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한 주로위에 괴롬을 지고
소리없이 갔다가 그리운 십이월
바람 시고 추불 저 언덕배기에
다시 서리라 호미곶이여!
힘!
영일만아 잘 있었느냐?
지난해 풀잎같은 마라톤 의지로 호미곶이라는 난공불락의 고지에 무모한 도전을했다.비 눈보라로 눈도 뜨기 어려운 악천후 기상 조건도 나에겐 좋았다.자신을 더없이 거칠고 낮은 곳으로 몰아 극기의 맛을 느껴보려 했던 이곳이 아니었던가?
악천후의 기상악화로 바다와 하늘의 구분 없는 연두빛 바다는 선명하고 차가운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했었다.푸른하늘.쪽빛바다가 더없이 그리워지던 곳이었다.이다음 다시 이곳에서 영일만 친구를 부르며 동해의 찬 바람과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엄습해오는 어둠에 밀려 잊지못할 시린 추억을 간직한채 강자의 모습처럼 덧없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훈련이나 마라톤 행사에 임하면서 결코 잊은적 없고 잊혀지지 않는 불멸의 추억으로 남아 다시 이자리에 서길 갈구해 왔다.왜냐하면 다른 큰 대회 만큼 준비를 해야한다는 심적부담이 적은 곳이고 일년중 달리기의 응어리를 풀어보고 싶은 곳임을 진정한 마라토너라면 아마도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를바 없을 것이다.
새벽에 스산한 움직임에 미안해서 말못하는 내 마음을 <아 오늘도 마라톤하러 가는구나> 라고 알아차리는 식구들이 어쩌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동래 지하철역앞 어둠에 하나씩 비춰지는 반가운 얼굴들...
악수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며 자리를 권하고 기록을 떠나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사실 나는 지난해의 추위에 많은 고생을 했다. 그래서 호미곶 대회가 임박해질수록 날씨가 좋아지길 마음속으로 기도도 했다.하지만 일상의 일처럼 여기서도 나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오늘 달려야할 주로를 오를즘 몹시 힘겨워 하는 것을 느끼며 연신 차창에 서린 하얀 김을 닦으며 바깥 경치를 음미 했다.그러다가 출발지점에 다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넓디 넓은 태평양을 넘어 영일만을 휘몰아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숨이 멈처질 지경이다...
이렇게 차안에서 느껴지고 해풍에 흔들리는 나무가지가 일기예보를 대신하고 검푸른 파도가 수억년의 바위를 삼키며 날씨를 무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동해의 차가운 바람에 쓸리어 더욱 날카로워진 소나무 잎이 차창을 때린다.풍력발전기 바람개비도 보인다.작년의 쓰라림이 되살아나 오늘의 추위를 수그려뜨리고 있었다.아버지의 풀밭같은 가슴으로 오늘 동해의 바다를 안으리라 다짐해 본다.
반팔옷으로 갈아 입고 광장에 섰다.바람이 나를 시험하듯 밀어 부친다.그래도 나는 모른척하고 고개를 돌리고 스트레칭에 열중했다
추위를 이기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저마다 몸풀기가 한창이다.바람은 자꾸만 거칠어진다. 이것이 호미곶의 특징이다.구만리에서 바람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이 바람이 우리가 가는 길에도 거세게 불어줄 것이라 믿는다.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출발!
출발의 함성이 차가운 바람속으로 흩날리며 질풍노도 처럼 광장을 빠져나가며 바다를 달려나간다.보온용 비닐이 강한 바람에 날리며 하나씩 벗겨지고 있었다.광장의 코너를 지나 해안로로 진입하고 자기의 계획에 따라 주법을 구사하며 모두들 용감히 달고 있었다.
환상의 구절양장 코스...
멀리 쪽빛 바다를 음미하며 달린다. 파도는 다가와 부서지며 우리의 완주를 기원하는듯 했다.태어나 세번째 오는 영일만 보면 볼수록 정이드는 곳."영일만 친구"를 부르며 끝없이 달려보고픈 그곳이 아니었던가. 정말 더도말고 덜도말고 실컷 뛰고 힘들면 죽어라 울어보고싶은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에서 달리는 모든 이들이 고통을 극복하고 피니쉬라인을 통과하겠지.첫번째 언덕을 올라서니 차가운바람에 숨이 막힌다.그래도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하고 취위와 강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바람은 맨살을 찌르는듯 했다.이 힘든 순간에도 여기 있음을 나는 후회한적 없었다.이 주로에 있는 모든 주자도 나와 같으리...
15킬로를 지나니 추위에 약한 나를 발견했다.거대한 자연 앞에 너무나 나약한 나를 발견한 것이다.영일만의 바람은 식어가는 가슴의 미온마져 앗아가고 있었다.체열의 손실로 체력이 도저히 회복될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고 말았다.18킬로 지점에서 발이 멈추고 말았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들 한사람씩 힘을 실어 주었다.
나의 모습을 조롱하듯 겨울밭 배추도 헤벌레히 웃으며 놀리는 것 같았고 차라리 영일만 바다가 따스하게 느껴지곤 했다.반환점을 돌아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양지바른 따스한곳에서 쉬며 힘을 길렀다. 돌아가는 길에 바람을 등지고 한결 쉬움을 느겼다.그림자 초자 날려 보낼려는 차가운 바람이 살속까지 파고 드는 기분이었다.
어느 대회에서 조차 구경할 수 없는 자원봉사자의 희생정신 승용차의 음악으로 때론 육성으로 죽어라 불러대는 응원가,죽어라 흔들어대는 손,어느 누가 고맙지 않으리! 이런 도움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의 응원가는 바람과 섞이어 머나먼 태평양으로 날아갔으리...
30킬로의 힘든구간을 간신히 넘고 묵묵히 달린다. 아무 생각도 없이.그러나 그 무엇으로 머리속은 꽉차있었다.한나씩 정리되고 있는 순간이었다.그렇게 달렸다.
아까 그 빨간모자 허수아비가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웃고 있다.주자와 눈이 마주치고 그의 허수를 바람속에 흔들어 주는듯 했다.
막달리자 무리의 후미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절약해야 했다.그들의 조직도 강하지만 연약한 기반이 군데군데 보였다.다들 일사불란하게 잘움직이고 있었다.힘든 오르막을 같이 구호를 외치며 넘었다.주로에서 서로를 도우고 도움주는 것은 마라톤의 참정신이 아니던가?
35킬로 지점을 넘어섰다.이젠 자신이 있다.푸른바다 경치에 피로를 녹이며 자신을 이기고 있었다.마지막 고개를 넘고 최후의 곡각로를 지나 언덕을 오른다.체력이 다했음을 느꼈다.이제 풍력발전소 바람개비가 보인다.
거센 바람으로 힘차게 돌아간다.지난 해에 보던 그 모습이다.작년에 눈비를 맞으며 그 먼길을 왔을때 바람개비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 했던가?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너무 반가웠다.작년도 그렇게 반가웠으니 그냥 좋았다.
있는 힘을 다해 호미곶 광장을 달렸다.
발은 움직이나 걸음은 제자리다.
붉은 양탄자 위를 달린다.
악전고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773번 김병연님 힘! 축하합니다.
어깨에 타올이 걸쳐 졌다.
의자에 앉혀지고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신다.
칩이 손에 쥐어졌다.
이것이 호미곶이다.
피니쉬 라인을 밟는 순간 마음은 내년의 호미곶을 달리고 있었다.
아~호미곶 내년을 기약하며...
첫댓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구만, 수고했네. 호미곶은 내가 군대생활 할때 추억이 많은 곳이네.
과메기 먹은 얘기가 없는 걸 보니 과메기는 안좋아 하나부지. 내년에도 가겠다. 좋다 나도 내년에는 간다. 난코스라는 호미곶으로.
사실 호미곶 마라톤은 첫째 추위와 강한 바람과 맞서 극기를 시험하고 둘째가 과메기지.과메기 시식하는 그 순간을 도저히 잊을수가 없다네.아슬하고 짜릿한 마라톤 맛을 보려면 호미곶으로 와.내년에 말이야. 대회운영도 그저 그만이야.
스물세개의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고생했다.(지 좋아서 뛰는데) 작년대회는 비.바람까지 진짜 죽는줄 알았지. 개들은 잘뛰고 잘쓰고 잘마시고 요곳이 개인생이지.
호치랑 내년에 포항에 갈께. 근데 호치는 약속을 담배 피듯이 뒤집는 바람에 믿을 수가 있어야지.
드녀.... 대회후기 다 읽었당~ ^.^ 아~~~~~~~~~~ 나도 써 올려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