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2024.10.10.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3,1-5 루카11,5-13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청을 들어주지 않던 친구라도 그가 끈질기게 간청하면 결국 들어준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결론에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확신이 넘치는 말마디가 꼭 앞에 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염치와 체면불구하고 간절하고 절실해야하며 항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낮은 자세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겸손한 기도의 자세는 그대로 믿음의 자세요, 정말 주님을 믿는다면 이처럼 항구하고 끈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가 감동을 줍니다. 제 주변에도 이렇게 믿음으로 절실히 살아가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여기 수도자들이 대부분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어지는 기도에 관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욱 용기백배하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정말 이렇게 믿어 기도하는 자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좌절함이 없이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쳐야 합니다. 불퇴전의 자세로,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자세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주님께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래야 참으로 탄력좋은 기도요 믿음이요 삶입니다. 기도의 탄력, 믿음의 탄력, 삶의 탄력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
제가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한결같이 참 많이 강조해온 것이 ‘주님의 전사’에게 탄력좋은 믿음입니다. 새 용수철처럼 누르면 즉시 튀어나오는 탄력이 영성생활에도 절실함을 강조했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과 함께 가는 영적탄력의 삶이요, 이래서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우선해야 합니다. 언제든 넘어지면 즉시 일어나 다시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노력에 항구할 때 영적탄력도 보존됩니다. 영적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영적탄력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늘 푸르른 믿음, 푸르른 희망, 푸르른 사랑의 사람이라면 영원한 청춘입니다.
제가 여기 불암산 기슭 요셉 수도원에 36동안 정주하면서 가장 많이 바라본 것이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늘과 불암산이며, 간혹 답답하고 암담할 때도 있었지만 결코 절망, 원망, 실망의 삼망은 없었음도 좋은 영적탄력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정주와 믿음의 표상인 산을 흠모하여 쓴 시들이 가장 많습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하늘과 산의 관계는 주님과 나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무려 27년 고백시가 여전히 지금도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더불어 10월 한달 저를 내내 행복하게 하는 “산앞에 서면”이란 시입니다. 늘 고백해도 늘 좋고 새롭습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2024.9.29.>
영적탄력이 손상되어선 안됩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의 자포자기로 일어나 다시 시도하지 않는 것이 대죄라고 단언하곤 합니다. 한번 나태함으로 영적탄력 떨어지면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에게는 한결같은 기도의 훈련은 절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훈련, 믿음의 훈련, 삶의 훈련에 결코 지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어라”, “기도하다 죽어라” 삶의 치열성을 강조한, 영적전투에 최선을 다하는 어느 구도자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다음 복음 말씀도 단숨에 읽혀집니다.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한다면 결코 끊임없이 한결같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 믿음에, 삶에 지치는 일이, 영적전의를 상실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새삼 청해야 할 최고, 최상의 선물은 성령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은혜 자체가 성령입니다. 정말 한결같이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늘의 아버지는 최상의 선물,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노년의 삶은 말그대로 성령에 따른 자유롭고 초연한 사랑의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평생 영적전투에 성령의 도움은 절대적이며, 성령께서는 평생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사실 이렇게 항구히 청하고 찾고 두드리며 살 수 있음도 순전히 성령의 은총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제1독서 말씀이 정신 번쩍 들게 합니다. 성령의 사람, 복음의 사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성령에 따라 복음적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사도의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큰 깨우침이 됩니다.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정말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적 삶을, 경청과 겸손, 섬김의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치지 않도록 더욱 영적 삶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영적탄력 좋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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