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만이라도 _ 황동규

[햇무리]

오늘 하루만이라도 / 황동규


은행잎들이 날고 있다.
현관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군.

수리 중인 엘리베이터 옆 층계에 발 올려놓기 전
미리 진해지려는 호흡을 삼킨다.
해 거르지 않고 한번쯤 엘리베이터 수리하는 곳.
몇 번 세고도 또 잊어버리는
한 층 계단 수보다 두 배쯤 되는 수의 가을을
이 건물에서 보냈다.
그 가을 수의 세 배의 가을을
조금씩 더 무거운 중력 추를 달며 살고 있구나.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창으로
샛노란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온다.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내가 아는 나무들 가운데 떡갈나무 빼고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내 위층에 사는 남자가 인사를 하며 층계를 오른다.
나보다 발을 더 무겁게 끌면서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 잃지 않는 그,
한 발짝 한 발짝씩 층계를 오른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를 하루만이라도
내 집 8층까지 오르는 층계 일곱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번은 활기차게 한번은 차근차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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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함께』창간호 2019-여름호 <시 1/ 근작시>에서

* 황동규/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풍장』『연옥의 봄』외

[초록별]

오늘 하루만이라도 무언가를 해보면 그만큼 무언가는 의미가 되겠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