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국(金安國)-謝忠州金牧使益壽餽酒肴(사충주김목사익수궤주효)(충주 목사 김익수가 술과 안주를 보내온 것에 감사하며)(세상인심을 노래하다)
丘壑藏身二十年(구학장신이십년) 골짜기에 은거한 지 스무 해가 되니
百病纏繞雪渾顚(백병전요설혼전) 온갖 병 찾아들고 머리 온통 희었네
雀羅門外書能到(작라문외서능도) 참새 그물 친 문밖에 편지가 다 오다니
尙有情親不棄捐(상유정친불기연) 아직도 날 버리지 않은 친한 이가 있었구나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모재집慕齋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권경열님은 “1519년 중종 14 겨울에 조광조를 필두로 한 신진 사류들이 남곤 등의 훈구파에 의해 화를 입은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다.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기를 원했던 신진 사류와 그들의 급진적인 주장에 위기감을 느낀 훈구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어 나타난 참혹한 결과다. 김안국은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 문하에서 공부했던 동문이었다. 이 당시 전라도 관찰사로 있었는데, 사화에 연루되어 파직을 당했다. 그후 1537년에 조정에 복귀하기까지 약 20년 동안 경기도 이천과 여주의 별장에서 은거하였다. 세상의 인심은 이해득실에 따라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변화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사람의 부와 권력이 다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곁을 떠나간다. 더구나 김안국은 당시 실권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밀려났으니 그 정도가 심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인인 김익수가 술과 안주를 보내주었다. 환갑이 다 된 노년의 시인에게 그 무엇보다도 감동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편지가 다 오다라고 한 표현의 능자에서는 시인을 찾아오거나 물품을 보내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다. 자칫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두들 접근을 꺼리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편지와 술, 안주를 보내준 성의에 감동을 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핵심적인 시어다. 참새를 잡는 그물을 친다는 표현은 사람의 왕래가 뜸해진 것을 형용한 말로, 한漢나라 적공翟公의 고사다. 적공이 정위廷尉로 있다가 파면을 당하자 대문 앞에 참새를 잡는 그물을 쳐도 될 정도로 한산하였는데, 다시 정위로 복귀하자 사람들이 예전처럼 몰려왔다. 그것은 본 적공이 다음의 글귀를 대문 밖에다가 크게 써 붙였다고 한다.
‘한번 죽고 한번 살아남에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번 가난하고 한번 부유함에서 사귀는 태도를 알 수 있고, 한번 귀해지고 한번 천해지는 것에서 사귀는 정이 드러난다’
공자 또한 이런 말을 남겼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어려운 상황이 닥친 뒤에야 그 사람의 진실한 내면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부귀를 좇아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인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김안국[金安國, 1478(성종9). 9. 2~1543(중종37). 2. 7, 본관은 의성.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시호는 문경(文敬)]은 조선 중기의 문신. 대사간, 예조판서, 판중추부사를 역임했다. 김연의 아들이자 김정국의 형.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의 대표적인 제자 중 한 명이다. 1501년 진사과 장원을 시작으로 생원과 2등을 거쳐 별시에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문과에 정식 합격하였으며, 이후에는 승진을 거듭하여 예조참의, 대사간, 공조판서를 거쳐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동문 조광조가 숙청되었고, 조광조를 두둔하던 김안국도 파직되어 이천으로 낙향하게 된다. 다만, 조광조와 같은 강경파 사림세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외의 죄는 묻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532년에 다시 등용되어 예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1543년 사망하였고,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과 이천의 설봉서원(雪峰書院) 및 의성의 빙계서원(氷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인종의 배향신이 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처럼 성리학만 연구한 인물이 아니라 다방면에 고루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물론 성리학 이념을 중시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경상도 관찰사 시절 향약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배포하는데 주력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농서, 잠서(양잠), 의서를 집대성하기도 했다. 천문, 역법, 병법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병조판서 시절에 응용한 계책을 내기도 했다. 또한 종이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 제작법을 개량한 종이를 만들어 진상하기도 했다. 또한 시문에도 능했고, 서예가로도 명성을 날리기도 했던 올라운드형 인물. 교육 분야에도 업적이 있어 이륜행실도를 발간하자고 주장하기도 했고, 동몽선습의 유력한 저자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동생 김정국과 함께 말년에는 유림의 종장에 위치한 인물이기도 했다. 불교의 공사상을 비판하기도 하는 등 불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경(敬)에 대해 중시하여 몸을 다스리는 근본 이치로 삼아 물욕을 멀리하기를 강조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오경, 오상, 김인후, 유희춘 등이 있다.
*纏繞(전요) : 덩굴 따위가 친친 휘감음, 纏(얽을 전), 繞(두를 요)
渾(혼) : 흐릴 혼/뒤섞일 혼, 큰물 흐르는 모양 곤, 1.(흐릴 혼/뒤섞일 혼), 2.흐리다, 3.혼탁하다(混濁ㆍ渾濁ㆍ溷濁--)
*顚(전) : 엎드러질 전/이마 전, 1.엎드러지다, 2.뒤집히다, 3.거꾸로 하다
*棄捐(기연) : 1.내어 버림, 2.자기(自己)의 재물(財物)을 내어서 남을 도와줌. 棄버릴기, 捐버릴연
첫댓글 정승댁의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 정승이 죽으면 한산...이것이 세상 인심이지요...
외롭고 힘들 때 찾아주는 이가 제일 고맙지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ㅎ, 세상인심 종이장처럼 얄팍하지요.
회장님의 좋은 말씀 멋진 댓글에 감사드리고,
추운 날씨지만 행복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