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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일부 여성단체들이 `여성 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 철회 촉구 공동행동`을 결성했다. "여성가족부의 2024년 예산안은 그나마 그 동안 일궈온 성평등 사회를 퇴보시키는 예산"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1조7천135억원 규모의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여가부는 `약자 복지ㆍ저출산 대응에 집중투자 하는 예산`이라고 발표했으나 약자 복지에 여성 폭력 피해자의 자리는 없다. 여성 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지원 관련 예산은 142억원이 삭감되었다. 여가부는 "지출구조 혁신을 통한 사업 효율화에 중점을 두었다"고 삭감이유를 밝혔다. 이는 일반예산 및 양성평등 기금 예산 431억원의 약 33%를 차지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사회적 약자 지원정책의 강화를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가정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 5대 폭력에 관한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면서도 동시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적극 시도하는 모순을 보여왔다.
이후 효율성을 이유로 "유사ㆍ중복 사업은 통폐합되어야 한다"며 예산 감축을 통해 여성가족부 관련 정책을 무력화하고 있다. 특히 가정폭력, 성폭력ㆍ성희롱, 디지털 성범죄예방교육 콘텐츠 제작, 디지털 성범죄 특화프로그램 운영, 이주여성 폭력피해, 북한 이탈여성 폭력피해 예방을 위한 인식개선 및 홍보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폭력 재발 방지와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고를 위한 예산을 모조리 삭감한 것이다.
남성이 설계하고 남성이 디폴트가 된 세상에서 여성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다. 성별 불균형으로 야기되는 사회 전반의 안전은 남녀 갈라치기에 묻혔고, 백래시가 더욱 활개치는 사회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무의식화 된 남성 기본값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고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을 가중시킨다.
이러함에도 정부의 성평등과 관련한 정책기조는 정확한 이해도 없이 사업을 폐지하거나 통합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일례로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예산운영의 실효성을 이유로 공용평등상담실 예산 절반 이상(54.7%)을 삭감하고 전국 19개 상담소를 지역노동청 주관의 8개 상담소로 통합해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상담소 운영 예산도 전년 대비 31억9천700만원 삭감했다.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지원 예산 중 가장 큰 폭으로 삭감된 예산이다. 개별 가정폭력상담소를 대폭 감축하고 여성폭력피해 통합상담소를 소폭 증대하여 가정폭력, 성폭력 뿐 아니라 디지털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등 신종 범죄피해에 대한 사각지대 없는 지원을 하겠다는 게 주요 이유다. 하지만 실제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을 가정폭력ㆍ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지원으로 세목만 바꾸었을 뿐이다. 이렇듯 예산 없고 로드맵 없는 통합상담소로의 전환은 실질적 피해자 지원을 불가능하게 한다.
또 가정폭력피해자 치료회복 프로그램 및 의료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 폭력피해여성 주거지원 운영에 관한 예산도 삭감됐다. 이런 예산은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되는 예산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원 실적 반영, 입소율 저조, 의료비 집행률 반영 및 부정수급 발생 등을 이유로 예산을 싹뚝 잘라 버렸다.
하지만, 정부의 성인권 교육사업 및 여성폭력 방지 예산 삭감, 고용평등 상담실 폐쇄 등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시설 통폐합과 인식개선 예산 삭감 등 여성정책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퇴보시킬 뿐이다.
실적과 효율 운운하는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은 어불성설이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외면하는 정책이다. 여성폭력은 통시적 관점으로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하고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합적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책적 연구와 피해자 지원단체들과의 논의를 통해 제도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상담소 통폐합을 멈추고 예산삭감으로 퇴보되고 있는 성평등 정책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