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하고 어려운 길(行路難)
金樽淸酒斗十千(금준청주두십천)-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 값이 만량이요
玉盤珍羞値萬錢(옥반진수치만전)-옥쟁반 좋은 안주 일만 냥의 값이어라
停杯投箸不能食(정배투저부능식)-술잔을 멈추고 젓가락 내던져 먹지 못하고
拔劍四顧心茫然(발검사고심망연)-칼 뽑아 사방을 둘러보니 마음이 답답하다
欲渡黃河冰塞川(욕도황하빙새천)-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물길 막고
將登太行雪滿山(장등태항설만산)-태행산에 오르려니 눈이 산에 가득하다
閑來垂釣碧溪上(한내수조벽계상)-한가히 돌아와 푸른 개울에 낚싯대 드리우다
忽復乘舟夢日邊(홀복승주몽일변)-홀연히 다시 배에 올라 서울을 꿈꾼다
行路難行路難!(행로난,항노난)!-세상살이 어려워, 세상살이 어렵구나
多歧路今安在(다기노,금안재)?-갈림길 많은데, 난 지금 어디 있는가
長風破浪會有時(장풍파낭회유시)-장풍파랑의 큰 뜻, 때맞춰 나타나리
直挂雲帆濟滄海(직괘운범제창해)-그러면 바로 구름 같이 높은 돛 달고 창해를 건너리.
이백(李白)
대도무문(大道無門)은 어디에서 나온 말일까?
요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와 함께 망인(亡人)이 생전에 정치인으로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던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세인(世人)에 회자(膾炙)
되고 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
한자(漢字) 그대로 해석(解釋)하면
“큰길(大道)에는 문(門)이 없다”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道理)나 정도(正道)를 행할 때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구나 정정당당하게 대도(大道)의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必要)가 없다는 말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은 어디에서 비롯된 말일까?
중국 선불교(禪佛敎)에 고승(高僧)들의 화두(話頭)를 모아 엮은 불서(佛書)로
벽암록(碧巖錄), 종용록(從容錄)과 함께 중국 남송(南宋)의 임제종(臨濟宗) 승려인
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 선사(禪師)가 48개의 화두(話頭)를 모아 엮은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도 한다.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禪師)는 그가 쓴 무문관(無門關) 화두집(話頭集)에
아래와 같이 서문(序文)이 있다.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서문(序文)
【佛語心 爲宗 無門 爲法門 旣是無門 且作磨生透 豈不見道 從門入者 不是家珍
從緣得者 始終成壞 恁?說話 大似無風起浪 好肉 瘡 何況滯言句 覓解會
掉捧打月 隔靴爬痒 有甚交涉 慧開 紹定戊子夏 首衆于東嘉龍翔 因衲子請益
遂將古人公案 作鼓門瓦子 隨機引道學者 竟爾抄錄 不覺成集 初不以前後
列 共成四十八則 通曰無門關 若是箇漢 不顧危亡 單刀直入 八臂那 他不住
縱使西天四七 東土二三 只得望風乞命 設惑躊躇 也似隔窓看馬騎 得眼來 早己蹉過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무문(無門) 선사(禪師)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서문(序文) 설명
【부처님께서는 마음으로 종(宗)을 삼고 문(門) 없음으로 법문(法門)을 삼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문(門)이 없다면 어떻게 사무칠 것인가?
허나 부처님께서는 또한
“문(門)으로 든 자는 이 집에서는 귀(貴)한 것이 아니니, 반연(攀緣의지함)을 따라
얻은 자는 시작과 마침이 있고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있다.”라고
이르시지 않았던가.
이렇게 말한 것도 바람이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요,
성한 살을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과 같다.
하물며 말이나 글구(文句)를 헤아려 찾으려는 것은,
방망이를 휘둘러 달(月)을 때리려 하는 것과 같고, 옴병(瘡疥scabies)에 걸려
가려운 발가락을 구두를 신고 긁는 것과 같으니 무슨 교섭(交涉)이 있으랴.
무문혜개(無門慧開)는 소정(紹定) 무자년(戊子年) 여름에
동가(東嘉)의 용상사(龍翔寺)라는 절 수좌(首座) 자리에 앉아
옛 선지식(善知識)들의 공안(公案-화두)을 두드리는 와자(瓦子-演藝場)가 되어
법(法)을 물어 오는 납자(衲子승려)들을 인도하였다.
이것들을 간추려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집성(集成)이 되었다.
처음부터 앞뒤 순서를 두지 않고 엮어 48칙이 되니 이를 “무문관(無門關)”
이라고 부른다.
공부를 하기로 작정을 한 자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단도직입(單刀直入)하면,
팔이 8개 붙은 나타(那咤 불교 호법신)의 힘으로도 막아 낼 재간이 없을 것이고,
서천(西天)의 47조사와 동토(東土)의 23조사들까지도 목숨을 빌게 될 것이나
주저하기만 하다가는 창(窓)을 통하여 말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아
눈 깜빡할 사이에 어긋나 버릴 것이다.
대도(大道)는 문(門)이 없다 천차만별로 길이 있으나
이 관(關)을 꿰뚫어 얻으면 하늘땅에 홀로 걸으리라】
여기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의 말이 나왔다.
이 부분을 별도로 알기 쉽게 정리하여 보면
大道無門(대도무문)-큰길(大道)에는 문(門)이 없다
千差有路(천차유로)-여러 가지 사물(천차만별)이 길이 있으나
透得此關(투득차관)-이 관문(關門)을 꿰뚫어 얻으면
乾坤獨步(건곤독보)-하늘땅에 홀로 걸으리라
선불교(禪佛敎)의 유명한 화두집(話頭集) “벽암록(碧巖錄)”을 앞에서
말하였다. 벽암록은 100개(則)의 화두(話頭)를 모은 책이다.
이 화두 집에 중국 당(唐)나라 때의 임제종(臨濟宗) 승려인 조주선사(趙州禪師)가
나오는데 화두(話頭)의 주인공으로 무려 11번이나 나온다.
과히 “벽암록(碧巖錄)의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유명한 고승(高僧)이다.
이 조주선사(趙州禪師)에 대한 화두(話頭)나 일화가 매우 많다.
예컨대
개(犬)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구자불성(狗子佛性)”이나
지극한 도(道)는 어렵지 않다는
至道無難(지도무난)-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唯嫌揀擇(유혐간택)-오직 가리고 선택함을 꺼릴 뿐이니
但莫憎愛(단막증애)-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洞然明白(동연명백)-확 트여 명백하리라
는 “지도무난(至道無難)”의 게송(偈頌) 등으로 널리 회자(膾炙)된 고승(高僧)이다.
무문관(無門關) 화두집(話頭集) 첫장인 제1칙이 조주무자(趙州無字)다.
趙州和尙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조주(趙州) 선사(禪師)에게 한 선승(禪僧)이 물었다.
-개(犬)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하였다.
-무(無)!-
“없다(無)”고 한 이 “무(無)”에 대해,
일체 중생(衆生)에게는 모두 불성(佛性)이 있는데
왜 개(犬)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고 했는가를 의심하는 “무(無)”가
불교(佛敎) 전체의 화두(話頭)자리를 잡았고,
조주(趙州)의 무자(無字) 화두는 우리나라의 대다수 스님들이 평생을 씨름하는
화두의 하나가 되어 그 유명함이 전하고 있다.
즉 이 “무(無)”자 하나가 불교를 깨닫는 제일 관문(關門)이라 할 수 있고,
불교에서 이 “무(無)”의 의문(疑問)을 타파(打破)하게 되면
견성(見性깨달음)한다고 하였다.
무문관(無門關) 화두집 첫장에 조주(趙州) 선사(禪師)의
“조주무자(趙州無字)”를 등장시킨 것은 나머지 47장 내용 전부가
조주(趙州)의 “무(無)”를 투명(透明)하게 꿰뚫고 있는지를 점검(點檢)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어원(語源)을 정리하여 보면
위의 조주(趙州) 선사(禪師)의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는 “지도무난(至道無難)”에서 영감(靈感)을 받아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禪師)가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성립시켰다고 볼 수 있다.
원체 큰 대인(大人)이 사용하신 문구(文句)라 토를 달기가 송구스럽지만
대도무문(大道無門)은 “내 자신이 부처”라는 의자종교(依自宗敎)인 불교의
중심 화두(話頭)인데.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만이 구원(救援)이 될 수 있다는
의타종교(依他宗敎)인 기독교 신앙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라는 것이
의아스럽기도 하다.
단순한 구도(求道)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 세대의 장경(藏經)이라고 평가받으며 “내가 곧 부처”라는 진리를 만나게 하는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에서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
대도(大道)는 대의(大義)로운 옳은 길
크고 옳은 길을 가려면
큰 길 옳은 길을 가려면
반드시 “無” 자(字)의 문(門)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늘과 땅을 혼자 걸어가려면 반드시
“無” 자(字)의 문(門)을 통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道)는 반드시 무(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