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수・최진욱 공동 안무의 『코리안 블루스』
블루스와 정신을 공유하는 장고 존중의 춤
최근 포이동 M극장에서 ‘색다름이 공존하는 자유로운 무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김운미 쿰댄스컴퍼니(예술총감독 김운미 한양대 무용과 교수)의 제19회 ‘묵간’ 둘째 날, 삼십대를 살아가는 여성안무가들의 작품 중 서연수(댄스프로젝트 모헤르 대표, 공동안무 경기도립무용단 상임안무가 최진욱) 안무의 『코리안 블루스』는 블루스와 장고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 우리 춤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블루스는 남북전쟁 뒤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부르기 시작하여 발전한 음악이다. 블루스의 특징은 가사, 베이스 라인, 악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요, 컨츄리 송, 백인 민요 등에 영향을 받은 블루스는 다양한 표현 방식, 음조 변화, 부름과 응답 형식의 후렴, 반복적 연의 구조, 가성(falsetto)을 가지고 있다. 장고도 질곡의 역사 속에 도도하게 전통을 지켜온 전통악기이다.
초기 블루스는 주로 사랑의 슬픔이나 애수, 배신이나 분노를 표현한 노래였다. 블루스는 지역적 분류로 브리티시 블루스, 캐나디안 블루스, 텍사스 블루스 등으로 불린다. ‘코리안 블루스’는 블루스의 사운드 특징을 띈 것이 아니라 정신과 느낌을 공유하는 춤이다. 안무가는 블루스의 감정이 텅 빈 장고와 닮았다고 규정하고, 장고 음(音)을 주조로 춤을 전개시킨다.
서연수・최진욱 듀엣은 조화로운 몸 언어를 사용, 침묵 속에 장고를 부각시키면서, 절제된 춤을 춘다. 장고의 정신을 닮고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코리안 블루스』는 블루스의 성악・기악 기법 등을 장고의 여러 쓰임새와 결부시킨다. 흥얼거리며 감정을 전달했던 미시시피 블루스의 느낌을 공유하고 양쪽 ‘피’가 뚫린 '텅빈 장고'는 블루스의 한국적 표현 매개체이다.
춤은 블루스가 갖는 슬픈 리듬을 기억하며, 그 형식이 주는 감정에 집중한다. 빨간 색깔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장고를 쓴 여인, 방향을 조절하는 사내는 블루스의 의미를 찾아간다. 강압에 의해 노동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하며 남자에 의해 여자가 움직여진다. 안무가는 노예들이 무언의 강제 노동을 당하면서,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침묵의 노래라고 간주한다. 블루스가 장고 속으로 파고 든다. ‘피’가 뚫린 장고 속은 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는다.
침묵의 노래 속에 궁편은 여자의 말, 채편은 남자의 말을 상징한다. 그들의 소리는 비어있기에 울리지 않고, 침묵이 되어 흥얼거린다. 작품의 시작은 ‘사랑과 영혼’을 떠올린다. 장고도 궁편과 채편이 만나 소리를 완성 시키듯, 블루스도 혼자가 아닌 상호간에 주고받으며 불렀던 리듬의 형식이다. 음악의 연의 구성과 반복의 법칙처럼 남녀 듀엣의 춤은 주제에 밀착된다.
블루스의 형식은 유연함과 엄격함의 각별한 조합이다. 춤은 여인의 입에 하얀 종이(침묵)가 물리면서 장고를 벗고, 사내의 얼굴도 보인다. 장고 사운드는 반복되고, 장면은 분할된다. 두 사람 사이를 구르는 장고, 명징하다. 장고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연구는 붉게 타오르는 장고가 조명을 받을 때 드러난다. 가볍게 장고를 어루만지는 여인의 손, 두 사람은 얼굴을 장고의 양쪽 텅빈 ‘피’ 편에 넣고 블루스가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었듯 공동 운명체임을 밝힌다.
『코리안 블루스』는 성숙하고 비극적인 음성의 질감을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스타일의 춤에 입힌다. 춤으로 가득 찬 소리, 몸 언어로 느끼는 블루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블루스의 형식은 몸과 표현방법에서 독창성을 확보한다. 장고의 울림, 그 소리를 함께 표현해줄 수 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음악에 담긴다. 춤 표현의 핵심은 장고의 미묘한 활용, 엄격한 틀 속에서 변형되는 동일한 패턴, 계산된 반복, 슬픔을 극복해내는 자유정신의 구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허밍, 텅 빈 장고는 슬픈 감정을 유발하는 연출이었다. 서연수, 안무적 열정이 충만한 전투적 안무가이다. 유연함 속에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주어 왔던 다수의 안무작들과 비교, 『코리안 블루스』는 열정의 이음이었고, 장고 자체의 이미지, 장고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 등 ‘장고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장석용/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