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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8일 (정유) | ||||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 양성지(梁誠之)가 상소(上疏)하기를, “신(臣)이 엎드려 보니, 주상 전하께서는 상성(上聖)의 자질로서 대위(大位)에 영광스럽게 오르시어 고금(古今) 치란(治亂)의 자취와 민속(民俗)의 간난(艱難)한 일을 통찰(洞察)하지 않음이 없으시고 소간(宵旰)으로 부지런히 도치(圖治)하셔서 우리 조선 억만 년 태평 성업의 기틀을 닦으시니, 진실로 삼한(三韓)에서 한 번 번성할 때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조정의 득실(得失)과 민간의 이병(利病)을, 대신(大臣)은 꾀하고 대간(臺諫)은 이를 논의하며, 기타의 시종(侍從)하는 직사(職事)들도 논사(論思)함에 있는데, 신은 용렬한 자질로써 경악(經幄)을 시종함을 얻어서도 조금의 성효(成効)도 없어 성덕(聖德)에 보답함이 없음을 부끄러워합니다. 무릇 국가의 크고 작은 일은 미충(微衷)이라도 상량하여 확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만(萬)의 일(一)이라도 비익(裨益)됨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고 감히 편의(便宜) 24사(事)를 가지고 조목을 기록하여 바치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감(聖鑑)하여 주시면 다행하겠습니다. 1. 춘추(春秋)의 대사(大射)입니다. 대개 금인(金人)은 요(遼)나라의 풍속을 이어 받아 3월 3일과 9월 9일에 하늘에 절하고 버드나무를 쏩니다. 이것은 비록 중원(中原)의 제도는 아니더라도 또한 번국(藩國)의 성사(盛事)입니다. 우리 동방(東方)은 해동(海東)에 웅거(雄據)하여 삼국(三國)으로부터 전조(前朝)에 이르기까지 교천(郊天)과 향제(饗帝)를 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진실로 그 옛 것을 다 따르지 못하더라도 요(遼)·금(金)의 고사(故事)를 조금 모방하여 3월 3일과 9월 9일은 친히 교외(郊外)에 거둥하시어 대사례(大射禮)를 행하고, 해마다 상례로 삼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거의 우리의 무위(武威)를 크게 떨치고 사기(士氣)도 또한 증가하여 스스로 일국 일대(一國一代)의 풍속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1. 오경(五京)을 증치(增置)하는 것입니다. 대개 요(遼)·금(金)·발해(渤海)도 아울러 오경(五京)을 세웠고, 전조(前朝)도 사경(四京)을 세웠는데, 본조(本朝)에서는 단지 한성(漢城)·개성(開城)의 양경(兩京)만을 설치했을 뿐이니, 대동 산해(大東山海)의 험함과 주·부(州府)의 성함을 가지고서 단지 양경만을 두었으니 어찌 흠결(欠缺)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원나라 세조(世祖)는 우리에게 의법은 본속(本俗)을 따를 것을 허락하였고, 고황제(高皇帝)도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성교(聲敎)를 하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동교(東郊)의 땅은 진실로 복리(腹裏)에 비할 것이 아닌 때문입니다. 빌건대 경도(京都)인 한성부(漢城府)를 상경(上京)으로 삼고, 개성부(開城府)를 중경(中京)으로 삼고, 경주(慶州)를 동경(東京)으로 삼고, 전주(全州)를 남경(南京)으로 삼고, 평양(平壤)을 서경(西京)으로 삼고, 함흥(咸興)을 북경(北京)으로 삼아, 각각 토관(土官)을 설치하고 군병(軍兵)을 가정(加定)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거의 형세의 승(勝)함을 얻어 위급(危急)할 때에도 또한 족히 의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악진해독(嶽鎭海瀆)입니다. 대개 일대(一代)의 흥(興)함에는 반드시 일대(一代)의 제도가 있었으며, 본조(本朝)의 악진해독(嶽鎭海瀆), 명산 대천(名山大川)의 제사는 모두 삼국과 전조의 구제를 의방해서 한 것이므로 의논할 만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용흥강(龍興江)은 우리 태조(太祖)께서 흥운(興運)하신 땅이고, 묘향산(妙香山)에 이르러서는 단군(檀君)이 일어난 곳이며, 구월산(九月山)에는 단군사(檀君祠)가 있고, 태백산(太白山)은 신사(神祠)가 있는 곳이며, 금강산(金剛山)은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고, 장백산(長白山)은 선춘령(先春嶺)의 남쪽 갑산(甲山)의 북쪽에 있어 실로 나라의 북악(北岳)이 됩니다. 임진(臨津)은 나라의 서쪽 관문이고, 용진(龍津)은 나라의 동쪽 관문이며, 낙동강(洛東江)은 경상도의 대천(大川)이고, 섬진(蟾津)은 전라도의 대천입니다. 박천강(博川江)은 곧 옛 대령강(大寧江)이며, 보리진(菩提津)·오대산(五臺山)에 이르러서는 모두 사전(祀典)에 있지 아니 합니다. 또 동해·남해·서해의 신사(神祠)는 모두 개성(開城)을 기준하여 정하였기 때문에 또한 방위(方位)가 어긋납니다. 빌건대 예관(禮官)에게 명하여 고정(考定)을 상세히 더하게 하고, 삼각산(三角山)을 중악(中岳)으로 삼고, 금강산을 동악(東岳)으로 삼고, 구월산(九月山)을 서악(西岳)으로 삼고, 지리산(智異山)을 남악(南岳)으로 삼고, 장백산(長白山)을 북악(北岳)으로 삼고, 백악산(白岳山)을 중진(中鎭)으로 삼고, 태백산(太白山)을 동진(東鎭)으로 삼고, 송악산(松嶽山)을 서진(西鎭)으로 삼고, 금성산(錦城山)을 남진(南鎭)으로 삼고, 묘향산(妙香山)을 북진(北鎭)으로 삼을 것입니다. 또 동해신(東海神)을 강릉(江陵)에, 서해(西海)는 인천(仁川)에, 남해(南海)는 순천(順天)에, 북해(北海)는 갑산(甲山)에 이제(移祭)하고, 용진(龍津)을 동독(東瀆)으로 삼고, 대동강(大同江)을 서독(西瀆)으로 삼을 것입니다. 한강(漢江)을 남독(南瀆)으로 삼고 두만강(豆滿江)을 북독(北瀆)으로 삼고, 또 목멱산(木覓山)·감악산(紺岳山)·오관산(五冠山)·계룡산(鷄龍山)·치악산(雉岳山)·오대산(五臺山)·의관령(義館嶺)·죽령산(竹嶺山)을 명산(名山)으로 삼고, 웅진(熊津)·임진(臨津)·보리진(菩提津)·용흥강(龍興江)·청천강(淸川江)·박천강(博川江)·낙동강(洛東江)·섬진(蟾津)으로 대천(大川)을 삼아 예(例)에 따라 치제(致祭)하여【양진(楊津) 두 곳, 덕진(德津) 두 곳, 가야진(伽耶津)·주흘산(主屹山)·우불산(亐佛山)·우이산(牛耳山)·비백산(鼻白山)·장산곶이[長山串]·아사진(阿斯津)·송곶이[松串]·비류산(沸流山)·구진 익수(九津溺水)는 개혁함이 옳습니다.】 일대의 사전(祀典)을 새롭게 하소서. 이렇게 하면 사전(祀典)에 실린 산천은 고금으로 모두 34인데, 옛 것을 따른 것이 17, 이제(移祭)한 것이 4, 새로 오른 것이 13, 영구히 고칠 만한 것도 또한 13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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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5악(京畿五岳) 2. 감악산(紺岳山) - 675m
3. 운악산(雲岳山) - 935.5m 4. 화악산(華岳山) - 1,468.3m 5. 관악산(冠岳山) - 629.1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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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고(地理考) 13 | |||||||||||||||
산수(山水) 1 경내(境內)의 산(山)과 도서(島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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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엔 숭산(嵩山)...즉,숭악(嵩岳)에 대한 고전번역원 해석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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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이학사 계(上李學士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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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번역분의 원문을 보시겠습니다...
틀림없이 원문엔... < 中國 의>.....이란 글이 전혀 없습니다.
번역가들이 아주 당연히 지맘대로 ...<중국의>.....란 구절을 지 맘대로 삽입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역사는 본의아니게 현재도 왜곡돼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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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번역무의 원문>
亦將必去於東山。繄湍水之前頭。接積城之西畔。碧峯邐迤兮多衡山嵩岳之壯觀。蒼波縹緲兮有洞庭彭蠡之奇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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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은 백호선생이...
남도에 머무를 시절...사형에게 쓴 편지은데...
내용을 보면...한중징이 백호선생에게 소실(小室)을 맞겼다합니다...첩을 말하는게 아니라...그 지역관리직을 말한거로...
백호선생은...왜 형의 일을 나에게 마루냐고 사양하는 구절입니다.
문제는 소실(小室)은...현 숭산(嵩山)의 큰 2개 산중 서쪽을 두른 하나의 명칭이란 겁니다.
그리고 서호(西湖)로 한번 와 주길 당부합니다.
동정호인 호남지방을 이릅니다....한반도 충주호같은 저수지 수준으로는...큰 지영을 대표할 명칭이 아닙니다.
아주 큰 동정호같은 호수라야 큰 지방명의 기준이 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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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
한중징에게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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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5악(五岳)에 산신제를 지낸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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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4일 (을미) | ||||
예조에서 아뢰기를,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리어 오악(五岳)·해독(海瀆)·명산(名山)·대천(大川)에 비를 빌고, 또 각도로 하여금 사전(祀典)에 실리지 않은 산천(山川)·성황(城隍)의 여러 신사(神祀)에 모두 기도를 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3 집 630 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오악(五岳)중에 중악숭산 (中岳嵩山).
숭산소림사(嵩山少林寺)
숭산소림사(嵩山少林寺) 탑림(塔林)
탑림(塔林)
중국 5대 명산 오악(五岳)중에 중악(中岳) (登封)에 소재 한다. 숭산(嵩山)은 중국의 5대 명산(名山)인 오악(五岳) 중에 중악(中岳)으로 태실산(太室山)과 소실산(少室山)등 모두 7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발 1,440m, 동서 길이는 60Km에 달한다. 숭산(嵩山)의 최고봉(最高峰)은 어채산(御寨山)으로 해발 1,512m이다.
숭산(嵩山)에는 세개의 높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동쪽에 위치한 큰 봉우리를 태실봉(太室峰), 중간에는 준극봉 (峻極峰),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소실봉(少室峰)이라고 하며, 소실산(少室山) 자락에는 선종(禪宗)의 불교 사원 무술의 본가 소림사(少林寺)가 자리잡고 있다.
오악(五岳)중에 중악숭산(中岳嵩山) 다섯 방향, 5개 명산(名山)에 각 방위를 붙여 부르는 것이라 한다. 동쪽의 산동성(山東省)에 위치한 태산 (泰山)을 동악(東岳), 서쪽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화산(華山)을 서악(西岳), 남쪽의 호남성(湖南省)에 자리한 형산(衡산)을 남악(南岳), 북쪽의 산서성(山西省)에 소재한 항산(恒山)을 북악(北岳), 명산들 중앙(中央)에 위치한 숭산(嵩山)을 중악(中岳) 이라 한다. 오악(五岳)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오행사상 (五行 思想)에서 영향을 받아 온 것이라 하는데, 현재의 중국(中國)에 오악(五岳)은 6세기 말에 기존의 것에서 일부 바꾸어 정한 것이라 한다.
숭산(嵩山)은 선종(禪宗)의 시조인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인도에서 동쪽의 당(唐)나라로 건너와 9년간 면벽 좌선한 장소로도 알려져있다.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전파하여 탄생한 선불교(禪佛敎)는 기존의 불교 틀을 완전히 바꿨다 한다.
[불입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 진리(眞理)는 경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선불교(禪佛敎)의 세계관은 이후 동북(東北) 아시아 불교의 가장 큰세력으로 성장하여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숭산은 당대(唐代) 688년에 신악(神岳)으로도 지정 되었다 한다.
숭산잔도(嵩山棧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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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피치못할 사정으로...글을 쓰다말고... 이제 대충 완성했는데...아직 교정도 못 봤습니다.
너그러운 용서 바라겠습니다.
아마도.. 대륙에서 8600 여 년 한 반도에서 600 여 년이 동이 한 민족의 진면목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참으로 놀랍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정체성 위기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님 설을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싶어나 예태 껏 주입받은 교육과 넘 괴리되니 정체성 위기가 옵니다..^^
그러나 흥미롭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이성계가 궁을 한양으로 옮길때 개성에 궁은 그대로 있어고 파괴된 족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에 개성에는 궁의 형체도 찾아보기도 힘들고 궁궐에 터 만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이상 한것이 이조에서 소실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웅장한 궁이 사라지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허구 반도설로 기준 잡아 역사를 보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음이 생기는 증좌다 대륙이 우리에 역사 주 무대로 대륙을 중심으로 기준잡아 역사서를 봐야 한다 ,,,,
다들 대조선을 인정을 못하고 있다 왜놈이 조작한 이씨조선을 굳건하게 믿고 있는 이유는 반도땅에 살고 있어서 그런거시다 대륙 대조선이 반도 이씨조선으로 축소된 사유를 밝혀도 안 믿는 것은 뭘까
->>왜정 시대에 넘 세뇌되어서 일까 그것은 해방후 이병도의 농간으로 역사서를 보급 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에서 만들어준 허구 반도사관 역사서를 싸그리 버리고 새로이 다시 역사서 쓰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 이지만 이병도의 농간으로 검증도 못하고 수정없이 그대로 답슴은 기가막히는 일이다 다들 허구 반도설의 앞쪽 부분인 상고사의 조작은 인정하지만 뒤쪽부분인 대조선사가 이씨조선으로 몸통이 바뀐것은 왜 인저을 못하는지 왜놈들이 상고사만 역사조작하고 뒤부분인 조선사는 양심상 그대로 기록 할까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지금도 뒤부분인 대조선을 못 믿고 있으니 답답이다 다 똑같이 앞부분부터 끝까지 다 조작
->>하는 것이 정상이고 상식이지 조작하다가 중간에 멈추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러니 대조선이 대륙에서 반도로 작아진 비밀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허구 반도설을 버리고 새로이 우리에 일만년의 역사가 복원 되기를 기원 합니다 ,,,,
솔직히 한반도와안맞는게많습니다 풍토도그렇고요 지금한반도기후와 안맞는것 기록이많습니다
실록을 한번이라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현재의 한반도가 조선이었다라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하겟지요.......
고구려 시대에는 국경이 확실 하지 않은면이 많지요! 그러나 조선시대는 .....!
좋은글 잘 봤습니다. 무협지에서만 보던 숭산 소실봉 태실봉이....고려 개성의 북산이라니....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