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겨울의 내면 풍경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이렇게 시작되는데, <어린 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의 한 구절은 더 슬프다.
“한 아이가 벽에 기대어 울고 있다. 만일 그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에 웃음을 피어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평생을 두고 내 기억 속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대부분 첫인상이나 마지막을 기억하는데, 울고 있는 사람이 울음을 그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고 헤어진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울고 있는 그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작가들이 거의 비슷한 표현을 한 것을 발견할 때면 ‘세상이 너무 비좁다.‘ 라고 느낄 때가 있다.
한 아이가 울고 그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그 울음을 그치게도 할 수 없을 때,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막막함, 그럴 때가 있고, 그곳에서 벗어나고도 오랜 나날을 막막한 슬픔으로 지새우는 밤이 있다.
1970년대 후반의 군대 생활 중에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갈 때엔 떡한 말을 해가지고 들어가 부대원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정해진 관례였디.
1977년 마지막 휴가를 마치고 돌아갈 때 집안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 떡도 한 말 못해 가지고, 지금은 치즈마을로 이름난 임실 중화성리에서 2km쯤 걸어 나와 임실역에서 열차를 탔다. 그때 막내 동생 형교가 나에게 달려오더니, “형” 한마디 하고 내 주머니에 무언가를 집어 넣어주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열차에 올라 주머니를 보자 오천 원짜리 지폐였다. 그 당시 병장 월급이 2천 원 쯤 되었고, 제대할 때인 1978년 2월 마지막 월급이 이천 삼백원이었는데, 큰 돈이었다.
나중에 제대 후에 물었다.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느냐, “차비를 아끼고 걸어 다녔다고 했다.
지금도 막내동생 형교를 생각하면 그 때 ”형“하고 내 주머니에 돈을 주고 달아나던 동생이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있게 될 때(중략)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 방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일부분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 때, 집 한 채 남은 마을에서 재워 달라고 하자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고 했을 때, 힘들게 찾아간 절의 스님이 출타중이었고, 다리는 아픈데, 막막한 슬픔과 허전함으로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낙동강 길, 그 어둔 밤길을 터벅터벅 걸을 때, 그 때의 슬픔은 지극한 슬픔이고 쓸쓸함이었다.
그 보다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본문에 실린 훨덜린의 시 구절은 더 할 수 없는 슬픔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고통을 즐겨서 그랬는지, 프란츠 카프카는 “아름다운 추억이란 슬픔이 섞이면 더욱더 달콤한 법이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아름다워서 슬픈 그 슬픔의 계절 이 겨울의 초입에,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2023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