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그 뜨거운 도시의 폭염 속에서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로 [엄마]를 찾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남자 아이 한 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우렁차게 우는지 금방 그 애의 엄마가 나타나서
“음. 울지마. 엄마 여기 있다” 라며 아이를 달래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어릴 적 엄마를 따라서 시내에 나갔다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고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봤을 사람들의 모습은
무표정하고 무서웠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엄마와 함께 왔던 길을 더듬어서 찾아갔지만 보이지 않자,
다시 최종적으로 엄마의 모습을 잃어버린 그 자리에 서서
엄마가 나를 찾아와주기만을 바라고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을 잃었다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고,
이러다가 혹시 나쁜 사람에게 유괴라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하곤 달려가서 끌어안았던
엄마의 품은 지금은 따뜻하고 포근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릴 적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처음 가는 장소를 찾아갈 땐
늘 어느 정도의 걱정과 두려움이 따릅니다.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뭐, 그런 생각들이죠.
이렇게 길을 잃는다는 것 혹은 길을 찾는다는 것은
늘 우리들에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명의 제자를 불러
당신의 일을 도와줄 사도로 삼으시면서 파견하십니다.
그들에게 당신처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악령들을 제어하는
능력과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주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파견을 받은 사도들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들을 향해서 매번 파견을 받는 일꾼 양들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길 잃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안심시키고,
이제 곧 하느님의 나라에서 마음 편히 머물 수 있을 것이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구원의 전령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중하고 귀중한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구원의 전령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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