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심리상태와 성격 경향을 계측하고 수치화시키는 세계. 모든 심리 경향이 기록 관리되는 가운데 개인의 영혼 판정 기준이 된 이 계측치를 사람들은 사이코패스(PSYCHO-PASS)라고 부르게 되었다. -작품소개 문구 中- |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미래상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ㄱ. 작품소개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심리상태와 성격 격향은 과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 여기서 측정된 수치들을
PSYCHO-PASS라고 부르며, 특히 범죄와 관련된 PSYCHO-PASS 수치는 범죄 계수라 부른다.
ㄴ. PSYCHO-PASS를 측정하고 관리하며 이를 토대로 국정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중앙의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은 ‘시빌라 시스템(Sibylla System)’이라고 불린다.
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예언을 하는 신녀를 기리키는 단어인 Sibylla에서 유례하였다.
ㄷ. 시빌라는 시민들의 PSYCHO-PASS 수치를 분석하여, 그 시민에게 가장 알맞은 결정을 해주고 복지에 관여한다.
이를테면 시민은 시빌라가 정해준 직업을 따르며, 심지어 배우자 역시도 시빌라가 정해준다.
배우자 선택의 경우 강제는 아니지만, 시빌라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하여주므로 대부분 따른다. 따라서 시민들은 삶의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ㄹ. 사법 체계는 시빌라 시스템이 완전히 대체하였으며, 재판이나 법원 개념이 없다.
입법부의 의원은 PSYCHO-PASS 측정값을 통하여, 시빌라가 합리적으로 선발한다.
따라서 시민들은 적절한 지도자를 뽑기 위하여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ㅁ. 공안국의 형사들에게는 도미네이터라고 하는 일종의 총기류가 지급되며, 도미네이터는 즉석에서 대상의 범죄 계수(범죄와
관련된 PSYCHO-PASS 수치)를 측정하여 적절하게 기능이 변경된다.
평소에는 안전장치가 강제로 적용되어 있지만, 대상의 범죄계수가 100을 넘기면 안전장치가 해체되며 마취총이 된다.
제압된 대상은 수용소로 보내지며, 범죄계수가 100 미만으로 내려가기까지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
범죄계수가 300을 넘기면 도미네이터는 살상용 무기가 된다.
따라서 형사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며, 범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모두 도미네이터, 궁극적으로는 시빌라 시스템이 결정한다.
ㅂ. 형사 처벌의 기준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가 아닌 심리 상태(범죄 계수)이다. 따라서 범행을 아직 저지르지 않은 예비 범죄자
도 범죄 계수 수치에 따라서 처벌 받을 수 있다. 이는 범죄가 다른 이의 범죄 계수를 상승시킬 수 있기에, 범죄자와 예비범죄자를
일종의 ‘병원균’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ㅅ. 범죄율은 0에 가깝게 내려갔으며, 따라서 시민들은 처음 만난 사람이 위험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으며 가정집의
잠금 장치와 같은 방범 장치들이 쇠퇴하였다.
ㅇ. PSYCHO-PASS 수치를 따라서 시빌라가 적절하게 복리후생을 책임지므로, 실업자, 빈부격차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민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ㅈ. 시빌라 시스템은 일본에만 도입되어 있으며, 일본 이외의 국가들은 21세기에 경제 대공황으로 사회가 붕괴되었다.
따라서 시빌라 시스템은 작중 세계에서는 가장 검증되고 안정되고 선진적인 사회 시스템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빌라가 인류에 내려 준 은총이다. -작중 시빌라 시스템의 모토- |
여기까지가 이 애니메이션이 나타내는 사회의 모습이다.
붉은 색으로 강조하였다시피 사람들에게서 ‘고민’이라는 삶의 요소가 상당 수 제거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빈부격차 등이 존재하지 않으며 범죄율이 0에 가까운 등 이상사회적인 모습도 있는 기묘한 사회이다.
2. 마키시마 쇼고의 문제 제기
마키시마 쇼고는 악역으로, 작중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사건들의 뒤에서, 범인들에게 범행 수단을 지원하고 이를 관측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시빌라 시스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기도 하며, 후술할 여주인공과 함께 작품 주제를 나타내는 인물
이기도 하다.
그의 대사를 몇개 인용하고자 한다.
사이머틱 스캔이 읽은 생체 역장을 해석하여 인간의 감정을 해독한다...... 드디어 과학의 지혜는 영혼의 비밀을 밝혔고 이 사회는 격변했지. 하지만 그 판정에는 인간의 의지가 없어. 자네들은 무엇을 기준삼아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있지? 나는 인간 영혼의 광채를 보고 싶다. 그것이 고귀하다고 직접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자기 뜻도 묻지 않고 시빌라의 신탁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 있다. 생사여탈의 권리마저도 시스템에 빼앗긴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가축이지. 아무리 포장해 봐야 축산업자는 가축을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기하다. 이 따분한 사회에서 가축 취급 받으면서도 왜 아무것도 부수지 않을까. 이 세계에 영원은 없다. 존재하는 건 저항하는 자의 영혼이 발하는 광채뿐이다. |
마키시마: 미도 마사타케(작중 마키시마가 지원해 준 범죄자)를 어떻게 생각하나? 최구성(유일한 친구이자 동료): 불안합니다. 관심병 환자는 범죄와 맞지 않아요. 마키시마: 그래서 더 재미있지. 이번 사건으로 그자의 진가가 드러날 테니까. 인간의 가치를 측량하려면 단순히 노력만 시켜선 안 돼. 힘을 주면 돼. 법과 윤리를 넘어 자유를 얻었을 때 그 인간의 영혼이 보일 때가 있거든. 약자가 강자가 되었을 때, 선량한 시민 이 폭력을 휘두를 자유를 얻었을 때 어찌되는가 흥미가 있거든. |
사실 애초에 애니메이션 공식 설정에 의하면, 마키시마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 니체이고, 좋아하는 책에는 푸코의 『감옥의
탄생』, 조지 오웰의 『1984』가 들어있으니 이런 면모에서 분석해보라고 제작진이 구현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에서 니체적 관점에서 마키시마 쇼고, 더 나아가 이 작품을 분석해보려 한다.
먼저, 니체가 근대에 대하여 가졌던 문제 의식을 짚고 넘어가겠다. 과학 혁명은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인간은 합리성
으로 환원되어 측량된다. 또한 니체가 보기에 근대에 ‘이성’이 차지하는 위상은 중세때 ‘초월자’가 차지하던 위상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니체는, 인간은 변화하는 세상의 니힐을 견디기 위하여, 중세때는 초월자에게 근대에는 이성에게 의존한
다고 해석하였다.
이번에는 마키시마가 가지는 문제 의식을 정리해보자.
과학은 인간의 영혼이 지닌 비밀을 밝혀내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인간은 PSYCHO-PASS로 환원되어 측량된다.
그리고 마키시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대에 접어들어 사회는 절대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걸 단념했다. 상대적인, 편차적인 세계관을 중심으로 점차 안정되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 요소의 필요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솝우화의)신 포도라는 이유로 잘라버렸을 뿐이다. 손에 넣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없던 것으로 치자고. 거기에 시빌라 시스템이 나타났다. 시스템은 문화와 예술에도 개입했다. 시빌라 인증 예술가, 시빌라 추천 작품... 블랙박스화된 독자적 판정기준에 의하여 발전에 필요한 고뇌와 대립이 감소되고 말았다. |
누구나 고독하다. 누구나 공허하지. 지금은 어느 누구도 남을 필요해하지 않아. 어떤 뛰어난 재능도 여분을 찾을 수 있다. 어떤 관계도 대체할 수 있다. 그런 세계가 지긋지긋했다. |
여기서 우리는 직관적으로, 마키시마의 문제 의식이 니체와 상당 수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마키시마가 범죄자들을 지원하는 이유도 알 수 있는데, 마키시마가 원하는 것은 강자, 곧 초인의 영혼이 발하는 광채를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1. 나를 벌하는 자가 있다면 그건… 스스로 살인자가 될 의지가 있는 자뿐이야.
이러한 마키시마의 성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에피소드가 있어서 짧게 언급하겠다.
마키시마가 지원하는 한 범죄자가 여주인공 츠네모리 아카네의 친구, 후나하라 유키를 납치한다.
이후 남주인공 코가미 신야는 범인을 처벌하고 피해자 유키를 구출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코가미 역시도 중상을 입고 기절하는
바람에, 이들의 행동을 관측 중이던 마키시마가 유키를 데려가게 된다.
이때 마키시마는 유키를 기절시키고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었으나, 중간에 여주인공 아카네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아카네는 도미네이터를 겨누며 마키시마를 처벌하려고 하였으나, 여기서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마키시마의 범죄계수가 100을 넘지 않으며 비정상적으로 낮게 측정되는 것이다. 이유는 마키시마가 ‘면죄체질자’라고 불리우는
특이체질이었기 때문이다.
면죄체질자는 범죄 계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예외적 인간들이며, 시빌라는 이들의 존재를 비밀로 숨기고 있었다.
이 작품을 감상한 시청자 중 많은 수는, 면죄체질자의 정체는 Psychopath, 즉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미의 사이코패스라고
추정한다.
이 글에서는 이 추정이 맞다는 전제하에서 진행하겠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마키시마 쇼고는 Psychopath(면죄체질자)이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낄 상황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빌라는 그의 범죄 계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카네는 도미네이터로, 그 어떤 법적 근거로도 마키시마를 처벌할 수 없었다.
다음 동영상을 참고해보자. https://drive.google.com/file/d/0B9bIAy5eMbz7QzYwMnprRUZzcXc/view?usp=sharing
2-2. 마키시마의 죽음.
최후에 마키시마는, 그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주인공 코가미 신야의 사적 복수에 의해 죽는다.
이 장면에서는 매우 특이한 대화와 연출이 오고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마키시마는 코가미에게 “자네는 장차 나를 대신할
존재를 찾아낼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코가미는 “필요 없어. 하나도 지긋지긋하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 마키시마는 미소를 지으며, 잠시 후 코가미는 마키시마를 총으로 사살한다.
마키시마는 인간이 물화되어 어떤 관계도 대체될 수 있는 세상에 분노한 이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복수를 하려는
코가미에게 있어서, 마키시마는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한명의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마키시마는 웃으며 죽을 수
있었으리라.
참고 영상: https://drive.google.com/file/d/0B9bIAy5eMbz7TEd2cWlLVDYyZEU/view?usp=sharing
3. 니체적 관점에서 본 시빌라와 마키시마.
시빌라에 대한 마키시마의 지적은,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이 작품의 주제를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상기했다시피, 작중 세계에서 인간은 고민과 판단이 상당 수 결여되어있다. 단순히 도덕을 판단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
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마키시마가 시민들을 가축에 비유한 것은 니체적 관점에서는 매우 정확한 비유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이런 사람들을 낙타에 비유했다.
사실 니체 역시도 사람들이 강자(초인)가 되기를 바랬고, 마키시마 역시도 강자의 영혼이 발하는 광채를 보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마키시마는 ‘강자’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점이다. 분명 마키시마는 낙타는 아니다.
그러나 마키시마가 ‘노예의 도덕’을 거부하였다고 해서 ‘귀족의 도덕’을 추구하였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어떤 것을 거부하였다는 것과 다른 것을 수용하였다는 것은 동일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런 관점에서 ‘낙타’ 외에도 ‘사자’와 ‘아이’의 비유를 들었다. 아이는 낙타의 삶을 거부하며, 스스로가 삶에, 그리고 도덕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강자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사자는 아이도, 낙타도 아닌 이를 뜻한다. 노예의 도덕을 거부하지만, 귀족의 도덕을 추구하지는 않은 삶이다.
그렇기에 나는 마키시마를 사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귀족의 도덕은 스스로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기에, 내가 생각하고 가치를 부여한 무언가를 마키시마에게 강요한다면, 니체의
관점에서는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작중 마키시마는 ‘무엇이 도덕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발견되
지 않는다.
그는 강자를 보고 싶어하였지만, 스스로 강자가 되지는 않은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또한 애초에 니체의 사상에서 약자와 강자는 가치론적인 이분법이 아니며, 인간이라면 있어야 할 무언가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마키시마의 가치론적 이분법은, 오히려 니체가 비판하는 서구의 전통적인 가치론적 이분법(플라톤주의)과 공통점이 발견된다.
즉 마키시마의 사상은, 가치론적 이분법을 극단적이고 부정적으로 비틀어 해석하고 이를 니체의 사상과 결합시킨 혼종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강자’는 누구일까? 나는 여주인공 츠네모리 아카네를 강자라고 생각한다.
4. 강자, 츠네모리 아카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건 선악의 구분이 아닐 거야.그걸 스스로 끌어안고 고민하고 짊어지는 거지. |
그 아가씨는 말이야. 매사를 긍정적으로 봐. 세상을 용납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러면서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면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아니지. 형사라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굳게 믿는 거겠지. -마사오카 토모미(동료 형사)- |
여주인공인 츠네모리 아카네는, 작품이 진행되면서 성장해가는 캐릭터로, 형사라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굳게 믿으며, 더 나아가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찾아나서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시빌라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워하지만, 점차 그녀 자신만의 견해를 정립해나가며, 친구인 유키의 죽음
을 계기로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시청자들은 아카네를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꼽으며, 이 작품의 각본가 중 한명인 우로부치 겐은 “자신이 만들
어 온 캐릭터들 중 가장 히어로에 가깝다”고 평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녀의 작중 행적을 일부 쓰겠다.
1화에서 그녀는 이제 막 형사가 되어 처음으로 현장에 나오게 된 신참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사건의 피해자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혼란 때문에 범죄계수가 상승하여 100을 넘게 된다.
법에 따르면 그녀는 마취되어 수용소로 보내지게 된다. 그러나 아카네는 이를 막으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결국 수용소로 보내지지만, 1화에서 이미 그녀는 법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며 살아야한다는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유키의 죽음 이후, 공안은 마키시마를 정식 처벌이 아닌 ‘임의 동행’이라는 편법을 통하여 붙잡으려 하는데, 아카네 역시도 이
편법에 동의한다. 이 역시 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마키시마가 유키를 죽일때 아카네가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장면에서, 그녀는 마치 법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는 그녀가 법에 순응해서
그렇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녀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은 ‘법’이 아닌 ‘법의 정신’이다. 사회 구성원은 사적으로 타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법의 정신이야말로 그녀가 마키시마를 즉석에서 처벌하지 않은 이유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녀가 법에 순응하는 캐릭터였다면, 1화의 그런 장면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고, 마키시마를 ‘임의 동행’이라는 편법으로 체포
하자는 의견에 반대하였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조금 인용해보겠다.
법이 사람을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법을 지키는 거에요. 지금까지 악을 미워하고 올바른 삶을 추구한 사람들의 마음이 그 결정체가 법이에요. 그 본질은 조문도 시스템도 아니에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리지만 양보 못할 의지죠. |
고결해야 할 법을 제일 더럽히는 행위과 뭔지 알아? 그건 말이지... 지킬 가치가 없는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거야. |
첫번째에서 그녀는 법의 정신을 말하지만, 동시에 두번째에서 지킬 가치가 없는 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혐오한다.
따라서 그녀는 법의 정신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또 그것을 토대로 가치가 있는 법과 가치가 없는 법을 구분하고 있다.
그녀는 시빌라를 막연히 긍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면서도 시빌라가 없으면 현 사회가 완전히 붕괴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길을 모색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영락 없이 강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음 장면은 그녀가 강자임을 매우 확실하게 보여준다.
https://drive.google.com/file/d/0B9bIAy5eMbz7a3ZReGVmSVBuM3M/view?usp=sharing
이 장면은 작품의 막판에 그녀가 환상 속에서, 죽은 동료, 죽은 친구(유키), 마키시마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죽은 동료는 삶의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는 아카네를, 마치 시빌라 이전의 노친네들 같다고 평한다.
여기에 대해 아카네는 무겁고 괴로운 고민이지만, 그걸 고민할 수 있다는게 행복한 것이라 답한다.
이후 환상속에서 그녀는 마키시마와 대화한다. 아카네는 중요한건 선악의 기준이 아니며, 스스로 끌어안고 고민하고 짊어지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아카네는 죽은 유키와 환상 속에서 대화한다. 유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즐겁고 편하기만 했을 뿐 괴로운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모든 판단을 시빌라에게 맡겼고, 무엇이 소중한지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카네에게 묻는다. “그런데도 내가 행복했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아카네는 이렇게 답했다. 행복해질 수 있었다며, 행복은 언제든 찾을 수 있었다며 답했다.
아카네의 관점에서 볼때, 행복은 고민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키의 인생이 행복하였다고 아카네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행복해질 수 있었어”라고 답했다.
고민을 하며 인생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키시마처럼 극단적으로 낙타의 가치를 낮게 해석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녀에게 있어서, 가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나온다. 마키시마는 차량을 타고 공안의 추적으로부터 도주하고 있었
는데, 아카네는 도미네이터가 아닌, 화약이 든 권총을 한 발 바퀴에 발사하여 도주를 막는다.
차량에서 내린 마키시마는 아카네를 제압하고, 그녀의 권총을 빼앗아 그녀를 사살하려고 한다. 그러나 탄환이 없음을 알아챈다.
그녀는 사적 복수를 위해 마키시마를 사살할 생각이 없었고, 1발만 있는 총알을 바퀴에 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아낸 마키시마는 “그렇군… 자네는...”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고 곧 그 자리를 벗어
난다.
제작진은 이 장면의 의미에 대하여, 아카네는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고 마키시마가 판단했기 때문이라 해설했다.
나는 이 장면에 대하여, 마키시마는 아카네가 ‘강자’임을 깨달았기에 죽이지 않았다고 해석한다.
그렇다. 바로 그녀야말로, 마키시마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존재, 빛나는 영혼을 지닌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인 ‘강자’인 것이
었다.
5. 『PSYCHO-PASS』와 우리 사회
『PSYCHO-PASS』가 말하는 문제 제기는, 단순히 하나의 애니메이션 속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강렬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간, 선택과 고민과 주체성이
결여된 인간, 물화(物化)되는 인간이라는 문제는 특정한 한 시대 속에서, 한 지역 속에서, 혹은 한 작품 속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근대 이후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아나키즘이 세계적 대세가 되는 식의 극단적 사회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의 사회는 더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더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또한 현대 과학은 『PSYCHO-PASS』 세계만큼은 아니지만, 기존에 인간 주체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많은 요소들을 호르몬의
화학 작용이라고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진화심리학은 우리가 이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많은 것들을 이기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생활속의 구체적 사례를 이야기해보겠다. 나의 경우는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데, 야구는 프로 스포츠 중에서
가장 통계적 방법론이 발달한 편이며, 이 중 하나의 수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라는 수치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해당하는 선수가 대체선수(북미
기준으로, 이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사이를 턱걸이하는 선수로 가정된다)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 승리를 팀에게 선사했는지
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이를테면 2013년과 2014년에 류현진의 WAR는 각각 3.6과 3.8이다. 즉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턱걸이
하는 선수를 류현진 대신에 기용했다면, 팀은 2013년과 2014년에 3.6승과 3.8승을 덜 거둔다는 뜻이다.
WAR는 선수의 연봉 협상에 가장 크게 반영되는 수치 중 하나인데, ‘승리’라고 하는 스포츠 구단의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메이저리그의 즐겨보는 팬들 역시도, 점점 WAR를 토대로 선수를 평가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이제 메이저리그의 헤비한 팬들은 “A 선수는 친화력이 좋고, 전술 이해도가 높고, 오랫동안 팀에서 활약했으니 재계약을 해야해요”
라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A는 WAR가 2.0이므로, 2승을 위해서 그 돈을 쓸 수는 없어요. 계약을 하면 안되요.”라고
말한다. 선수는 3승을 가져오는 알짜 선수, 5승을 가져오는 최고의 선수, -1승을 가져오는 쓰레기 선수로 물화되어 취급된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WAR 2짜리 선수는 WAR 2짜리의 다른 선수로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친숙하게 접하는 스포츠에서도 이미 인간의 물화는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팬이고, 인간은 측량하여 수치화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WAR를 포함한 각종 통계적 방법론
을 야구를 볼때 즐겨쓴다.
이번에는 다른 사례를 소개하겠다. 우리는 차를 운전할때 내비게이션을 쓰며, 경로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기계에 이것에 의존하고
있다. 불확실한 운전자의 사고력과 기억력보다는, 내비게이션의 신뢰성을 믿는다.
내비게이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례에서 인간은 ‘고민’이 줄어든다. 도덕 뿐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현대인은 스스로가 가치
를 부여하지 않고 타 존재가 부여한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이는 니체와 『PSYCHO-PASS』의 제작진이 경고하는 현상
이다.
물론 니체도, 『PSYCHO-PASS』의 제작진도 아나키스트라던가 반과학주의자라던가 복고주의자는 아니다.
니체는 국가의 필요성을 긍정했으며, 『PSYCHO-PASS』 제작진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아카네는 ‘법의 정신’을 외치는 인물이다. 따라서 야구를 볼때 통계를 집어치우라던가, 운전을 할때 내비게이션을 쓰면 안된다는 식의 결론은 도출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고민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똑같이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더라도, 산의 경치와 공기와 정상에서의 쾌감을 즐기며 오르는 사람은 억지로 오르는 사람, 혹은
누군가가 올라갔으니까 따라 올라가는 사람과 같지 않다.
첫번째는 진정으로 산을 즐기는 이며, 산을 오르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강자이며, 『PSYCHO-PASS』 제작진이 말하는 이상적 인간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결국 시빌라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으며, 츠네모리 아카네가 이를 붕괴시키려 시도하지도 않는다.
사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을때, 나는 이것이 매우 불만이었고, 적지 않은 팬들도 이를 찜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시빌라가 무너지지 않았기에, 이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은 더욱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저 허구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메세지를 던지고 싶어한다.
시빌라가 현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은 쉽게 무너질 경우 설득력이 떨어지며, 주제를 오인하게 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을 억압하는 현 체제를 뒤집어버리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중에서 시빌라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일본 이외
의 타 국가는 모두 붕괴하였다.
즉 시빌라 시스템은 작중 가장 검증되고 안정된 사회유지 시스템이며, 인류가 택한 것 중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사회체제이다.
만약 이 시빌라가 간단하게 부정되고 붕괴되며, 주인공이 그것을 의도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애니메이션을 해석해야 할까?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자본주의를 때려부수기라도 해야할까?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사회체제라는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대안 없이 쉽게 부정될 수도 없다. 적어도 개인 단위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
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제작진은 개인이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고민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아마 니체도 그런식으로 이야기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