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날이 저물어 주점을 찾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소년이 나귀를 타고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포장이 답례를 하니,
그 소년은 갑자기 한숨을 지으면서 말했다.
"온 천하가 임금의 땅 아님이 없고,
모든 땅의 백성이 임금의 신하 아님이 없으니,
소생이 비록 시골에 있으나
나라를 위해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
포장이 일부러 놀라는 체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년이 말했다.
"이제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팔도로 다니며 소란을 피워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데, 그 놈을 잡아 없애지 못하니
어찌 분하지 않겠습니까?"
포장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대가 기골이 장대하고 말씀이 충직하니,
나와 함께 그 도적을 잡는 것이 어떻겠소?"
소년이 말했다.
"내가 벌써 잡고자 하면서도 용력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그냥 있었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소?
그러나 그대의 재주를 알 수 없으니
그윽한 곳에 가서 시험합시다." 하고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높은 바위 위에 올라앉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나를 차 떨어뜨리라." 하고,
벼랑 끝에 나가 앉았다.
포장이 생각하되,
'제 아무리 용력이 있은들
한번 차면 어찌 떨어지지 않으리오.' 하고,
평생 힘을 다하여 두 발로 힘껏 차니
그 소년이
갑자기 돌아앉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장사로다.
내가 여러 사람을 시험해 보았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자가 없었는데,
그대에게 차이어 오장이 울린 듯하도다.
그대가 나를 따라 오면 길동을 잡을 것이오." 하고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기에,
포장이 생각하되
'나도 힘을 자랑할 만 하더니
오늘 저 소년의 힘을 보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이곳까지 왔으니
설마 저 소년 혼자인들 길동 잡기를 근심하리오.' 하고
따라갔다.
☆☆☆
그 소년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이곳이 길동의 소굴인데, 내가 먼저 들어가 탐지할 것이니,
그대는 여기서 기다리라." 고 했다.
포장은 속으로 의심은 되었으나,
빨리 잡아오라고 당부하고는 앉아 있었다.
이윽고 홀연히 계곡으로부터
수십 명의 군졸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
포장이 크게 놀라 피하고자 하는데,
점점 가까이 와 포장을 묶으면서 꾸짖었다.
"네가 포도대장 이흡인가?
우리들이 저승의 왕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하고,
쇠사슬로 목을 옭아 풍우같이 몰아가니,
포장이 혼이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한곳에 이르러 소리를 지르며 꿇어앉히기에,
포장이 정신을 가다듬어 쳐다보니,
궁궐이 광대한데 무수한 신장들이 주위에 벌여서 있고,
전상에 하나의 임금이 앉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하찮은 놈이 어찌 홍장군을 잡으려 하는가?
너를 잡아 지옥에 가두겠다."
☆☆☆
포장이 겨우 정신을 차려,
"소인은 인간 세상의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죄도 없이 잡혀 왔으니,
살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몹시 애걸하니,
전상에서 웃으며 꾸짖었다.
"이 사람아. 나를 자세히 보라.
나는 곧 활빈당 우두머리 홍길동이다.
그대가 나를 잡으려 하기에 그 용력과 뜻을 알고자,
어제 내가 푸른 도포 입은 소년처럼 꾸며
그대를 인도해
이곳에 와서 나의 위엄을 보여 주는 것이다."
☆☆☆
말을 마치자,
부하들을 시켜 묶은 것을 끌렀다.
마루에 앉히고 술을 내어와 권하면서 다시 말했다.
"그대는 부질없이 다니지 말고 빨리 돌아가되,
나를 보았다 하면 반드시 죄를 추궁당할 것이니,
부디 그런 말은 내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술을 부어 권하면서 부하들에게
'내어 보내라' 하였다.
포장이 생각하되
'내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여기에는 어찌하여 왔을까?' 하며
길동의 신기한 조화에
놀라 일어나 가고자 했다.
그러나 홀연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자신이 가죽 부대 속에 들어 있었다.
☆☆☆
간신히 나와 보니 부대 셋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차례로 끌러 내어 보니, 처음 떠날 때 데리고 왔던 부하들이었다.
서로 이르기를,
"이게 어찌된 일인고?
우리가 떠날 때는 문경으로 모이자 하였는데,
어찌 이곳에 왔을까?" 하고 두루 살펴보니,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의 북악산이었다.
네 사람이 어이없어 성안을 굽어보며 하인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여기 왔느냐?"
세 사람이 아뢰엇다.
"소인들은 주점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과 구름에 싸이어 이리 왔사오니,
어찌된 까닭인지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포장이,
"이 일이 너무나 허무맹랑하니 남에게 말하지 말라.
그러나 길동의 재주는 헤아릴 수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써야 어찌 잡겠는가?
우리가 이제 그저 들어가면 반드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니,
아직 몇 달을 기다리다가 들어가자." 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