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전하는 귀농귀촌 이야기 [5] 요조숙녀에서 악바리 농촌 아지매로…
무농약 친환경 포도농부, 고창 박명자 님
이름 : 박명자
귀농연도 : 2011년도
귀농지역 : 고창군 심원면 도천리
귀농계기 : 외롭고 우울했던 도시생활에서 탈출구를 찾다
고창군에 귀농귀촌상담을 받으러 가는 이들의 돌아서는 입가에는 무조건 미소가 띈다. 상담내용도 만족스럽지만 그보다 더 그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은 귀농귀촌 전문 상담사 ‘박명자’씨의 독보적인 매력 때문이다. 천가지 말보다 한가지 신뢰로 귀농귀촌에 대한 희망나무를 심어주는 박명자씨.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이다. 그녀 역시 귀농 4년차, 아직 새내기 고창군민이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본 과정을 상담에 응용해 귀농귀촌희망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간다는 박명자씨를 만나보자.
농촌으로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다
박명자씨와 남편은 여행을 참 좋아했다. 살면서 지향하는 목표는 ‘언제나 함께 많은 여행을 하자’라는 것일만큼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그녀에게 설렘 그 자체였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남편과 늘 나누었던 대화는 “여보, 우리 나중에 나이들면 꼭 시골가서 살아요.”로 마무리되곤 했었다.
베이비부머세대에 정확히 속했던 남편은 한 길만 열심히 달려왔었다. 젊었을 적에는 그 시대 남자들이 다 그러했듯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도 잊은 채 회사의 목표만 바라보았고, 퇴직 후에는 사업도 벌려보았다. 그러나 사업도 본래 했던 사람이나 쉽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이었다. 실패로 끝난 사업을 정리하며 돈도 잃고 사람도 잃으니, 마음이 휑했다. 남편의 뒷모습이 그리 쓸쓸해보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자고 조를수도 없었다. 답답하고 무의미한 백조의 삶이, 그렇게 이어져갔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남편에게 오래된 꿈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여보, 우리 농촌에 가서 살아볼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의 질문에 남편은 탈출구를 찾았다는 듯 주저함없이 “그래!”를 외쳤다. 그렇게 박명자씨 부부는 농촌으로의 제2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과년한 딸과 아들이 서울에 둘이서만 남을 것을 생각하니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쓰라렸다. 조심스럽게 자녀들에게 귀농의사를 내비쳤을 때, 두 자녀는 부부의 새로운 여행에 흔쾌하게 답했다. “엄마! 우리는 엄마아빠만 행복하면 돼요!”
그렇게 새 힘을 얻은 부부는 귀농 관련 박람회가 있으면 무조건 쫓아가 상담을 받았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썩 맘에 들었던 지역을 손꼽아 보고, 그 지역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살 곳을 옮기게 되면, 뼈를 묻고 살겠다 결심하니 지역을 선정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땅은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했으나, 그 땅에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 수 있나 생각하니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박람회에서 고창군 귀농귀촌담당 주무관의 명함을 받게 되었다. 인연이 되려 했던 것일까. 마침 고창에는 원하는 빈집과 임대농지가 있었다. 딱 1년만 살아보자 결심한 부부는 곧바로 고창에 내려왔고, 그대로 정착하게 되었다.
요조숙녀에서 악바리 농촌 아줌마로…
맨 처음 고창에 왔을 때는 마을 이장님이 땅을 빌려주었다. 고심 끝에 천평 규모의 콩농사를 꾸렸다. 콩은 잘만 하면 소득얻기가 쉽다는 말에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러나 농사도 준비를 하고 덤볐어야 했는데, 무작정 의지만 갖고 농사를 지으니 잘 될 리가 없었다. 멘토도 없이 농사를 지으려니 혼자서만 동동거린 게 화근이었다. 콩농사를 지은 땅은 다랭이논이었는데, 이 다랭이논을 터놓으니 비만 오면 콩이 다 떠내려가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제자리, 희망보다 절망이 앞섰다. 서울에서 방학을 맞은 아들이 내려와 ,잔뜩 쌓여만 가는 풀을 말없이 매주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오기가 생겼다. 임대했던 5개의 논 중 최소한 2개는 살려야겠다는 오기. 풀이 90%, 콩이 10%를 차지한 논. 그 논에서 콩이 싹을 틔우면 게으름을 피울 새도 없이 좋은 자리로 옮겨 심어주었다. 그렇게 콩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명자씨는 어느덧 농부가 다 돼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창군 심원면에 3천평의 땅을 구입한 부부는, 이 땅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를 고민했다. 우선, 지역의 멘토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부부는 땅의 그림을 직접 그려 기술센터의 농작물멘토들에게 보여주며 무얼 하면 이 땅에서 잘 살아날지를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10명의 멘토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어도 공통분모는 나오지 않아 애가 타던 중 유기농포도의 장인인 도덕현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드디어 땅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졌다.
박명자씨 부부가 멘토로 삼는 도덕현 선생은 일명 ‘포도의 신’이라고도 불리며 아무나 제자를 두지 않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도덕현선생에게 농사를 배우려면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사야했다. 부부가 열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다가가니 도덕현 선생도 마음의 문을 열고 부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박명자씨 부부는 땅에 맞는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박명자씨 부부는 멘토의 조언대로 친환경시설포도와 노지복숭아를 재배한다. 땅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시작한 덕분에, 귀농 후 한해씩 그 횟수가 채워질수록 마음까지 부자가 되는 듯 하다.
“전에는 제가 시골에서 살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저를 아는 사람들도 그렇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농촌에 와서 살아보니, 살기 위해서만 농사를 짓는 게 아니었어요. 내 마음을 올곧게 하는데도 농사만한 일이 없습니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생각을 가볍게 하되, 농촌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은 충분히 인지하고 들어와야 합니다. 삶이 제 의지대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농촌에 와서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졌어요. 서울에 살 때는 위가 안 좋아 병을 달고 살았었는데, 고창에 와서는 어느날부터인가 약을 꺼내는 손길이 덜해졌어요. 저절로 약을 안 찾게 된거죠. 자연과 함께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 건강한 기운을 받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명자씨와 남편은 블로그(http://blog.naver.com/ibibsong)를 활용한 홍보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블로그에는 부부의 정착과정부터 농사방법까지 세세히 기록돼 있어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악바리 농사꾼, 귀농귀촌희망자들의 길잡이가 되다
박명자씨는 농사꾼이 되면서 더 큰 목표가 생겨났다. 그것은 박명자씨 부부가 겪었던 것처럼 준비과정에서 헤매고 어려워하는 귀농귀촌희망자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때마침 고창군에서는 귀농귀촌박람회에 함께 참영할 상담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박명자씨는 서울에 거주하는 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상담사에 지원했다. 그런데 상담을 해주다보니, 의위로 신이 나고 즐거웠다. 짧은 시간동안 명자씨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이 스토리텔링이 되면서 사람들이 호응하고, 귀농귀촌에 대한 희망을 갖는 모습이 기대하지 못했던 기쁨이 되었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에 직접 와닿게끔 하는 사실적이고 친화력있는 상담. 이로 인해 웃음꽃이 핀 고창군 부스는 찾아오는 이들로 북적이는 게 당연지사.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고창군에서는 박람회 후 그녀에게 정식으로 상담사직을 제안했고, 그녀는 망설임없이 예스라고 답했다.
상담사로 일한지도 벌써 4년째. 상담을 하며 느낀 가장 큰 애로사항은 ‘빈집’이다. 마음은 고창으로 돌아섰어도 빈집이 없어 동동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창군귀농귀촌협의회의 도움을 빌려 알음알음 빈집을 주선하고는 있지만, 찾는 이들의 수요만큼 집이 나오지 않으니 지켜보는 그녀도 애가 탈 때가 많다.
또 진심으로 농촌이 좋아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자체에서 주는 귀농귀촌지원내용만 보고 귀농을 결심했다가 금방 돌아서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도 했다. 정말 농촌이 좋아서 온다면, 이러한 지원내용이나 금액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명자씨는 고창에 오는 귀농귀촌 후배들에게 귀농귀촌협의회와의 정보교류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협의회에서는 빈집과 함께 후배들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과 관심, 배려를 주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 역시 협의회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유이다.
앞으로 박명자씨는 귀농귀촌희망자들의 멘토로, 상담사로, 농사꾼으로 하루하루 더 바빠질 계획이다. 남편과 함께 친환경과수농장을 꾸미는데 온 열정을 쏟으며, 마을과 귀농귀촌인의 재능을 연계한 1박 2일 체험프로그램도 개발해 더 많은 이들이 고창군으로 유입되는데 힘쓸 예정이다.
“누구나 농촌에 올 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을 갖고 오지만, 그것은 무조건 겪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저희 부부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지요. 1번에서 2번으로 가는 과정은 분명히 있어요. 사실 교육도 중요하지만 직접 부딪혀봐야 농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제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집이나 땅을 무작정 사가지고 오는 것 또한 권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나에게 맞는 지역과 토지를 선택하는 게 더 낫지요.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공간이니까 더 신중해야 합니다. 어찌되었던 간에 귀농귀촌인은 마을주민들에게는 ‘굴러 들어온 돌’입니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혀있던 돌을 빼려 하면 안 되지요. 같이 잘 살면서,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게 농촌에서 가장 잘 사는 정답일 것입니다.”
자료제공·전라북도 귀농귀촌 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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