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베트남
베트남 여자와 사는 후배를 알고 있다.
그의 아내는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낳고 시부모에게도 잘하고, 그야말로 시골살이에는 ‘딱’인 마누라다.
그는, 늦은 나이에 횡재를 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작년 겨울에 그는 지역 농협에서 주는 비행기표로 처가가 있는 베트남에 한 달간 갔다 왔다.
갔다 와서 그의 첫마디가,
“형님, 이제 오리고기 지겨워죽겠어요. 오리 40 마리 먹고 왔어요.”
였다.
처가에서 오리를 키우는데, 육천 마리 정도를 매일 메콩강으로 몰고 갔다가 실컷 고기를 잡아먹게
하다가 저녁에는 우리로 다시 끌고 온다는 것이다.
사료 값을 전혀 들이지 않고 사육을 하다니 그야말로 횡재가 아니던가.
처가는 쌀농사도 많이 하여 쌀이 남아돌아 국가에서 매입 해서 수출을 한다는 것이다.
처가가 있는 메콩강 하류는 그야말로 천국인 셈이다.
그런데,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천국에서 시집을 왔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대답은 딱 한 마디였다.
“돈 때문에.....”
그의 아름다운 20대 신부, 이쁘고 일 잘하고 착한 그녀는 돈 때문에 천국인 메콩강 하류에서 못사는 이곳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을 왔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 농촌의 실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
후배의 농사 규모는 논 4천 평, 밭 3천 평인데 일 년에 들어오는 현금 순수입이 8백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늙은 부모와 어린 아이 둘 남자의 여섯 식구의 수입으로는 최저 생계비도 되지 않는 셈이다.
다행히 먹거리는 대충 해결이 되는 구조이나, 그야말로 한국 대부분의 농촌 가구는 최빈민층 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그런 최저의 현금 수입이 베트남의 메콩강 하류에서는 다행인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가 불쌍해서 내가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그녀에게 시키고 일당을 준 적도 있다.
하루 일당 5만원에 그녀는 몹시도 기뻐했었다
쌀과 오리고기가 넘쳐나고 별로 할 일도 없는 메콩강 하류와 한국 농촌의 지독한 살림살이를 비교하면 누가 봐도 메콩강이 천국이다. 한 달 동안 오리고기를 40 마리나 먹을 수 있는 가정이 도대체 한국에는 얼마나 될까?
물론, 사위를 대접했다는 것을 감안 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사위가 왔다 해도 씨암탉 한 마리 잡아주면 고작인데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사회는 행복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현금으로 주고 살 수 있는 상품에 길들인 행복인 셈이다. 돈으로 주고 살 수 없으면 상품이 아니다. 거저 주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매겨져 있다.
상품에만 길들여진 노예들, 그래서 그 상품을 사기 위해 지독히 일을 해야만 하는 좀비들이다.
메콩강의 하류에서 오리를 몰고 강에 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야자나무 숯으로 오리고기를 구워 술 한잔하는 그런 천국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사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행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녀는, 그런 천국을 버리고 한국 농촌의 늙은이에게 시집을 왔다. 그녀의 메콩강도 서서히 돈이라는 악마에 점령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혹시, 아는가?
유명한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지금은 쌀을 수입하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는, 독재자 마르코스 시절에는 마르코스가 대중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농촌에 지원을 많이 해줘 쌀이 남아 돌았는데,
민주화 인사 아키노 시절부터 미국의 원조 식량에 길들여져 쌀 농사를 포기한 농민들이 속출하게 되고, 농촌을 떠나게 되고 이제는 쌀 마저 수입하는 세계 빈민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이 주도하고 미국의 의도대로 경제 구조가 바꾸어 지면 그런 절차를 밟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베트남이 그렇다.
베트남은 천국의 메콩강을 버리고 돈에 미치고 있다.
민주화 인사 김대중은 한국을 IMF를 통하여 미국이 시키는데로 국제금융자본의 시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고,
노무현은 한국의 농업 인구를 150만이나 줄였고, 이른바 토목 경제인 개발주의를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도 그는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고 너스레를 떨다가, 토목 장삿꾼 대통령 출신에게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을 하고 만 것이다.
부디 바라고 싶은 것은, 베트남의 젖줄 메콩강만큼은 제발 우리나라의 4 대강 개발을 흉내 내어 메콩강 개발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럼, 그 많은 오리들은 다 어디로 가겠는가?
호치민은 체게바라와 함께 혁명가로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호치민은 1969년 79세의 일기로 미국과의 전쟁 중에 사망을 해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제국주의(미국)을 상대로 싸웠다는 것이고 그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호치민은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사망했고 체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직접 혁명에 뛰어 들어 쿠바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내가 두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다는 점이다.
가난하고 약한 나라의 편에서 부패하고 강한 세력들과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싸웠던 것이다.
두 사람은 죽고 나서도, 호치민은 그의 작은 오두막에 신발 한 짝과 책 한 권을 남겼을 뿐이고, 체게바라는 총살 당한 후, 그의 작은 베낭에서 비망록 두 권이 발견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두 나라 베트남과 쿠바는 그 후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쿠바는 미국과 끝까지 타협을 않아 경제봉쇄를 당해 아직도 가난한 나라의 대열에 서 있다.
베트남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 원조와 투자은행의 경제 협력을 받아들여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월등한 경제 성장이라는 과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오고 있다,
쿠바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지만, 독재자의 나라이지만 거지와 범죄자가 없는 평등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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