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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헨더슨 UFC의 슈퍼코리안 '어머니를 위하여'
UFC 라이트급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30, 미국)의 챔피언벨트를 노리는 '김치파워' 벤 헨더슨(29, MMA LAB)! 한국계 흑인 혼혈 파이터이자 인터뷰 때마다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는 '의식 있는' 하프 코리언 벤 헨더슨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UFC 메인 이벤트 무대에 선다. 1월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리는 'UFC 144' 대회에서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와 5분 5라운드 격돌을 펼치게 된 것.
네이버 <매거진 S>에선 지난 2월10일, 미국 애리조나 글렌데일에 위치한 벤 헨더슨의 체육관을 찾아 도전자와 1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앞둔 터라 다소 긴장한 얼굴 표정이나 각오 등을 기대했지만 기자를 맞이한 벤 헨더슨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삶이 묻어나는 대답들로 '인터뷰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만들었다.
훈련을 위해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벤 헨더슨 (사진 : 순스포츠 홍순국) |
벤 헨더슨의 체육관은 점심시간부터 오후 3시까지는 업무 정지 상태였다. 3시가 넘어서자 관원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후드 티셔츠를 입고 귀에 이어폰을 낀 벤 헨더슨이 등장하면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음악들과 함께 체육관이 정상 가동되었다.
주한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벤 헨더슨은 경량급의 격전지로 대변되었던 WEC에서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랐다가 마지막 이벤트 경기에서 만난 앤소니 페티스에게 패하며 상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UFC 옥타곤으로 무대를 옮긴 벤 헨더슨은 지난 한 해 동안 마크 보첵, 짐 밀러, 클레이 구이다를 연속으로 물리친 후 모든 UFC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UFC 타이틀전 기회를 안았다.
벤 헨더슨이 한국 격투 팬들에게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그가 UFC 무대에서 승리를 거머쥔 뒤 카메라를 보고 한국말로 "한국 팬들 마니마니 사랑해요. 어무니, 사랑해요!"라고 외치며 활짝 웃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부터다. 옥타곤 무대에 오를 때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고, 자신의 힘의 원천이 ‘김치’라고 말하는 스물아홉 살의 혼혈 파이터 벤 헨더슨.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던 그는 무대 밖에서는 겸손함과 친절한 '청년' 이미지로, 무대 위에서는 거침없는 맹공을 퍼붓는 파이터로 변신을 꾀하는 '팔색조'였다.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활짝 웃는 헨더슨 (사진 : 순스포츠 홍순국) |
-안녕하세요. 먼저, 챔피언 타이틀매치를 앞두고 <매거진 S>와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체육관이 굉장히 크고 멋진데요, 평소 여기서 훈련을 하시나요?
"그렇죠. 5년 전에 이 체육관을 찾았을 때의 전, 청소하는 사람이었어요. 바닥도 닦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그런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었죠. 그래야 체육관비를 내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 코치와 함께 동업해서 경영하고 있는 오너가 되었어요. 매우 기분 좋은 일이죠."
-한 마디로 엄청난 신분상승인데요?(웃음) 챔피언 타이틀매치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어느 대회보다도 떨리고 긴장될 것 같은데,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그런데 전 모든 게임이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아마추어 때 처음 했던 시합과 UFC 데뷔 후 처음 치렀던 시합이 저한테는 다 똑같았어요. 모든 시합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대회는 챔피언 타이틀이 걸려 있는 매치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 더 긴장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여느 게임과 마찬가지의 매치일 뿐이에요."
-그래도 챔피언 타이틀전은 조금 다른 마인드로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전혀요(웃음). 제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고 매일 힘든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되는 게 없어요. 만약 제가 훈련을 게을리 했거나 식이요법에 실패해서 살이 쪘다면 걱정이 되고 두려움이 생기겠죠."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선수는 이제 당당한 오너가 되어 있다. (사진 : 순스포츠 홍순국) |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 열리는 메인 이벤트라 더더욱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한국 팬들이 이번 매치에 굉장히 많은 기대를 갖고 계시리라 믿어요. 그래서 흥분되는 부분도 있어요. 개인적인 희망이 있다면 인생에 한 번쯤은 한국 무대에서 경기를 치르고 싶다는 겁니다. 이번 일본 대회에는 (한국말로) '어머니,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 이모님들'이 직접 오셔서 경기를 지켜보실 거예요. 저한테는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대회인 거죠."
-앉아 계시는 모습이 서양인들한테는 보기 힘든 자세네요. 양반 다리를 하고 계시는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전혀요. 저도 한국 예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답니다(웃음)."
-인터뷰하는 제가 더 기분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빅 매치 얘기 좀 해볼게요. 라이트급 챔피언인 프랭키 에드가에 대해선 연구를 많이 하셨나요?
"제가 처음 이 선수를 봤던 건 MMA 팬의 입장에서였는데, 지금은 도전자의 신분이 됐네요. 저를 도와주고 있는 코치들이 하루에 10번 이상씩 프랭키 선수의 경기 비디오를 분석하며 자료를 뽑고 있어요. 그 자료들을 토대로 훈련할 때마다 코치들이 프랭키 선수의 경기 패턴을 알려주고 저와 함께 프랭키 선수의 공격과 수비를 대비해서 대처 방안들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희 코치들은 전문가잖아요(웃음)."
-프랭키는 장기전, 체력전의 명수로 소문나 있어요. 자신 있나요?
"비단 프랭키 뿐만 아니라 어떤 경기라도 체력적인 면은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선수들이 상대를 초반에 쓰러트리고 승리를 쟁취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는 매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상대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해요. 저는 이미 두세 번 정도 5라운드까지 가는 장기전을 치렀기 때문에 체력면에선 자신이 있어요. 상황이 악화돼서 6,7,8라운드까지 가더라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혹시 프랭키를 상대할 비장의 무기를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이 얘기는 절대로 프랭키한테 말하지 않을게요(웃음).
"하하, 몇 가지 준비한 게 있긴 해요. 그러나 그런 준비들은 어떤 특정 상황이나 특정한 타이밍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 경기 중에나 확인이 가능하실 것 같네요. 솔직히 프랭키가 이 기사를 보고 눈치채면 곤란하거든요."
-UFC 챔피언 자리에 도전한다는 건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에요. 그런데 당신은 다른 선수에 비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어요.
"신의 은총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저에게 가야할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셨고 그 타이밍을 정확히 제시해주셨으며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다른 선수들은 6,7경기를 치르고도 이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데 전 제 자신도 믿지 못할 정도로 빨리 올라왔거든요."
-UFC에서 3연승을 거두며 여기까지 왔어요. 마크 보첵, 짐 밀러, 그리고 클레이 구이다를 상대하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나요?
"특별한 감정은 없었습니다. 일련의 똑같은 시합들이었죠. 그 선수들을 TV를 통해서만 보거나 다른 경기할 때 슬쩍 쳐다본 것 외엔 잘 모르기 때문에 경기에선 이겼다고 해도 인상적인 경기로 남아 있진 않아요."
UFC 144 에드가전을 앞두고 훈련에 열중인 헨더슨 (사진 : 순스포츠 홍순국) |
-격투기에 입문한 동기나 과정이 궁금해요.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웠다고 들었어요.
"어머니가 꼭 배워야 한다고 해서 형이랑 같이 배웠죠. 대학교 다니면서 레슬링을 했어요. 레슬링은 야구나 축구, 미식축구처럼 협회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단, 아마추어 레벨의 레슬링을 할 수 있는 정도였죠. 제가 레슬링을 잘해서 미국 1% 안에 드는 실력있는 레슬러였고, 올림픽대회에 나갔더라면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졸업하고 나니까 그게 다이더라고요. 그러다 운 좋게 MMA(종합격투기)라는 게 생겼고 미국 내에서 인기를 끄는 종목이 되었죠. 당시의 전 젊었고 활동적인 상태라 어느 시합에 나가도 이길 자신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MMA에 입문하기로 결정했던 거죠. 제 자랑이 심한 것 같지만(웃음), 데뷔전에서 모두가 놀랄 만한 승리를 거뒀어요. 그게 제 종합격투기 인생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격투기라는 종목 자체가 어느 종목보다 힘들고 어려운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도중에 그만두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 없었나요?
"(조금 생각에 잠기다가) 아니요, 저한테 격투기는 어느 스포츠보다 공정하고 순전히 두 손과 맨 몸을 통해 정정당당히 겨룰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경쟁을 즐기고 있고 경쟁을 사랑하기 때문에(심지어 체스나 카드게임에서도 지기를 싫어합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MMA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공정하고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멋진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그저 맨 몸의 두 선수가 아무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팀이 아닌 개인 대 개인으로 아무 것도 없는 옥타곤(케이지) 안에서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스포츠이잖아요. 저는 그런 게임이 너무 좋아요."
-어머니 입장에선 아들이 피를 흘리고 링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셨을 때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머니가 많이 불안해하시고 걱정을 하셨죠. 제가 대학 졸업 후 덴버에 있는 경찰 시험에 합격했었어요(벤 헨더슨은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했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살 수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전 어머니한테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연히 경찰이라는 직업이 보수도 좋고 안정적이었던 반면에 격투기 선수는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직업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UFC에서 나름 성공을 거둔 후로는 가족 모두가 절 응원해주고 격려해 주세요. 그래서 더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때 스폰서가 없어 곤란을 겪기도 했었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 광고를 스폰받고 있어요. 메인 스폰서는 계속 구하는 중이고요. 제가 알기론 한국 웹사이트에서 절 스폰해주고 있다고 들었어요. 배너 광고를 후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는 스폰서 문제로 힘든 적이 많았나요?
"그럼요. 엄청 힘들었죠. 무명인 저를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스폰서들이 돈을 투자하려고 하지 않았죠."
헨더슨은 지난 2009년 UFC 산하 단체인 WEC 라이트급의 챔피언에 오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진 : 순스포츠 홍순국) |
-흔히 벤이 갖고 있는 파워를 '김치 파워'라고 부르는데요, 고기를 먹지 않고 김치만 먹어도 힘이 생기나요(웃음)?
"하하, 말이 또 그렇게 되나요? 전 어릴 때부터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로) ‘밥, 반찬’ 등 한국 음식이 잘 맞아요. 맛있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20년 넘게 항상 해주셨던 음식이기 때문에 안 맛있을 수가 없죠(웃음)."
-몸의 문신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어요. 특히 '힘' '명예'라는 한글을 새겨 넣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힘' '명예'는 제가 기도할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는 저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규칙과 규범들을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힘과 명예는 저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해주는 인생의 중요한 단어들입니다."
-격투기 선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어요?
"장점이라고 한다면, 우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하고요, 또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좋은 몸매를 가꾸는 것도 좋아요(웃음). 단점은 가끔 경기에서 맞을 때, 정말 큰 주먹들이 얼굴을 강타하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웃음). 아주 많이 아프거든요."
화제가 된 헨더슨의 한글 문신 (사진 제공 : 엠파이트) |
-어머니가 시애틀에서 여전히 일(글로서리)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돈을 더욱 많이 벌면 어머니에게 큰 선물을 하고 싶다고요?
"지금도 매달 현금을 드리고 있지만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어머니한테 차와 집을 장만해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가 계시는 곳에 자주 가보질 못해요. 일년에 두세 번 정도가 될 거예요. 그때는 어머니가 제대로 쉬시는 날이에요. 제가 글로서리를 지키고 어머니한테 휴가를 드리거든요. 그리고 지난 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을 방문했어요. 정말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예요. 어머니의 고향이고 제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내내 특별한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한국의 UFC 선수들이 5명이나 돼요. 당신을 비롯해서 추성훈 김동현 정창선 양동이 선수들인데요, 이 5명의 선수들이 한국에서 UFC 대회를 치른다면 어떨까요?
"와,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인데요.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UFC 대회를 열려면 절 포함해서 다른 4명의 선수들이 더 많은 활약을 펼쳐야 할 겁니다. 예를 들면 일본 선수들처럼요. 일본 선수들 11명이 UFC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아마 한국에도 8명 또는 9명 정도의 UFC 선수가 좋은 모습을 펼친다면 UFC 대회가 한국에서도 열릴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웃음)."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와 친하다고 들었어요. 만약에, 훗날 체급을 맞춰서 정찬성 선수(페더급)와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있을까요?
"아, 그렇게 경기를 치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이라고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정찬성 선수가 워낙 작은 체격이라서 제가 그의 체급을 맞춘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정찬성 선수의 체급을 맞추려면 제 다리를 하나 잘라야 할 걸요?(웃음)"
-혹시 한국계 태생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나요?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 친척분들이 많았고 어머니와 이모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친척들도 저와 다 똑같은 혼혈이었기 때문에 전 외롭지 않았습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과 함께 (사진 제공 : 엠파이트 ) |
벤 헨더슨은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체육관을 건립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 방문 때 정찬성이 훈련하는 체육관에 방문했다가 한국의 체육관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가 계시는 시애틀과 덴버, 그리고 한국에도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세우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인터뷰 내내 양반다리 자세를 풀지 않았던 벤 헨더슨. 인터뷰할 때의 웃는 모습과 격투기를 할 때의 성난 표정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인생이, 그의 목표와 희망이 너무 좋았다. 가슴에 진하게 와 닿을 정도로. 기자 신분으로 만난 선수였지만 앞으로 벤 헨더슨 경기를 볼 때 그의 응원군이 될 것만 같다. 그 정도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수였다.
▶ 어머니 김성화씨가 말하는 아들 벤 헨더슨
시애틀에서 글로서리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한 벤 헨더슨. 벤은 휴가를 받으면 어머니를 찾아가 아침 일찍 글로서리 문도 열고 가게도 운영하면서 어머니의 일을 돕는다.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일생을 위해 자신이 UFC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둬야 한다고 말하는 벤 헨더슨이다.(사진=시애틀 스포츠서울 USA 김성배 기자) |
시애틀에 살고 있는 벤의 어머니 김 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된데다 말도 통하지 않았던 터라 당시의 불안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면서 "아기를 위해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남편이 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남편이 술을 끊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감행했다고 한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 술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벤의 아버지는 가족을 등한시한 채 술만 마셔댔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이혼은 안 하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하루에 두 군데에서 16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을 했다. 주위에서 ‘일 벌레’라고 놀릴 정도로 힘들게 일을 했지만 정작 난 힘든 줄을 몰랐다. 새벽 한두 시에 귀가하면 잠도 안 자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두 아들ㅇ 달려 나와 나를 포옹하며 얼굴을 비벼댔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이 나한테는 하루의 고달픔을 모두 해소시켜 주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김 씨는 헨더슨 형제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 주기위해 노심초사했다. 한국말은 물론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미국식 음식을 거부하고 정성이 깃들어진 한식으로 식단을 차려줬다. 지금도 돼지불고기와 김치는 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다. 또한 한국식 예의범절을 알려주며 손님이 오면 반드시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를 외쳐야했다.
무술을 접한 동기도 엄마 김 씨 덕분이었다. 김 씨는 두 아들을 태권도 도장에 다니게 했다. 벤은 타고난 운동신경을 자랑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레슬링 선수로 성장했고, 워싱턴주에서 주최한 대회에 출전해 2등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네브라스카의 다나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 범죄학을 전공한 벤은 대학 졸업 후 경찰에 합격하고 나서 격투기에 입문했다.
벤이 피 튀기는 사각의 링에서 욕설을 내뱉지 않고, 승리 후에도 상대방을 자극하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예의바른 선수로 알려진 데에는 어머니 김 씨의 한국식 교육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헨더슨의 몸에 새긴 문신을 보면 그의 애절한 한국 사랑을 느낀다. 양쪽 몸통에 '힘' '명예' 그리고 양 어깨에 '전사' '핸더슨'이라는 문신을 넣었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뜻도 모르며 외래어로 문신을 새길 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헨더슨은 한글로 문신을 새긴 것이다. 한글과 한인의 정체성에 각별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엄마는 지금도 하루에 16시간씩 일하고 계시지만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강인한 한국 여성이다. 난 그런 엄마에게 UFC 챔피언 벨트를 채워드리고 싶다. 그게 지금 나의 꿈이다."
오는 2월 26일 일본에서 열리는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도전자인 한인 2세 혼혈 파이터 벤 헨더슨의 각오가 인터뷰 후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사진 출처 : zuff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