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뮬리의 계절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스산함을 더해주는 만추의 계절에 온통 세상을 핑크빛으로 환하게 물들이는 꽃 핑크뮬리. 사람들이 핑크뮬리에 크게 열광하는 것은 이렇게 쓸쓸함을 안겨주는 계절에 꽃을 피우기 때문일 것이다. 핑크뮬리는 같은 꽃밭에서도 서로 시차를 두고 피고 있었다. 여름처럼 대부분 녹색을 보이는데도 꽃밭 가장자리에선 색깔을 보랏빛이나 핑크빛으로 바꾸면서 피는 것이다. 어쩌면 꽃들은 화사한 자신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인간들에게 보여주면서 사랑을 받고 싶어 그렇게 피우기로 약속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으로선 꽃 이미지 갈무리에 그만큼 더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십여 년 전부터 시월의 마지막 날이면 ‘잊혀진 계절’이란 번안가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월의 마지막 날은 우리 앞에 돌아왔고 약속이나 한 듯 지인들은 카톡으로 이 노래를 보내왔다. 인생 끝자락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삶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보내와 폰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핑크빛 가을을 남기고 싶어 낙동강가의 황산공원을 향하는 자전거 페달은 가벼웠다. 공원은 서북쪽에서 흘러온 유장한 낙동강에 북에서 내려온 양산천이 몸을 섞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낙동강을 따라 10km 이상 이어져 부산시민들의 식수를 생산하는 물금취수장까지 공원은 이어져 그 규모는 국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강과 하천이 만나는 지점은 대도시 부산과 신도시 양산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부산지하철 2호선 호포역에서 황산공원까진 산책로가 이어진다.
공원 남단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를 강으로 인정하고 둑을 지나면 바다다. 같은 강물이 그대로 흐르지만 강은 이미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 펼쳐지기 전까지 비닐하우스단지에 채소를 심었던 낙동강 둔치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고수부지에 황산공원을 조성했고 십여 년이 지난 뒤 잔디밭을 귀화식물인 핑크뮬리로 바꾸면서도 유채꽃처럼 대대적으로 심지는 않았다. 선두주자 도시들을 따라 꽃밭을 조성할 무렵 성장력이 강한 핑크뮬리가 국토전역에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전문가 집단의 강력한 경고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노릇인지 황산공원 핑크뮬리 꽃 색상은 을숙도생태공원처럼 아름다운 핑크빛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저생태공원처럼 칙칙한 보랏빛에 가까웠다.
공원은 신도시 사는 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4km에 불과하지만 경부선 철길이 가로막혀 그 밑을 관통하는 도로는 빙빙 도느라 그 배나 된다. 예년대로라면 공원에선 국화축제도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바뀐 세상이라 기초단체에선 식재해 놓은 핑크뮬리를 1년 만에 뽑아버릴 수도 없어 난감해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꽃밭 가까이엔 주차장도 두 면이나 있어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도 불안한지 사람들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벼과식물인 핑크뮬리는 그 색상이 핑크빛이라 눈길을 끌지만 낱개로 자세히 관찰하면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카메라에 담을 땐 필히 역광으로 찍어야만 그나마 어느 정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이런 작은 팁에도 사람들은 좋은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핑크뮬리 꽃의 개화를 점검하느라 열흘 동안 자전거로 서너 차례 공원을 찾다가 오늘은 아내까지 대동하여 차를 이용했다. 핑크뮬리 탐방을 끝내고 코로나 비상에 걸린 공원 전역 분위기가 어떤가를 둘러보고자 낙동강 상류까지 차를 몰았다. 평소 부산과 창원 울산 김해에서도 많이 찾는 파크골프장과 캠핑장, 미니기차, 낙동강 생태탐방선 선착장도 여전히 폐쇄한 상황으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강물 위로 들어서기 시작하는 ‘황산베랑길’ 들머리 물문화전시관도 지난 3월부터 문이 닫힌 그대로였다. 일제가 만든 그대로 지금도 열차가 부지런히 오가는 경부선 터널 위로 산을 곱게 채색한 단풍이 핑크뮬리 꽃보다 몇 배나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포토에세이 [핑크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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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에 감성적인 글로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승려 법정의 짤막한 에세이 한 편을 보내드립니다. 그는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는데 홀로 암자에서 기도생활로 일관하느라 피운 향의 독성이 사람을 삼켰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을 이야기
법정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 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것 같으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