내려야 되겠죠.
그 얘기가 아니고 바울이 하는 말은,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외인들을 판단하는 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이 악한 사람은 바울이 멀리 있지만 원격재판을 한 거죠.
에베소에 있으면서 고린도에 있는 사람을 재판해가지고 사단에게 내어줬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미 내 마음에 쫓아냈으니까 너희도 이런 사람 내 쫓으라.
그게 누구냐 하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자죠. 못된 사람..
이 패륜아를 교회에서 수용하고 용납하고 있어봐라. 그런 것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구약성경 스가랴서 공부할 때 보셨죠.
거기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라는 사람이 이방 여자를 취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일에 대해서 상황이 다르죠.
어떻든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징벌하지 않고 사면하고 또 제사장 직에 복직하고..
이렇게 되는 것을 보더니 그게 그냥 누룩이 되어가지고 온 덩어리에 다 퍼져가지고, 에스라가 두 번째 왔을 때 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이방 여자를 취해가지고 아내 삼는 그런 누룩이 퍼졌다는 거야.
그래서 치명적으로 잘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 정리를 하고 치리하고 교회를 누룩 없는 떡이 되도록 하라.. 그런 얘기예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한 말이 달콤하고 아주 은혜가 넘치는 이런 얘기가 아니고, 아주 서슬이 시퍼런 칼 같은 말씀이예요.
그 동안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 설교 들을 때 ‘잘 된다 복 준다 축복 축복’ 이런 것만 들었지, 하나님 말씀이 이렇게 서슬이 시퍼렇게 좌우에 날선 검 같은 그런 말씀으로는 인식을 못해요.
그리고 치리가 완전히 거의 징계나 권징이 사라졌다 할 수 있는데, 징계 해봐요.
징계하면 ‘응? 이 교회 없으면 교회 없나?’ 하면서 딴 교회 가버려요.
딴교회에서는 안 받아줘야 되는데, 환영파티를 해주니까..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이게 거룩하지 않게 된 이유가 권징이 옛날처럼 살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 자체들이 너무 많이 잘못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미래교회를 생각할 때 어른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 생각할 때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인터넷에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 중에 예수 믿고 돌아온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는 거예요.
핍박은 무지무지한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난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기뻐해야 될 것이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주고 그게 영화까지 나왔어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거예요.
감사한 일이죠.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이방인의 때가 다 된 것이 아니냐..
누가복음에 보면 예루살렘의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의 발에 밟히리라 그랬어요.
그리고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기까지 이스라엘 중에 더러는 완악하여졌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복받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돌아오게 되면, 유대인들이 돌아오게 되면 구원 역사의 종말이 가까워 오는 거야.
두려운 일이야.
사실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발에 밟히는 것도 참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회복하고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게 되면 교회 역사 우리가 선교하고 전도할 수 있는 시대가 다 끝나가는 것이 아니겠나..
우리가 그것을 반대할 일이 아니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 사람들 위해서 기도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예요.
오늘 교회가 전혀 거룩하지 않고 뉴스 엔 조이라고 하는 그런 교회 개혁신문이 있습니다. 인터넷 신문인데, 거기에서 ‘당신은 왜 기독교를 싫어합니까?’ 하고 글을 하나 누가 올리고 그 밑에 이유를 쭉 달게 했는데,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가 막 주저리 주저리 달렸습니다.
그런데 물론 아주 괴악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읽어보면 우리가 당연히 부끄러워하고 회개할 일이 많아요.
너무 교회가 잘못된 거야.
그래서 지난번에 우리가 작년 2009년도에 한국에 기독교 윤리 실천 연구회에서 한국의 성인 1천명을 무작위로 설문조사를 해가지고 종교 신뢰도 조사를 했더니, 불교가 36% 카톨릭은 29% 기독교는 18.1%예요.
그런데 그 안에 기독교인 수가 18.3%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가 외형으로 비춰지는 모습들이 불교만큼도 일반사람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
진리에 있어서는 불교는 아무 것도 아니요, 카톨릭은 만국종교가 혼합되어 얼토당토 아닌 것이지만, 그 종교가 입고 있는 옷 그 종교의 문화 어떤 폼 목회자들의 처신과 그 다음에 성도들의 삶과 기독교 집회 문화 대개 이런 세가지가 일반사람들에게 비춰지게 되는데, 그 세가지의 모습들이 타 종교에 비해서 너무 세속적이고 너무 타락했다.
우리가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거야.
기독교 비율이 18.3%가 되는데, 그 기독교인들마저도 기독교에 대해서 신뢰가 안 간다고 할 정도니까..
이런 모습으로 가서는 앞으로 우리가 선교도 안 되고 정말 이방인의 시대가 끝난게 아니냐..
유럽이 이미 다 끝나가고..
여러분 기독교가 국교라고 하는 나라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말을 버스 광고판에 써서 붙이고 다니는 거야.
영국에서 대형버스 옆구리에다가 ‘아마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을거요. 그러니까 인생을 마음놓고 즐기시오.’ 누가 못 즐기게 하나?
‘데얼 이즈 프로버블리 노 갓.(There is probably no GOD.)’
하나님이 아마도 없을 거요.
‘아마도’ 하는 것은 미련이 있는 거야. 그렇죠?
그것을 갖다가 옥스포드 대학 교수가 그런 광고에 후원금을 낸다네.. 리차드 도킨스라는 사람이..
한국에도 얼마전에 그런 것을 썼어요. 누가..
써서 버스에 크게 붙였는데, 그것은 아인쉬타인의 말을 인용한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뭐라고 했느냐?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심판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가지고 버스에 썼다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또 그런 것에 반대를 무지막지하게 했던지 내렸다고 해요.
지금 이 하나님의 교회를 맞서는 세상적인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파상공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고 경건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한 모습으로 비취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시작한지 아직 얼마 안 되었으니까 굳어지기 전에 정말 바르게 하자..
바르게 해야 돼요. 바르게..
잘은 못해도, 잘하면 좋지만 잘은 못해도 뭐든지 바르게 해서 사람들이 우리 마산 진해 사람들이 ‘교회를 갈려면 샤론교회에 가라.’ 이런 말이 나오도록 해야 돼요.
여러분 혹시 바깥으로 비취는 모습중에 주차문제가 제일 많이 비취죠.
차를 주차장에 우리가 못 세워도 얼굴 붉히지 말고, 그런 조그만한 것 하나 때문에 한 영혼이 실족하게 되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달아서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를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교회 때문에 기독교인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그렇게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하나님의 교회를 정말 누룩없는 교회로 깨끗한 교회로 정결한 교회로 그렇게 드려졌으면 좋겠다는 바울의 말씀을 우리가 상고해 봤습니다.
6장은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없이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드려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속사람이 거룩하게 하옵시고, 세상에서 우리의 선한 행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인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데, 그 동안 우리가 그렇게 못했던 것을 돌아보고 이제라도 우리의 남은 삶을 사람들에게 비취는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