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칸 여행 (16.08.24~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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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dang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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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당시 프레스센터로 쓰였던 호텔
내전당시 방송국
1992년 5월 27일,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라예보 시민들을 향해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쏜 포탄이 떨어졌고 이 포격
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무고한 시민 2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참사가 있던 다음날 오후 4시에 한 남자가 큰 가방을 들고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저격병들의 수많은 총구가 일제히 그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서 천천히 첼로
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했습니다. 요란하던 총성은 점점 잦아들었고 총알을 피해 건물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걱정과 설마 하는 기대를 안고 창가로 다가섰습니다. 놀랍게도 총성은 멎었고 이후 22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 주인공은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였습니다. 폭격
으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2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 사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연주를 했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용기 있는 행동과 연주는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시민
들의 사기가 오를까 두려웠던 세르비아 점령군은 스마일로비치를 쓰러뜨리기 위해 저격병을 보내기로 했고 이에 맞선 시민
저항군은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의 여성 저격수에게 그를 보호하도록 임무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세르비아 저
격병의 총구는 불을 뿜지 않았고 스마일로비치는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22번의 연주를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
니다. 어쩌면 상대편 저격수의 응사가 두려워 저격을 꺼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연주자의 용기와 음악의 감동이 세르
비아 저격병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스타르 (Mostar)
모스타르 (Mostar)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도시이자 자치제이며,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헤르체고비나네레트바 주의 주도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
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이름이 지어졌다. 터키의 통치 동안, 다리가 건설되었고 모스타의 상징들 중 하나
가 되었다. 다리는 1993년 11월 9일 10시 15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 동안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에 의해 파
괴되었다. 크로아티아 군대의 사령관 슬로보단 프랄략 (Slobodan Praljak) 은 다른 청구들 사이, 다리의 파괴를 명령한것에
대해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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