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운동화
석야 신웅순
PT하는 첫날이었다.
하마터면 미끄러워 넘어질 뻔 했다. 아찔했다. 트레이너가 운동화를 보더니 밑창이 플라스틱이라고 절대 신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오래전에 신었던 운동화가 있어 별도로 사지 않았다. 밑창은 전부 고무로 되어있는 줄만 알았다. 나이 들어 넘어지면 뼈가 붙지 않아 그 길로 먼 길을 가는 것을 주위에서 자주 보아왔다. 모골이 송연했다.
이튿날 새로 샀다.
정년퇴임 후 스포츠 댄스를 한다고 비싼 구두를 산 적이 있었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 댄서의 화려한 출발이었다.
“몸치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시작해서일까, 댄서들의 현란한 스탭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뒤뚱거리는 내 뒷모습은 어땠을 것인가.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얼마 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라인댄스였다. 집사람과 함께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도 몇 달 후 그만 코로나의 습격을 받아 결국 못하고 말았다. 애초부터 팔자에도 없는 춤이었다. 내게 춤은 인연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헬스였다. 헬스도 사실은 세 번째였다. 두 번째인가 그 때 좀 무리를 했던지 허리를 다쳤다. 경미했으나 그것이 나이 들어 자연 신경공 협착증으로 이어졌다. 고치기야 어렵겠지만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하려면 운동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PT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건이 마땅치 않아 망설이고 있었던 차였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으나 종합건강검진 직후 딸이 반 강제로 지엄마와 함께 등록시켜주었다.
생노병사는 자연의 이치이다. 건강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은 병만은 없어야겠다는 나이 든 나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젊었을 적 한 때 죽도록 아파본 적이 있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으랴만 가시기 전 부모님의 고통을 지켜본 나로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건강과 아픔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다 지나간 뒤늦은 후회였다.
신발장을 열 때마다 비싼 댄스 구두를 본다. 아직도 새 구두이다. 버릴 수도 없고 보관하기도 그렇고 그것이 10여년이 되어간다. 애물단지가 되었다. 신발장 어두컴컴한 곳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는 햇빛, 달빛을 받으며 사랑을 받았던 친구였으나 이제는 한 구석 어둠 속에서 천대 받는 억울한 친구가 되었다. 둘 다 인연이 없는 사람을 만나 제 수명을 다할 수 없으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면 인연이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자연 가려지게 된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의지대로 한다 해서 인연이 되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인연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더 신어야한다고 생각한 운동화이다. 헬스장에 가서야 비로소 나이든 나에게는 당장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을 것인가. 댄스 구두도 십여년을 눈길 한 번 주지 못했으니 이 무슨 모진 인연인 것인가.
한 치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누가 모르랴만 새삼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
2024.7.11.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