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등까지 한적있었지만 올해는 《온몸이 만신창》
2000년 갑A탈락과 더불어 절강록성에 매각된 연변팀은 4년만인(을급리그서 분전) 2005년에 다시 갑급리그로 돌아왔다. 2005년부터8년래의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순위를 보면 2005년 갑급리그에서 10승3무13패 총 33점으로 8위를 차지, 2006년 갑급리그에서는 8승5무11패 총 29점으로 역시 전해 순위인 8위를, 2007년 갑급리그에서는 9승6무9패 총 33점으로 두계단 상승해 6위를 차지, 2008년에는 8승4무12패 총 28점으로 다시 8위로 《복귀》고 2009년에는 7승8무9패 총 29점으로 두계단 상승해 6위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12승4무8패 총 40점으로 3위까지 치고 올라왔는데 이는 현재까지 8년 갑급리그 사상 연변팀이 가장 최고로 이룩해낸 성적으로 된다. 2011년 갑급리그에서는 8승5무13패 총 29점으로 11위로 하락했고 2012년 시즌에서는 10승4무16패 총 34점으로 두계단 더 추락한 13위로 요행 갑급리그에 턱걸이를 했다. 이는 연변팀이 8년 갑급리그에서 작성한 최악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꼴득실에서도 8년내의 가장 최악을 기록했다. 실점을 가장 많이 한해가 올시즌인데 무려 51꼴을 허락, 평균 한경기에서 1.7꼴씩 허락했다. 비록 올시즌이 지난해보다 4경기가 더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37꼴을 실점했지만 올시즌엔 51꼴이나 실점했다. 특히 홈장패전도 올해가 매우 많았다.16경기 패전중 홈장패전이 5경기였고 그중 지난 7월 28일에 있은 제19라운드 홈경기에서는 0 : 3으로 상해동아팀에 완패했고 9월 1일에 있은 제24라운드 홈경기에서는 할빈의등한테 1 : 5로 대패, 올시즌 최종전에서도 약체팀 심양심북한테 0 : 2 로 홈장완패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그외 꼴잡이중에서도 연변팀의 꼴잡이는 낮은 득점력으로 하위그룹에 속했다. 1위로는 심수홍찬팀의 바바카가 23꼴을 성공시킨 반면 7꼴을 넣은 연변의 허파는 공동 10위에 머물었다. 이 역시 2010년 시즌 11꼴로 꼴잡이 단독 6위에 오른 루둘라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슈퍼리그 진출; 룡두사미가 되다 2011년말 연변주정부 리룡희주장은 연변주체육국에서 사업연구를 할때 《2012년시즌 연변축구팀이 슈퍼리그진출에 성공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에 헌례》하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에서는 자금 등 방면에서 그 어느해보다 강력한 지원을 보냈다. 정부의 슈퍼리그진출의 요구는 어느 지도자가 자기 생각대로 내린 결책이 아니라 연변주 체육부문을 비롯한 해당부문의 가능성 계획보고서에 등에 의거해 내린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연변팀은 그동안 늘 제기돼왔던 시장화 운영문제, 후비력 양성문제, 기초시설 건설문제 등등을 전혀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고 부랴부랴 올시즌을 맞이했다. 또 팀 짜기에서 관건적인 선수 영입 및 방출에서도 연변주체육국이나 구단에서 관련 전문인재들의 부재로 거의 실패작이라는 여론이다. 연변팀은 갑급진출 4년만인 2008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구호를 제출해왔으나 그때부터 5년이 지난 올해까지 슈퍼리그진출은 물론 갑급보조의 수렁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오면서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가 흐지부지해지게 됐다. 기둥선수들이 류실되면서 팀 기반이 흔들흔들 최근 U22중국국가대표팀에 발탁한 전 연변팀의 핵심선수 김경도는 이적문제로 년초부터 구락부와 얼굴을 붉히던끝에 결국 심양심북팀으로 둥지를 옮겼고 전 연변팀의 주장이자 주력수비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왔던 한청송선수 역시 구락부와 마찰하던 끝에 최종 중경력범으로 이적하고 말았다. 이는 슈퍼리그진출을 목표로 한 연변팀에 있어서 두장의 보증수표를 잃어버린것과 마찬가지였다. 외적용병들의 활약을 돌아보면 올시즌 중반에 영입된 크로아찌아적 버지치선수는 7꼴을, 쿠리바리 4꼴(미드필더, 말리적), 홍진섭 6꼴(미드필더, 한국적), 라피치(수비수, 크로아찌아적)선수들은 조긍연감독이 사령탑을 잡을때를 제외하고 이들 4명 선수는 대부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기량미달이였다. 그중 한명인 카레라선수는 몇경기 출전하지도 못한채 본국으로 소환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사령탑 선정에서 감독선정에서도 연변팀은 지난해 시즌 중후반기에 사령탑을 잡은 정상룡감독에 의해 간신히 갑급리그보존에 성공한 상황이였으며 구단으로 놓고볼 때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특히 정상룡감독이 하차한뒤 연변주체육국은 한국에 사람을 급파해 신임감독 물색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연변주체육국이 급파한 감독 인선 고찰단이 축구감독 후선인의 자질을 보아낼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됐는지는 알수 없지만 하여튼 이들 고찰단 일행은 5명 감독 후보자의 리력서를 들고 갔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들 5명 후보자가 구경 누구인지 모른다) 한국에 도착한 이들은 지인의 주선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감독의 조수였던 박항서 감독(현임 K리그 상주상무팀 감독)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항서 감독은 연변측에서 갖고 온 5명의 후보자 리력서를 본 뒤 오히려 자신이 아끼는 한 후배가 이들보다는 더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면서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그가 바로 조긍연이였다. 며칠뒤 조긍연감독은 연변팀에 부임했으나 역시 저조한 성적으로 리그 결속전에 지병인 허리병을 리유로 지휘봉을 반납했다. 이상에서 보다싶이 연변주체육국은 연변 력사상 두번째로 되는 외적감독 선정에서도 상황대처에만 급급했을뿐 감독 후선인에 대한 충분한 료해거나 고찰단계가 없이 그냥 한 일개인의 건의에 따르는 등 신중치못한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특히 조긍연감독은 중국 갑급리그에 대한 료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리그 중반에 돌입한 연변팀에 수술칼을 들이댔고 이는 오히려 결국 생사기로에 놓여있던 팀을 한발작 더 벼랑으로 떠미는 결과가 되고말았다. 정부의 자금조달이 여느 시즌에 비해 확실했던 2012갑급시즌, 당당하게 슈퍼리그 진출까지 웨쳤던 연변팀였지만 축구팬들에게 바친 성적표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체육국과 구락부 등 해당부문에서 그 원인을 참답게 규명하는것이 연변축구의 래일을 위해서도 필요한것이다.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