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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아주 오래된 농담
아주 오래된 농담으로 건네는 이야기 하나는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아주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은 잘 훈련된 말(馬)이었는데 '“알렐루야”하면 달리고, “아멘”하면 서는 말이었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선물한 사람은 “이 말은 ‘이랴’ 하면 달리지 않는다고 ‘워’하면 서지 않고, ‘아멘’ 해야지만 선다.”고 열 번도 더 반복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건성으로 듣고 금방 모든 것을 잊어버렸는데 말이 무척 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에 올라타자마자 신이 나서 “알렐루야”를 연신 외치자 말(馬)은 그 말을 듣고 말굽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는 어쩌다 보니 절벽이 코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급해서 “워~워”를 외쳐댔지만 말은 멈추지 않게 되자 다급해서 무작정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아멘.” ‘아멘’ 소리를 들은 말은 절벽 바로 앞에서 섰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더욱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알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어느새 말은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사람은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 뿌리를 겨우 붙잡고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밧줄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힘을 다해 끌어올리는 밧줄에 매달려 끌려 올라가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줄을 놓아버리면 저들은 뒤로 넘어질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그래서 그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밧줄을 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끌어올리느라고 힘을 주던 동네 사람들은 그가 예상한 대로 뒤로 모두 넘어졌고, 그는 아주 깊은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빼앗겨 귀중한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기분과 마음 상해서 부부 싸움을 하고, 그래서 감정이 상해져서 더 큰 싸움으로 치닫고, 급기야 이혼까지 하기도 합니다. 신혼부부가 여행을 가서 식사를 양식으로 할 것인지, 한식으로 할 것인지를 가지고 싸우다가 그날로 이혼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가지고 마음이 상해서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매일 사표를 쓰고, 사목회에서 싸움하고, 감정이 상해진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바로 귀중한 자신의 생명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홀하게 생각하고, 사소한 시비를 하여 트집을 잡는 바리사이들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 분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을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들면 자신들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만천하에 낱낱이 밝혀질 뿐만 아니라 율법의 해석과 판단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고 잘못한다고 만천하에 알리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트집을 잡을 것이 그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율법에 올가미를 씌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입니다. 도둑이 집주인과 경찰에게 대어들어 매를 때리려고 드는 형국을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나무라지만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농담에서 말한 바보처럼 우리도 매순간 아주 귀중한 자신의 생명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겨 몰두하고, 참된 진리의 길을 외면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도박에 빠지고, 일시적인 재미에 빠져서 영원한 생명을 일시적인 생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좋은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항상 그 일에 생명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 손은 전에 묵상한 적이 있는 바와 같이 존우사상(尊右思想)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의 편이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오른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며, 하느님의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하느님의 일을 하여라.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그 일을 열심히 하여야 한단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일에 더 마음을 쓰고, 더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희에게 말한다. 손을 뻗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여서 이 세상에서 나의 삶을 증언하고, 너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살았던 삶을 살아야 한단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들아!”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5,1-8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축일9월 5일 성녀 데레사(마더) (Teresa(Mother))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 지역 : 콜카타(Kolkata)
활동 연도 : 1910-1997년
같은 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성녀 마더 테레사(Mother Teresia, 또는 데레사)는 1910년 8월 26일 터키가 점령 중이던 알바니아(Albania)의 스코페(Skopje)에서 알바니아계인 아버지 니콜라 보약스히야(Nikola Bojaxhiu)와 어머니 드라네 보약스히야(Drane Bojaxhiu)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다음날 곤히아 아녜스(Gouxha Agnes)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녀가 태어난 지 2년 뒤인 1912년 알바니아는 터키로부터 독립했지만 스코페는 여전히 알바니아의 영토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스코페는 세르비아를 모태로 탄생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이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신심 깊은 어머니로부터 철저히 신앙교육을 받은 그녀는 9살 때 건축업자였던 아버지를 갑자기 여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소녀 시절부터 성인전과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18세 되던 1928년 어느 날 그녀는 기도 중에 평소 선교에 대해 갖고 있던 관심이 자신을 수도성소에로 부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수회원인 본당신부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그 해 11월 29일 인도의 콜카타에서 전교 중인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의 로레토 수녀회(Sisters of Loreto)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더블린에서 집중적으로 영어를 공부한 후 1929년 인도(India)에 도착하여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있는 다르질링(Darjiling)에서 수련기를 시작했다. 1931년 5월 24일 첫 서원을 하면서 후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된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택했다. 그 후 7년간 테레사 수녀는 로레토 수녀회가 운영하는 콜카타(옛 지명은 캘커타, Calcutta)의 성모여자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다. 1937년 5월 24일 그녀는 종신서원을 했고, 1944년에는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46년 9월 10일 연례 피정 참석차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테레사 수녀는 그녀 스스로 후에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 묘사한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녀는 수도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속에 살며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소명을 들은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교황청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 1948년 수도회 밖에서 수도자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서구식 수녀복장이 아닌 인도 여성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사리를 수도복으로 택한 그녀는 우선 성가정 병원에서 속성으로 기초 간호학을 이수한 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49년 3월 19일 성모여자고등학교 출신 제자인 슈바시니 다스가 찾아와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수도회에 받아주길 간청해 첫 지원자로서 마더 테레사와 합류했다. 그리고 1950년 10월 7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 그들 안에서 살고자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가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처음부터 함께한 12명의 회원들이 수련기를 시작했다. 1952년 8월 22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종자의 집을 열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정원까지 아픈 이들로 꽉 들어찼다.
1953년 사랑의 선교회 본원이 설립되었고, 이어서 빈민굴의 고아들을 위한 집과 콜카타 외곽에 나환자들을 위한 자립 센터도 열었다.
1965년 2월 1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사랑의 선교회가 세계교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었다. 교구 설립 수도회로서 지역 주교의 관할 안에서만 활동하던 사랑의 선교회가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선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이미 사랑의 선교회에는 3백여 명의 수녀들이 여러 개의 시설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Venezuela)에 해외 첫 분원을 연 이후 아프리카, 호주, 유럽 등 여러 대륙에 진출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마더 테레사의 적극적 후원자가 되어 그녀가 선교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바티칸 시민권을 수여했다. 이렇게 해서 1971년에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50여 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1969년 3월 26일 ‘사랑의 선교회 협조자회’가 교황청으로부터 회칙을 인가 받아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협조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사랑의 선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마더 테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활동이 세계 곳곳에 알려지면서 그녀는 여러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1979년 12월 10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마더 테레사는 그 상을 자신이 온 삶을 바쳐 섬기고 사랑한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받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후 사랑의 선교회는 더욱 놀라운 속도로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1970년 이후 마더 테레사는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치료 센터를 여러 곳에 열었다. 또한 나환자 병원과 나환자들을 위한 재활 및 사회 복귀 시설을 운영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보호 시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그리고 결핵 환자들과 영양실조 걸린 이들을 위한 치료소 및 요양소들도 설치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활동도 시작했다.
1990년 4월 16일 마더 테레사는 건강을 이유로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나 같은 해 9월 총장직에 다시 선출되었다. 1997년 9월 5일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이며 세계 모든 이들의 영적 어머니인 마더 테레사는 87세를 일기로 콜카타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선종 소식에 종교와 이념,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 전 세계가 한결같이 ‘인류의 참 어머니’를 잃었다며 애도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살아서부터 ‘성녀’로 추앙받았던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을 선종 6년 만에 거행했다. 교황은 30여만 명의 순례자들이 모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오늘 하느님은 우리에게 마더 테레사를 새로운 거룩함의 모범으로 제시해 주셨다”며 그녀의 시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4일 같은 장소에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그녀를 성인의 품에 올렸다. 교황은 시성식 강론에서 온 생애를 통해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풍성히 나누어준 성녀를 기억하며, 성녀를 통해 이해와 자비를 바라는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길 빌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더 데레사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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