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어
말씀이신 성자께서 하신 거룩한 약속이
복음 전파로 온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주님의 모든 자녀가 진리를 따라 살게 하소서.
제1독서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복음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령의 사람이 누구에게도 기쁨을 빼앗길 수 없는 이유
코리 텐 붐은 1892년 4월 15일 네덜란드 하를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가정의 네 자녀 중 막내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캐스퍼 텐 붐은 존경받는 시계공이었습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했을 때 텐 붐 가족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종교가 깊고 이웃 사랑의 원칙을 믿는 텐 붐 부부는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집에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코리의 침실에 숨겨진 방을 지었고, 그곳은 그들이 수년 동안 보호했던 많은 유대인을 위한 은신처 역할을 했습니다.
1944년 2월, 텐 붐 일가는 네덜란드 정보원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나치는 그들의 집을 급습하고 온 가족을 체포했습니다. 코리와 그녀의 언니는 결국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강제 수용소의 상황은 가혹했고 언니는 1944년 12월에 사망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코리 텐 붐은 네덜란드로 돌아와 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을 위한 재활 센터를 세웠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녀는 자기 경험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나누기 위해 대중 연설자로 전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1947년 코리 텐 붐은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서 자신과 언니에게 잔인한 핍박과 학대를 했던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느님, 저 인간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코리 텐 붐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코리야 용서하거라. 용서하라는 것은 나의 명령이다. 내 명령에 순종하겠느냐, 하지 않겠느냐?”
코리 텐 붐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원수와 같았던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그녀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힘을 느끼며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고 그 간수는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러한 용서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가 시계공을 할 때 어떤 부자가 비싼 시계를 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왜 시계를 새로 사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자신이 아끼는 시계를 아무도 고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시계를 보고 자신이 고칠 수 있겠다고 말하고 정말 고쳐주었습니다. 당연히 그 사람은 시계를 새로 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코리는 “아빠, 시계를 팔았어야지. 우리에겐 돈이 필요하잖아!”라고 아빠를 야단쳤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주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인지 생각해 보아라.”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는 세상에 박해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성령인데 세상은 누구도 진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거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일으키는 감정에 휘둘립니다. 이미 뱀인 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나가 흔들리면 감정도 흔들립니다. 세상에 속하기 위해 뱀을 선택한 이는 결국 세상이 주는 걱정, 근심, 두려움에 살며 나중에는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합니다. 뱀을 선택한 즉시 관계의 단절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나를 버렸기에 세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에 영향을 주는 분이 되실 것이고 세상은 더는 ‘나’에게 영향을 주는 대상이 아니게 된다는 뜻입니다. 곧 영적인 사람, 내적인 사람이 육체적이고 외적인 것에는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성령으로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만큼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신 분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무릅쓰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지만 기뻐하셨지, 두려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엘리사벳에게 가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옥사나 말라야는 개에게 키워졌지만, 인간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만약 옥사나 말라야가 본인이 개가 아니라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면 개들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 이전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개가 나를 보고 짖는다고 화가 나서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간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흔들린다면 ‘나’가 그 누군가와 같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날아가는 새에게 쥐가 욕을 해도 새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그러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쁨은 세상의 휘둘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https://youtu.be/1eKWjMqUZWk
유튜브 묵상 동영상
영국의 한 연구팀이 70세 전후의 259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임상실험을 했습니다. 자기반성과 치매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였는데, 그 결과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확한 인과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반성의 시간을 하루에 10분 이상 갖게 되면 분명히 인지력과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른 연구 발표에서도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영양제보다도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 10분이라는 시간. 아주 긴 시간일까요?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뇌 건강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이 10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아까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건강이 최고라면서 건강을 챙기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이 하는 기도, 묵상은 꼭 필요한 영양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주님의 뜻을 헤아립니다. 영양제를 먹으면서 건강해지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이고 필요한 시간인데도 항상 뒤로 미뤄질 때가 많습니다. 세상일이 급해서, 피곤해서, 아직은 할 일이 많아서…. 등의 말로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을 맨 뒤로 미룹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모습입니다.
올해부터 저는 혈압약을 먹습니다. 종합검진을 받은 뒤, 이제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면서 아침 식사 후에 한 알씩 꼭 복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경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복용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은 혈압 조절이 안 될 수 있어서 규칙적인 복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신경 써서 규칙적인 복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묵상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뒤로 미루다가는 나중에 큰 후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난 전날 겪을 제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큰 사건을 기다리는 고통이라고 하시지요. 마치 진통의 고통을 겪은 뒤에 사랑하는 아기를 낳는 것처럼, 그 고통 뒤에 고통을 잊을 만큼의 커다란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기쁨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 주님을 만나고 지금 주님을 따르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라는 이유를 붙여서 후회의 시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커다란 기쁨의 시간을 위해 지금 당장 주님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장벽에 부딪히거든, 그것이 절실함을 나에게 물어보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랜디 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