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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정당 탈피? 분열의 씨앗?… ‘이준석 돌풍’ 득실 따져보니
지난 6월 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코로나19로 인해 일반 당원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곽승한 기자
2019년 2월 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당대표 후보로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연단에 올라서자 “우~” 하는 야유가 장내를 채웠다. 연설을 이어가던 오 후보가 “안철수와 유승민을 지지했던 정치 성향 920만표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 920만표, 우리 셋 중에 누가 가져올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장내에선 “김진태! 김진태! 김진태!”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 후보에 앞서 김진태 후보가 무대 위에 오를 땐 4000명 이상 모인 행사장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김진태 대통령!”을 외치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행사장은 입구부터 보수 유튜버들과 군복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지지자, 중절모부터 구두까지 ‘올백’으로 차려입은 독특한 패션의 당원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 현장이 주는 인상과 별 차이가 없었다.
‘친박’ ‘비박’에 더해 ‘원박(원조 친박)’ ‘골박(골수 친박)’ ‘범박(범친박)’까지 이어지던 새누리당 시절 논쟁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지속됐다. 2019년 전당대회 역시 ‘친박’과 ‘배신자’ 프레임이 당심(黨心)을 가르는 핵심 잣대였다. 그 결과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황교안이 당대표에 당선됐고, ‘원박’이자 ‘골박’이었던 김진태가 2위를 얻었다. ‘배신자’ 야유 소리에 연설이 툭툭 끊겨야 했던 오세훈은 3위였다.
2019 전당대회 vs 2021 전당대회
2021년 6월 2일 부산 벡스코에선 국민의힘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건물 밖 입구에 노년층 당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지하는 최고위원·당대표 후보가 행사장에 들어갈 때 환호성을 외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상징적인 장면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나경원 전 의원이 행사장에 들어설 때 있었다. 이 전 위원 주변으로는 2대의 방송국 카메라와 5~6명의 스태프가 따라붙었다. 시사 프로그램과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이준석의 당대표 도전기’를 촬영하겠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방송국 카메라에 둘러싸여 등장한 이 전 위원의 모습은 ‘스타’ 같았다. 반갑다며 인사하는 당원들도 있었지만, “이준석이! 어른들한테 인사 좀 잘하고 다녀!”라며 호통 치는 이도 있었다. 한편 나 전 의원이 등장할 땐 수십여 명의 지지자가 모여 “나경원! 나경원!”을 외쳤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일반 당원들은 행사장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후보들이 연설하는 행사장 내부는 전당대회 후보 및 당 지도부 인사와 일부 당직자, 사전에 허가를 받은 기자들만 출입이 허용됐다. 기존의 전당대회 연설장 분위기와 달리 환호와 야유는 없었다. 박수 소리는 극히 작아졌다. 이전 전당대회가 ‘공연장’ 같았다면 지금은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 같은 느낌이었다.
2년 사이 분위기가 바뀐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당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바른정당계’이자 ‘유승민계’로 불리는 정치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그전부터 ‘친박계’와는 거리를 둬왔다. 그런 그가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도 당대표 후보 지지율 1위를 얻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 3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대표 적합도 조사 결과 이 전 최고위원은 48%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기록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29%,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9% 순이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당심’의 선택을 예단하긴 아직 이르다. 국민의힘은 일반 국민 30%, 당원 70% 비율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당대표를 선출한다. 이 여론조사 대상에 호남과 20~30대 청년 비중이 지나치게 적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나왔다. 그만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영남권·50대 이상 유권자들의 여론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관위원은 “선거 룰을 정하는 과정이 분명 기존의 기득권 위주로 마련된 것이 맞는다”라면서 “거기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사실상 선관위 지도부가 마음대로 한 셈”이라고 했다.
2019년 2월 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이 연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당심’을 변화시킨 요소들
이 전 위원이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지지율 1위를 얻는 기반은 △정치권 세대교체를 향한 국민적 지지 △지난 보궐선거에서 오세훈·박형준의 승리로 입증된 ‘합리적 보수’의 승산 △현 정권에 대한 2030세대의 분노로 요약된다. 이 3가지 요건은 당심과 민심이 뒤섞여 나온 것들이다. ‘이준석 현상’은 주로 일반 ‘민심’에 가깝고 ‘당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이준석의 성공 여부가 국민의힘의 변화된 당심을 드러낼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2030세대의 분노, 정치권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민심을 국민의힘 후보가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이준석 현상’의 ‘명(明)’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4월 21대 총선이 끝난 직후 만난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심’ 걱정부터 했다. “당원들이 극우화되어 있어서 당이 변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었다. 당원들이 여전히 ‘찬탄파(탄핵 찬성)’와 ‘반탄파(탄핵 반대)’로 나뉘고 친박과 비박을 가르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총선 공천관리위원을 맡았던 김 전 의원은 “당이 해체되지 않는 이상 이 문제가 해결될까 의문이 든다” “이번 총선에서 아예 더 망했어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자유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민폐” “좀비 정당” 같은 수위 높은 발언을 해 일부 당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그랬던 국민의힘 당심에 무슨 ‘변심’이 생겼기에 이 전 위원이 당대표 유력 주자가 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바깥에서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에 형성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한 선관위원은 “황교안 전 대표가 당선되던 때 전당대회를 돌이켜보면, 당시 당원들 분위기와 당심은 태극기부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목소리가 많이 줄었다”면서 “오세훈·박형준 같은 태극기계와 거리가 먼 사람이 당선된 이유가 배경”이라고 했다. “합리적인 사람을 뽑아야 국민들에게 먹히는구나”라는 공감대가 당에 퍼진 것이라고 이 선관위원은 덧붙였다. 비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 전 최고위원이 당대표가 되면 당 이미지가 나아지고 이것이 대선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략적 공감대’가 당원 사이에 형성됐다는 것이다.
‘탄핵’을 뒤덮어버린 ‘공정’ 어젠다
이 전 위원은 주간조선과 만나 ‘자신을 둘러싼 당심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사람들이 A라는 관심사에 경도해 있으면, 그것보다 좀 더 강도가 센 B라는 관심사로 덮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우리 당원들 머릿속에 ‘탄핵’ 논쟁은 희미해졌다. 대신 ‘공정’이라는 새로운 어젠다가 전면에 올라왔다. 덕분에 과거의 이념적 극단성은 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공정성 논란에 분노한 당원과 국민들 사이에 ‘탄핵’과 ‘박근혜’ 이슈가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념적·정치적 갈등이 잠시나마 봉합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준석 현상’을 설명하긴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당대표는 ‘바깥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상대 당 후보와 경쟁해 승패를 다퉈야 하는 선거의 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당의 체질 변화’라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꼽힌다. ‘꼰대’ ‘기득권’ 정당 이미지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위원이 이 이미지들과 실제로 거리가 먼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는 이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이 전 위원이 지하철과 번화가 등에서 거리 인사를 하면 다른 정치인에게선 쉽게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진다. 젊은 여성들이 먼저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다. 지난 6월 2일 부산 서면역 개찰구 앞에서는 인사를 하던 이 전 위원과 사진을 찍겠다는 시민들이 몰려 따로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이 중 2030 남성의 비중 못지않게 젊은 여성들의 관심도가 높았다. 이 자리에서 만난 29살 여성 한모씨는 “솔직히 정치에 별 관심은 없다.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뭔지 잘 모르지만 똑똑하고 말 잘하는 이준석이 호감이라 응원하고 있다”며 “이준석이 선거에 나오면 뽑아줄 것”이라고 했다. ‘정치는 잘 몰라도 호감’이라는 이 여성의 말은 불과 얼마 전까지 (어쩌면 지금도) ‘아무튼 비호감’이었던 국민의힘 이미지와 대비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원내 경험이 없는 30대의 젊은 정치인이자 ‘똑똑하긴 한데 버릇없다’는 말로 대표되는 그의 캐릭터가 과연 대선을 1년 앞둔 보수정당의 대표로서 적합한지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가 많다. 2030세대의 분노가 정권교체의 원동력이 되는 상황에서 ‘이준석’ 캐릭터의 밝은 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실제로 이준석 후보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그에 대한 평가에 박한 편이다. 태도 논란 외에도 여론과 이슈를 잘 이용하는 그의 캐릭터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6월 2일 부산 서면역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또 다른 분열의 씨앗 ‘능력주의’
일각에서는 이준석 후보를 정치권 입문 초기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모습과 비교하기도 한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인사는 “내가 무조건 옳고 상대방을 논리로 굴복시키려는 모습이 유 이사장과 닮았다는 평가가 많다”며 “분열로 얼룩진 지금 이 시대에 그가 당대표가 되면 20~30세대와 세대 갈등을 빚는 모양새인 40~50세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비호감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는 결국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다독일 것이냐의 문제인데 이 후보가 과연 그런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들은 그가 공약 1호로 내세운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을 둘러싸고 이미 수면 위로 나오고 있다.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이란 국민의힘 공직자가 되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논리력·분석력 등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을 치르겠다는 공약이다. 국민의힘의 한 청년당직자는 “이준석의 표현대로 ‘여의도 언저리에서 막걸리 많이 마시며 어슬렁거리다 자리 하나 얻는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면서 공직자 자격시험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준석은 ‘청년’이라고 특별히 우대하지 않고 대신 능력만 있다면 중용되는 당 시스템을 만들겠다는데 주변의 상당수 젊은 당직자들은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이 공약에 대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너무 그것(실력과 성적)만 강조하면 경쟁 구조가 불합리하거나 경쟁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과거 민정당 시절부터 활동해온 지구당원, 기간당원들 사이에 ‘진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면 우리는 다 쓸려나갈 것’이라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며 “이들이 뭉치기 시작하면 이 전 위원이 힘든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시절 전국상임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당에 인생을 바쳐 헌신한 사람들을 가볍게 여기고 쉽게 내치면 누가 당을 위해 일하겠나”라며 “이 전 위원이 구상하는 당 운영 방식이 당장은 특별해 보일 수 있어도, 여기저기서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의 지적처럼 그가 당대표가 되면 당내에서도 또 다른 분열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이 전 위원은 지난 6월 3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저를 영입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라면서도 “탄핵은 정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탄핵에 대한 제 복잡한 입장이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탄핵에 대해 다른 생각을 서로 인정하며 통합해가자는 취지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힘 내에 존재하는 친박 민심이 이 전 위원과 얼마나 오래 ‘공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준석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은 ‘이준석의 실패’가 곧 ‘청년정치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힘의 한 30대 당협위원장은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사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라면서도 “다만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이준석이 당대표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청년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전 위원이 당대표가 된 이후 사사건건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받는 상황 속에서 그가 기대감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는 지적이다. 이 당협위원장은 “물론 이준석이 성공한다고 해서 무조건 청년정치가 살아난다고 볼 수도 없다. 다만 기존의 기득권·꼰대 정당 이미지를 벗을 수 있다는 데에서 기대감이 쏠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위원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중진 당대표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중진정치 자체가 부정당하지 않는 것처럼, 젊은 사람들이 지레 겁먹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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