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달이 되니 모든 사람들이 다 바쁘다. 바쁜 사람들을 보노라면 나도 역시 바쁜 것 같아 마음이 부산하고 정처가 없다. 마음이 한가해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노닐 수 있고, 밀린 책도 읽을 수 있으련만 나도 바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바쁘니 그 또한 집중이 안 된다. 하여간 이런 저런 일들이 밀린 듯하지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자. 항상 길 떠날 여정을 준비하다가 보니 그나마 내가 ‘한가한 사람이로구나‘ 깨닫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괜찮은가? “사람이 한가하면 악마가 일거리를 찾아준다.”는 속담이 있다는데, 매번 답사에서 나는 어떤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설산과 구름, 깎아지른 벼랑에 위태롭게 만들어진 호도협길과 같은 풍경이 내년 일월에 떠나는 남미기행에, 내내 마음을 높고도 깊게 사로잡았으면 좋으련만, 그런 곳에서 세상의 일, 모두 잊고 한 달이 아니라 한 일 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양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은 화양華陽에 숨어 살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고조古祖가 보러 갔다가 “산 중에 무엇이 있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도홍경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산중에 무엇이 있냐고요. 고개 위에 흰 구름 많지요. 단지 혼자만 즐길 수 있고 임금님께 가져다 줄 순 없지요.“
훗날 무제가 여러 번 초빙하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임금이라고 별 건가 궁궐 밖을 못 나가는 처지라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름도 벗하고 자연도 벗하는 나그네가 제일이지.
“붉은 낙화, 이끼 반점은 비단 요에 비길만하고, 향기로운 풀, 아리따운 꽃은 맵시 있는 여인에 비길만하다. 거스리지 말아야 할 것은 산 사슴과 시내 비둘기이고, 음악은 물소리와 새 울음이다. 모피는 비단이고, 산과 구름은 주인과 손님이다. 뿌리를 섞은 야채는 훌륭한 진미보다 못할 것이 없고, 잎이 엉킨 사립문은 잘 지은 큰 집만 못하지 않다. 초승달이 산으로 들어가고 나면, 모든 생각이 가지가지로 마음속에 얽히게 되는데, 매번 한 가지 생각이 날 적마다 이러한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면 10여일이 못되어 모두 없어진다. <지비록>에 실린 글이다.
아무리 잘 지어진 좋은 집이라도 마음 편하게 누워 있는 책속에 파묻힌 내 방만 못하고, 아무리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라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뜨거운 물을 말아서 김치 한 가지 놓고 먹는 음식만 못하고 아무리 비싼 비단옷이라도 아무데나 앉아도 괜찮은 옷가지만 못한 것을, 그래,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들뜬 마음,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자. 그리고 흐르는 구름과 흐르는 강물을 벗 삼아 떠돌다가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인가, 한 가지는 보이지 않을까? 그런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