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9] 권우삼 (權佑三) -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우며 2. 하늘의 인도하심 따라 철없이 교회에 다녀 1 1957년 음력 8월 14일, 추석 전 날 하오의 일이다. 타향에 가서 공부를 하다 돌아온 먼 친척 누님이 꿈을 풀어주는 교회가 있는데 함께 한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라고 찾아간 곳은 큰 건물에 십자가가 달린 교회가 아니라 한 가정집이었다.
2 그런데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배정천 식구라는 분이 10일 단식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배운 성가가 ‘복귀의 심정’이었는데, 의미가 깊어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많이 불렀다. 3 교회에 두 번째 갔을 때는 장소가 다른 곳이었고, 그곳에는 인도자조차 계시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가 자꾸만 이사를 하였고, 인도자도 찾아갈 때마다 다른 분으로 바뀌곤 하였다. 인도자조차 계시지 않은 가운데 하늘의 인도하심 따라 철없이 몇 달을 교회에 다녔다. 4 그러다가 김병호씨가 인도자로 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이 하루는 시장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시장에 다녀온 후 “가지고 싶은 모든 물건을 실제로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마음속으로 다 가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음식도 제일 맛있는 음식과 제일 험한 음식을 먹어 보아야 합니다.”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 5 식구들이 책임 다하지 못하여 몇 달도 못 가 다른 교회로 떠나가시던 날, 계실 때 잘 모셔 드리지 못한 잘못을 뉘우치면서 계란 세 개를 몰래 교회에 갖다 놓았다. 누가 가져왔느냐고 물으셨지만, 차마 “저입니다.”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시고 떠나신 그분의 모습이 늘 떠올랐다. 6 그다음에 김화언씨가 인도자로 부임해 오셨다. 오신 후 첫 새벽 기도를 드리던 날 영적 역사가 일어났다. 불을 받고 뛰며 통곡하는 역사가 벌어지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보았다. 그런 후부터는 동네 사람들이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7 그래서 그동안 평탄하게 지내던 식구들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몹시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심지어는 먹는 물도 못 가져 가게 하였다. 또, 교회 들어오는 길도 막아 먼 길로 돌아서 교회를 다녀야 했다. 그들은 성전의 전구를 깨기도 하고, 성전에다가 오물을 뿌리기도 하였다.
8 예배를 드리려고 찬송을 시작하면 돌이 날아와 지붕 위에 떨어지는데, 그 소리는 마치 마구 쏘아대는 총소리처럼 들렸다. 그때 나는 성전의 오물을 닦아 내면서 약자의 서러움과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
9 계속된 핍박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이전하지 않고 버티자 무허가 건물이라는 법적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판잣집 교회에서나마 쫓겨나게 되었다. 10 그러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전 식구들은 정성을 모아서 흙벽돌을 찍어 교회를 짓기 시작하였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교회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그저 몸으로라도 대신하자는 결심을 하고서 열심을 다하여 교회 짓는 일을 도왔다.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교회를 완성시켰을 때 그 기쁨이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11 나는 입교한 이후에는 줄곧 교회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가 내 집과 같이 느껴졌다. 나는 외적인 핍박이나 시험은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으나 내적인 마음의 시험에 빠져 한때 방황한 적이 있었다.
12 아무 이유 없이 교회에 가는 것도 싫고 식구나 인도자를 만나는 것도 싫어지게 되었다. 그런 처지에서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하늘로부터 고린도후서 2장 8절을 펴 보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13 그래서 성경을 펴 보았더니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라는 말씀이었다. 그것을 읽고 모든 원인은 나에게 사랑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시험에서 승리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