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쾌유되고 있는 손영주 동문에게
손영주 친구!
정말 장하네, 11시간동안의 수술을 견디고 무사히 깨어나 통근치료를 하는 친구에게
우선 경의를 표하고 하느님의 도움에 나 역시 눈이 시리도록 고맙네그려-.
이순(耳順)을 넘어 그야말로 종합병원일 정도로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영혼을 괴롭히는데도
굴하지 않고, 늘 밝은 웃음으로 친구들을 맞는 친구의 심성이 자네를 구했구려!
친구야!
오늘은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날이네! 사월 초파일-.
불교는 우리가 믿는 천주교나 기독교와는 다르게 죄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고뇌에 대한 싸움
이지, 죽어서 천당간다는 내세사상보다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는 현세구복적이 아닌가1
서울에 입퇴원을 하고 찾아가 봐야 도리인데 왜 그렇게 현실은 녹녹치 않은지 모르겠네.
자네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세종호텔에서였지, 이시대 마지막 양심교장 유재형 자녀 결혼식때-.
그 때도 그저 당이 많아서 늘 고통을 당하면서도 항상 웃는 표정을 잊을 수 없네-. 바람불어도 휘청할 것같은데도 유모어까지 섞어가며 좌중을 웃기는 던 것은 어디 보통 여유인가!
누군가 그랬네, 우주는 거대한 종합병원이라고-. 최근 수퍼 박테리아까지 선보이는 무서운 시대에 우리는 병마와 싸워야 하니 늘 여유조차 부리지 못하고 사는거지-.
자네야 사위를 잘 두어 예전에 거진공고 교장시절에도 골프를 수시로 무상으로 마음껏 칠 수 있는 것도 공군 대장 사위가 준 티켓 때문이었지!ㅎ 같은 반이 아니라 잘 모르던 친구와 모교 춘고에 함께 근무하면서 자네의 인간됨됨이나 기량을 익히 알 수 있었다네.
많은 업무들을 손쉽게 해결하였지, 외유내강의 친구, 양구교육청 관내에 있을 때도 자네가 많이 부러웠네, 그때부터 골프가 시작되었지, 워낙 건강해 밤에 소변 단 한번을 안 보던 친구가 어느날 어지러워 검사를 받고 입원을 하고, 건강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며 피곤할때는 포도당 주사도 맞으라고 일러주던 게 엊그제 같네-.
거진에 있을 때도 칠흑같은 밤 빗속에서도 체육대회로 출장나온 동문들 모두를 혼자 나가 접대하던 그 고마움 항상 잊지 않고 친구에게 빚을 지고 있네-. 나 때문에 이곳에 고성을 자원해 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너무 고마웠네-.
친구야!
분필을 놓고 퇴직을 하고 보니 정말 제 1목표도 건강이고 제 2도 건강임을 알았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방태산 화타先生의 책이 요즘 잘 팔리고 있다네-.나 역시 혈압이 높고 6.25때 홍역을 제때 치유하지 않아 몇번씩 가마니를 준비하기도 했다네. 감기만 들면 더욱 가세해 몇년째 정기 검진을 받고 있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느냐가 삶의 좌표를 분명히 잡아주고 있네-.
나도 전립선 암과 낭종수술로 두어번 서울대 수술대에 오른적이 있네. 아내가 수술실 문간까지 바래다 주며 떨리는 손에 묵주를 잡고 흐느끼던 아내-. 끝도 없는 기도로 숙연히 잘 받고 나오라고 손잡아 줄 때 정말 앞이 캄캄하더군-.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잠시 후 남초록 수술복 입은 자들이 끄는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실려 가다가 백열등 아래에서 몽롱하게 정신을 잃었지-. 정말 돌아올 수 있을까? 끝이 아닌가! 지금까지 저주받을 일은 없는가! 자아성찰의 순간이 섬광처럼 스치더군-.
아니 그보다 수술 날짜가 다가오면서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는 아내를 보는 마음이 처연했네-, 교동 골목을 빠져 나올 때였네. 새벽 골목을 따라 나오며 아빠에게 다가와 힘내시라고 손잡아주던 어린 자식들-. 보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는지 한없이 껴안고 울고 또 울었네-.
그래도 친구는 서울에 성장한 딸사위가 보필해 주어 나보다 나았겠지-. 어린 것들을 두고 다시 살아올 수 있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분신인 저녀석들을 마지막으로 보는 건 아닌지 방정맞은 생각들만 한줄로 요동치더군.
친구야!
무사히 수술을 마친 것 다시한번 축하하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라고 했네. 개똥밭에 딩굴러도 이승이 좋다니 열심히 살아가세. 정말 성철스님이 말한대로 산은 山이고 물은 물이라네-.현실을 직시하고 일체의 악을 인수한 저 사바세계는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는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그 멋진 웃음 다시한번 보여주게.시간 문제겠지만-.하긴 목욕탕 가보면 여기저기 수술부위들이 나무의 옹지처럼 힘든 순간들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해주고 있는 군상들을 보게.
이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고단한 삶을 지나 초연히 늙어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어. 모두 아등바등 살지말고, 남을 헐뜯지 말고 분노와 증오도 제발 마침표를 찍어야 해.
좋은 일은 박수를 보내주고 손아래에겐 진정한 사랑을 눈부시게 주어야 하네, 쓰잘 데 없는 자존심 따위는 우리 나이에 모두 훌훌 날리고, 그저 즐겁게 하루 해를 서산에 골인시켜야 하네. 이순(耳順)이 넘은 나이에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대목이 오늘 부처님의 대자비일세-.
아파서 누워있는 친구에게 무엇인가 볼거리인 편지 한 장을 갑자기 전하고 싶어 성큼 앉았네.
반갑게 읽어주고 정말 눈이 시리도록 고마운 것은 480명 춘고 39회 동문 모두이겠지-.
우린 명문高를 나온 동량(棟梁)임을 자부하며 한평생 春高란 탐스러운 양식을 그 얼마나 맛있게
베어 먹으며 의기양양 살아왔던가! 또한 아내에게, 자식에게 훌륭한 아빠로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 말일세-. 그런 홍안서생(紅顔書生)이 아니던가!
내춘(來春) 전갈을 받으면 이내 달려가겠네, 그 특유의 웃음을 확인하고 축하해주겠네. 홈런선수의 손을 잡듯 강인함의 손을 잡겠네. 정말 혼났네! 그 힘든 수술 다 견뎌내고 기초체력이 누구보다 튼튼한 친구는 연일 푸른 날들이 도래하겠지. 지난번 멋지게 쓴 병상일기 "대변이 예쁘다"를 수필 문학회로 퍼와 모두 읽고 감동이었네.
사위 딸, 아내, 그리고 손녀의 존경을 받으면서 후리후리한 모습으로 여전히 정도(正道)를 가겠지-.다시 태어난 생명이라고 믿게, 친구의 입에서 허무란 단어는 절대 생성되지 않을거야! ㅎ 가족 모두 혼나셨네-. 특히 사모님께 안부 전하게-. 안녕히
2012년 음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에
후석로에서 德田 이응철
첫댓글 쾌유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