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집과 도서관 반경에서 쳇바퀴 굴리듯 살다보니
같은 도시인데도 반대편 지역이 마치 다른 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과 잊지 않고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가 아닌 바에야 십중팔구 잊고 살기 일쑤다.
지난 주 병영체험을 갔을 때의 일이다.
사단에서 훈련을 마치고 그 근처 수련관 숙소까지 걸어서 이동을 했다. 걸어가다 보니 동사무소, 농협, 학교 건물 등에 모두 '매곡동'이라는 지역명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십여 년만에 매곡동 사는 친구를 떠올렸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간다더니...... 매곡동에 아는 사람이라곤 그 친구 밖에 없었으니 어련하랴.
고향 친구였다.
그 친구를 빼고서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고향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가 없다.
읍내 여자중학교 아래에 위치해있던 우리 집에 그녀의 고모네가 건넌방에 세들어 살았는데 고모는 나를 볼 때마다 나와 동갑내기인 자신의 조카 자랑을 했다. 하도 여러 번이라 귀가 닳을 지경에 이를 무렵, 마침내 나는 방학이 되어 고모집에 다니러온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6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한다는 고모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해 봄 그녀와 나는 나란히 읍내 여중에 진학했다. 집이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면소 궁벽에 살고 있던 까닭에 평소 그녀는 통학을 했지만, 시험 때만 되면 고모의 단칸방에서 숙식을 하며 시험 공부를 했다.
내가 졸음에 겨워 밖에 나올 때마다 건넌방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면 나는 졸음에 겨운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다시 들어가 공부를 했다. 시험 기간만큼은 등하교시에 얼굴을 마주쳐도 말 한 마디 섞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라이벌인 셈이었다. 나는 라이벌 친구가 있다는 것이 공부에 몰두하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고 있었다.
엄마는 상냥하고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는 그녀를 무척 예뻐했다. 그녀의 공부와 외모는 나의 시샘 덩어리였지만, 나는 질투를 하면서도 시험만 끝나면 그녀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그녀의 시골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다. 그녀의 엄마 또한 이쁘지도 않는 나를 많이 예뻐해 주었다. 그렇게 중학 시절을 보내고 나는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을 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그녀는 그대로 읍내 여고에 진급했다.
나는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우리의 사이에는 어느 사이 알 수 없는 장벽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만나도 이야기가 겉도는 느낌만 들뿐 예전 같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도시 생활은 대학으로 이어졌고, 친구는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시골 우체국 교환원으로 취직을 했다. 휘황한 갈등과 고민이 견고한 등껍데기처럼 내리누르는 젊음은 외롭기 짝이 없었다. 나는 단짝이었던 그녀를 잊지 못해 찾아가기도 했다. 그녀는 읍내에서도 한참을 버스로 들어가야 하는 시골 우체국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여름밤 개구리가 울어대는 시골 논둑길을 산책하며 나는 친구에게 대학 생활을 이야기했고, 친구는 내게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에 반한 많은 남자들 얘기를 했다. 적지 않은 수의 남자들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애교가 많은 그녀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녀가 산다는 동네에 오게 되니 불현듯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지금 만나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느낌까지 들면서 까닭 없이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방 속 오래된 메모를 뒤져 그녀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만 길게 이어질 뿐 전화를 받는 기색이 없었다. 집, 핸드폰, 집, 핸드폰, 집...... 번갈아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번호를 알고 있는 만큼, 그녀 또한 내 번호를 알고 있으리라 믿었다. 왜 받지 않는 걸까. 그 사이 전화번호가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마지막이다 싶은 마음으로 핸드폰에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친구 000입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학생들의 밤 행사가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행여 그녀에게 연락을 올까 싶어 마음은 내내 서성였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일 하느라고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있는 곳이 그녀의 집에서 시내버스 승강장 가는 거리만큼 가까운가 보았다. 다행이었다. 설거지를 마저 끝낸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왔다. 운동장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얼싸안았다. 이게 얼마만이냐......
우리는 안개비가 내리는 어둠 속 화단가에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녀는 워낙 불경기인지라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기는 하지만 별 일 없이 잘 산다고 했다. 이어 자녀와 건강과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니 몸이 이제 지쳤고 그래서 앞으로 더 오래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어두운 얼굴로 얘기를 듣고 있는 친구를 보니 내 목소리가 어쩐지 행복에 겨운 푸념처럼 들렸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친구가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한 교사 자리가 어딘데...... 그만 둘 생각 말고 할 수 있는 때까지 더 해라.
친구의 말 속에는 이 불황기에 월급쟁이가 얼마나 편한 줄 아느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들렸다.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는 친구의 얼굴을 비추며 지나쳐갔다.
학생들의 행사가 얼추 끝나가고 있던 까닭에 친구와 시간을 이어갈 수 없었다. 헤어지기 전, 나는 친구의 손을 잡으며 그동안 나의 무성의함에 자책하듯 주소를 물었다.
지난겨울에 내 책이 나왔어. 한 권 보내주려고.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심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몇 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를 봤어. 잘된 일이지. 그래, 잘 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어쩐지 쓸쓸하게 들렸다.
친구는 잡았던 내 손을 놓고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손을 흔들다 돌아서는 친구의 등을 보며 나는 어쩐지 친구가 주소를 보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는 전화마저 받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점점 작아지던 친구의 모습이 건물 모퉁이로 사라지는 순간, 머리 위에선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첫댓글 직녀님~ 친구의 정서를 나는 알 것 같아욤 ~~어쩔 수 없는 장벽이지요 ~~장벽
오랜 친구여서 말 안해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파요. 자주 시간을 내지는 못하지만 잊지 않고 있음을 꼭 전할게요.^^
도저히 control 이 안되는 여유로움의 차이겠지요.
내 인생이 나의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서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바로 이런 때인 것 같아요.^^
그 친구를 보둠어 주고 싶은 마음, 그 친구는 더 많이 울었을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엇갈리는지 모르겠어요. 나란하게 가다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궤도가 달라지면서 느끼는 거리감이 슬퍼요. 반대 입장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하기조차 어려웠겠지요. 모든 게 다 빚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되돌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요. 그것도 자주.
그친구의 입장에 가슴이 뭉클 찡함을 느끼네요..그럴수록 자주 마음을 열어 준다면 그때 그시절의 순수한 우정이 되지 않을까?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제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하는 노력들.... 잊지 않을게요. 그때 그 시절의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서요.^^
장벽은 없다고 봐요~자주 연락해봐요~
봉옥 언니 말씀대로~~~ㅎ 자주 연락해 볼게요. 화초나 나무도 이쁜 꽃이나 열매를 얻으려면 소중하게 가꾸는데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없겠죠. 내게 소중한 인연 스러지지 않도록 부단히 가꿔야겠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