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딤후 2:21 -
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가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순교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이 서신을 쓴 목적은 교회가 점진적으로 퇴보하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진리에서 떠나가던 때에 디모데를 하나님께 인정받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구비시키고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양식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백성이 항상 영적 권능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인도하도록 성령을 통하여 지역교회의 신자들 가운데서 헌신된 섬김으로 구비시킨 자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이러한 지역교회에게 주신 양식(樣式)을 따라 부르심을 받지 않은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같이 ‘자기 스스로 부르심을 인정한 자’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과 성경으로부터 온 권위가 아닌 자기에게서 온 권위로 양들을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보다 인격
어릴 적에 읽었던 N. 호오도온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글이 주는 교훈은 추억과 함께 변함없는 고전(古典)의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을 엿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서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는 자”라는 자격 기준을 제시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나누는 것은 마치 건물을 지을 때 자재들을 설계도면 대로 정확한 곳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등잔불을 끄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일정한 간격을 떡을 자른 한 석봉 어머니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는 자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증거의 무게를 그대로 지닌 말씀의 사역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은 기독교계에 편만하게 알려진 것 같이, 결코 인도자는 설교를 뛰어나게 잘 하는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요구하는 인도자의 자격조건은 은사가 아닌 인격이기 때문입니다(딤전 3:1-7)(딛 1:5-9).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 아벨레에게 문안하라.”(롬 16:10)
로마서 16장 10절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 아벨레라는 그리스도인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용된 “인정을 받다”라는 원어의 의미로부터 추정할 때에 그는 시험을 받았고, 그 시험을 견디었으며, 그 과정을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보았고, 성도들에 의해 참된 주님의 종으로 입증된 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지역교회를 통해서 인정한 자였습니다.
지역교회의 인정을 받는 자
“또 내가 가면 너희가 너희의 편지들로 인정하는 자들이 누구든지 내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너그러운 선물을 가지고 가게 하리라.”(고전 16:3)
궁핍함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고린도교회가 너그러운 선물(연보)을 보낼 때에 바울 사도는 그 선물을 전달하는 자를 임의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린도교회의 인정을 받는 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가 택한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주께서 추천하시는 자
고린도후서 10장 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자기를 추천하는 자가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께서 추천하시는 자가 인정받기 때문이라.”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추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사역은 그분의 축복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께서 추천하시는 자는 자신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며,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고후 18:1).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자
우리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의 한 예로 열왕기상 22장에 나오는 미가야를 들 수 있습니다.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시리아 사람들을 치려 할 때에 여호사밧의 요구로, 그는 예언자 미가야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자문을 구합니다. 미가야는 충성스럽게 그리고 담대하게 아합에게 예언하였고, 그 결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감옥에서 나왔으며, 아합은 그의 예언대로 싸움터에서 죽습니다(왕상 22:8-38).
이 일과 관련하여 잭 헤이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이 주제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이 때는 아직 예언자 엘리야가 하늘로 들림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에는 유명한 엘리야 예언자 대신에 미가야를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용하고자 하시는 사람을,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다른 사람의 이목을 받는 엘리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게 가려져 있는 사람으로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가야처럼 여러분이 충성되고 헌신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십니다(딤후 2:21).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라
“너희는 스데바나의 집을 아노니.....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전념했으니 너희는 그런 사람들과 또 우리 일을 도우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종하라.....그러므로 너희는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라.”(고전 16:15,16,18)
미가야처럼 "주인의 쓰기에 합당한 자"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자기 스스로 부름을 받았다고 자신을 인정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는 지역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지역교회를 섬기며 수고하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동안 지역교회 가운데서 그분의 양떼들을 맡기에 합당한 인격과 말씀의 증거를 갖춘 자로 세우신 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도들을 통해서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주님께서 이 엄숙하고 귀중한 일에 은혜를 베푸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옮긴글>
[출처] 주께서 쓰기 합당한 자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