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사람처럼 너는
날 꼭 안아준 적이 있지
눈은 끝나버린 세상처럼 하얗고 쏟아지고
주인공이 모두 잠든 영화에서는 엔딩 크래디트가 흐르고 있다 출연했던 배우의 이름들이
하나둘 스크린 바깥으로 떨어지는 장면
세상이 밑 부분부터 하얘진다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하얗게 변해서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면 흰색일 것이란 생각을 해보고
눈 내리는 장면이 많았던 영화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지구가 하얗게 식어갈 거래 너무 추워서 아무나 껴안고 있어도 결국엔 열어붙을 거래, 라는 대사를 들었을 땐
마지막으로 껴안은 사람과는 영원히 붙어있을 수 있단 뜻으로
이해해보고
바깥에선 아이들이 장갑을 벗은 채
손으로 눈을 만지고 있었다
사람처럼 만들어
목도리를 씌어주고
꼭 안아주는 장면은
차갑고 하얗고
아름다워서,
거짓말을 들은 기분이었는데
세상엔 거짓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믿고 싶어지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라디오에선 일기예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눈이 멎을 거라고
소리 없이 쏟아지는 눈을 대변하듯
끝나버릴 것 같던 일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는 말을
누구에게 말하는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