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歷公派(경력공파)의 中始祖(중시조)이신 諱 明善(휘 명선) 의 아버지 諱 曄(휘 엽)은 奉翊大夫 江陵道觀察使 兼 江陵大都護府使 全羅道觀察使(봉익대부 강릉도관찰사 겸 강릉대도호부사 전라도관찰사)로 光祿大夫 典工判書(광록대부 전공판서)에 이르고, 어머니는 貞敬夫人(정경부인) 金氏(김씨)이니 江原道 伊川面 鄕校里(강원도 이천면 향교리)에서 아무 해 아무 월 十三日(십삼일)에 公(공)이 출생했다.
五歲(오세)에 書堂(서당)에서 學文(학문)을 익히고 八歲(팔세)에 父親(부친)을 따라 開城東門洞(개성동문동)으로 移居(이거) 하였는데, 忠肅王(충숙왕) 13년 丙寅(병인)1326년 科擧(과거)에 及第(급제)하고 春秋館左司諫(춘추관좌사간)을 거쳐 松京府(송경부)에 5년, 司憲府監察(사헌부감찰)에 5년, 刑曹參議(형조참의)에 5년, 承政院同知副代言(승정원동지부대언)에 3년, 兵曹參議(병조참의)에 3년, 禮曹參議(예조참의)에 5년을 지내고,高麗恭愍王(고려공민왕) 7년 己亥(기해) 1359년에 通訓大夫開城經歷(통훈대부개성경력)(당시 개성은 高麗(고려)의 首都(수도) 서울이며 經歷(경력)은 高麗首都(고려수도)를 管掌(관장)하는 벼슬로서 지금의 서울시장에 該當(해당)된다)에 昇進(승진)하고 2년 후인 辛丑(신축) 1361년 3月 15日에 돌아갔으니 壽(수)가 四五歲(사오세)이다.
墓所(묘소)는 江原道 伊川 鶴鳳面 深上里 先考(강원도 이천 학봉면 심상리 선고)의 墓所(묘소) 아래 亥坐(해좌)이다. 淑夫人(숙부인)은 慶州李氏(경주이씨) 이니 一男 懃(일남 근)을 두었는데 高麗朝(고려조)에서 代言 承旨(대언 승지) 를 지내고 朝鮮朝(조선조)에서는 左副代言(좌부대언)을 지냈다.
때가 되면 가장먼저 이천군 학봉면 심상리에 있는 경력공의 묘소를 찾아 보는것이경력공파 후손의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기도 利川과 다른 강원도 伊川입니다.
첫댓글 조선시대관직 좌부대언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의 비서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아주 중요한 요직입니다. 조선 초기에 승정원(왕의 비서실)에 소속되어 왕의 명령을 출납하던 정3품 당상관 직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