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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중고등학교 학부형들에게 종종 강의를 맡아하였는데 나는 청소년들을 기르고있는 어머니들의 교육이 자녀들의 인생에 그리고 국가의 미래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역설하곤 하였다. 지금도 그것은 내 인생에서 참으로 가치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하고있다. 일주일 중 특정한 요일에 방문하여 두시간 씩 한달간을 계속하였는데 그 한달이 지나면 어머니들은 제법 인생관 국가관에 눈이 트이게 된 것 같아 보람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여성의 삶과 꿈 인생을 얘기하며 강의 끝에 시를 하나 암송해 들려주었다.
그리운 악마
이수익(李秀翼 1942년 경남 함안생)
숨겨둔 정부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홀로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집
불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사이
숨막히는 암호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못챌 비밀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에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마음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먼 기다림이 하루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같은 여자
그런데 그 날 어머니들은 강의가 끝나고 내게 몰려들어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눈물이 막 난다' 라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어 나는 내심 놀랐다. 이 시는 솔직히 말해 남자들의 바람끼를 아름답게 승화시켜 표현한 것으로 가정이 있는 중년남자들이 특히 열광했던 시인데 여자들도 마찬가지란 말인가.. 그들은 위치있는 모범생들의 어머니들로 긱 반에서 한명 씩 차출돼 온 사람들로 즉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성공한 가정에 속하는 편인데 그래도 속으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회한과 꿈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부부사이가 좋다해도 남자들이란 유사이래 누구나 또다른 젊은 여자를 갖고싶은 바람끼가 있는 법이니까. 조선조시대처럼 대놓고 자신의 집에 첩으로 들여 바람을 필 수도 없고 그런 경제력도 안되는 평범한 우리의 직장남자들..
여인 역시 가난하여 외진 골목갈 끝 작은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미혼의 젊은 여인인데 남자는 초인종을 누를 수도 없고 작은 돌맹이를 창문에 던지는 식의 신호를 하고 소리없이 숨어 들어가 오래 머물 수도 없어 '죄의 달디단 축배끝에' 서둘러 마누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신세. 여인도 낮에는 하찮은 직장에 다니며 적은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신세인가 본데 그럴 듯한 방하나 얻어줄 수도 없는 남자의 처지.
여자에게 합당한 베품도 없이 끝까지 착취만하는 이기적인 남자들의 욕심이라고 분노할 만도 한데 나는 어쩐지 이 남자가 불쌍하고 동정심이 간다. 그의 마음속엔 여인에게 미안한 느낌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애정은 자극을 받아 강해지는 이상한논리.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이 젊은 여인에게 화도 나지만 그래도 돌을 던질수만은 없는 이 심경.
그 아가씨는 서울에 집이 없는 시골태생인가 본데 내 생각엔 그녀는 경상도 중에서도 경남태생일 것 같다. 내가 보아온 바로 대구를 중심한 경북은 경남인들에 비해 훨씬더 똑똑하다할까 좀 이기적인 면이 있고 경남인들은 대체로 좀 더 순진한 면이 있으니.
그녀는 경남 어느 시골태생으로 부모님들은 멀리 시골에 계셔 서울 올라올 엄두도 못내셨을 것이다.
결국엔 한풀 타오르고나면 애정이 슬슬 식기도 하여 끝엔 꼭 '널 사랑하지만 나는 떠나야 해'하며 눈물쑈를 한바탕하고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긴 그런 용기도 없어 여인을 숨겨두고 자식까지 낳고 사는 것을 나중에야 그 본처가 알게되어 난리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그래도 그 마누라는 이것저것 현실적으로 따져보고 모든 상황을 인정하며 산다. 그 세사람 모두 온전히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이론적인 분석보다 이수익의 시엔 막연한 심미주의적인 아름다움이 넘친다.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 우울한 샹송 중-
청춘의 방황과 동경 목마름으로 그는 평생 외로이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하여 고교 때 하학해 집에 오면 시집을 들고 과수원으로 올라가 나만 아는 나의 나무를 정해 올라가 비스듬히 누워 천천히 시인이 그 시를 쓰며 느꼈을 감성을 같이 느껴보면서 음송해보면 두어번만 읽어도 완전히 외울 수 있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수많은 명시들을 외우고 빠져들고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그 것은 내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 아니었나 싶다.
그때 나뭇잎사이로 본 파아란 하늘은 너무도 감동적이라 나는 평생 그보다 더 아름다운 대상을 본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의 형제들이 서로 부등켜안고 울고 춤추는 장면이 유일히게 더 아름다울 것 같지만 이제 그 장면도 점점 더 현실성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지금은 사이가 나빠져 북에선 남조선을 완전히 적국(타인)으로 보겠다 큰소리쳤지만 그건 진심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같은 민족에게 흐르는 피 이 사랑이 어디 가겠는가.. 통일이 되면 모두(모두는 아니겠지만) 서로 부등켜 안고 통곡을 할 것이다.
시들 중에 심금을 울리는 좋은 시를 외워 나는 아버지께 들려드리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 시들을 대단히 좋아하셔서 손님들이 오시면 나를 불러 그 시들을 음송하게 하셨다. 처음엔 좀 부끄럽고 부자연스러웠는데 손님들이 모두 눈을 감고 상체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감상하시고 끝나고나면 한번더 들려달라하시곤 하여 점점 나는 자신감이 생겨서 나중엔 전문적인 성우나 된 것처럼 제법 감정을 섞어 극적으로 낭송하곤 하였다.
그것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었으니 너무 오래되어서 불행히도 대부분 지금은 외울 수가 없어 참으로 아까울 뿐이다. 거기엔 이름없는 이들의 순수한 시가 더 많았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출옥하신 후 나는 그 시절 외우던 시들과 비슷한 느낌의 시를 하나 음송해 드렸더니 참 좋아하셔서 몇번이나 외워드렸었다. 그것은 다행히 아직도 내가 외우고 있지만 혹시나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나 않은지 검색해보려 인터넷에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없어 혹시 이 명시(名詩)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 아닌지 안타깝다.
만식 아비
朴木月(1916~1978)
아배요 내눈이 티눈인걸 아배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삿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이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릿고개 아배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손이면 아비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 고플라요
소금이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여보게 만식아비 니 정성이 엄척다
이승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더 귀한것
있을락꼬
망님도 감응하며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정성 느껴 느껴 세상에는
굵은 바위이슬이 온다
경북 경주 출생인 박목월은 토속 사투리를 그대로 옮겨 써서 대단히 사실적인 정감을 준다.
제삿상에 조기한마리는 커녕 값싼 고등어한마리도 못올리는 아들의 애타는 심정 보릿고개에 밥과 소금반찬만 올려진 가난한 제삿상..
기름이 없어 등잔불도 못 켜고 글을 모르니 축문도 못쓰는 이 가난한 집안의 풍경이 그대로 피부에 와 닿는다. 그리고 그 아들의 마음이 아비의 영혼에 온전히 전해지는 한폭의 그림같은 이 장면. 경상도 중에서도 특히 경북지방 사투리인 '알지러요'같은 토속어는 정말 정감가는 어휘이다.
경북 영덕의 한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자란 아버지는 이 시에 너무도 절실하게 공감하셨지만 요즘 한국인들은 몇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경험을 안겪어본 사람이 다행일까 아니면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더 이익일까. 내 생각엔 지금 현재가 아니고 과거의 경험이라면 가진 편이 인간적으로 훨씬 더 이익일 것 같다.
아버지에게 나는 틀면 언제나 음률이 흘러나오는 전축처럼 한동안 시를 음송해드리는 역할을 했었는데 아버지는 분명 그 때 많이 감동받으시는 듯 했다. 내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을 음송할 때 아버지는 내 느낌으로 마음깊이 눈물을 흘리시는 듯 하셨고 특히 이육사의 주옥같은 시들 중에 '광야'같은 시에 거의 충격을 받으시는 듯 하였다. 그 시들은 일제에 항거하는 것들이라 아버지는 더 큰 공감을 느끼셨을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 독일어 시간에 교수님이 이육사의 청포도란 시를 자신이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들려주기 전에 누가 한국어로 우선 그 시를 읊어보라 하셨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할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나는 참 이상하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시를 못 외우다니 싶어 할 수 없이 내가 손을 들어 조용히 읊어 보았다. 고교시절 갈고 닦은 시낭독 실력을 발휘하여.. 그 수업 후 나는 그 시를 외웠다며 일약 유명해져 4년 내내 칭송을 받아 부끄러웠다. 내가 만일 이육사의 다른 중후한 시들을 외웠다면 모두 기절했겠네 싶어 쓴웃음이 났다.
박목월은 태어난 경주에서 가까운 대구의 유서깊은 계성(啓星)중학을 나왔는데 그 학교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중학으로 최상위라는 경북중학보다 차원이 다른 학교였다.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선생들은 학생들을 이끌고 대구시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기록이 있을 정도니.
어쨋든 박목월은 그 계성중학을 나온 것이 최종 학벌인데 62년부터 한양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망높은 교수로 활약하였고 70년대엔 문리대 학장까지 역임했으니 생각해보면 그 시절까지만 해도 학벌의 디플레 시절이었다. 요즘은 외국에 그것도 꼭 미국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따와야 하는데 그래도 강사자리 하나 따기가 힘든 것 보면 극심한 학벌 인플레 현상임에 틀림없다.
아버지도 와세다대학에서 독립운동으로 퇴학을 당하셔서 그러니까 고졸로서 부산대 교수직에 오래 계셨던 것 보면 형식적인 학벌보다는 실질적인 실력위주였다는 얘기로 그 점 요즘보다 훨씬 바람직한 세태였음이다.
첫댓글
시는 심장을 겨누는 것,,,
또한 시는 숨통을 조이는 것,,,
시는 뜨거운 피를 혈관에 굽이치게 하는 것,,,
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지요.
예전에 여기 정론직필카페에서 [시사평론]이란 아이디를 쓰던 이용암 시인요
이 싯구가 시가 가진 힘을 시 그대로 보여주고 있네요~^^
그 이용암 시인이
지난번 <너 또한 걸으라> 연작시집에 이어서
또 이번에
<새로운 출현>이라는 韓詩(우리말시) 연작1~10권을 e북으로 출간했습니다.
교보문고,예스24등에서 판매중이며,
다음포털PC웹에서 교보문고가 1순위로 홍보 중이네요~^^
그리운 악마라는 시...
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지요.
그런 진솔한 시이니까 그시대 어머니들도...^^
박목월의 서정시도
우리 가슴에 전달되는 특유의 힘이 있구요.
서정이 갖는 힘...^^
한국문학의 우수성이
세계에 빛날 날들이 올 것입니다.
특히 시분야는
독특한 우리 말과 글, 운율의 어우러짐과
우리 정서가 가진
위대한 문학의 정수?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말은 하느님이 외계인을 통해 특별히 내리신 거란
말이 시간이 갈수록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말은 다른 어떤나라말과도 비슷하지않고 특별나거든요.
나의 아버지가 와세다다니실 때 온힘을 쏟다 퇴학당하고
구속되어 고통당하신 죄목도 '조선어학회'였는데 우리말엔
우리의 영혼과 얼이 담겨져 있는 귀중한 것이라 목숨걸고
지켜야했기 때문이라 하시더군요.
전에 한국에 오래 살고있던 영국여인이 티비에서 대담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데 한국어는 알아갈 수록 특별나고 우수
하다 예로 '그리운' '그립다'란 단어는 영어나 어느나라 말에
도 맞는 표현이 없다... '애처러운' 등등..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티셔쓰에도 한국
어는 없고 모두 영어만 쓰여있어 아무리 한국어셔쓰를 사려
해도 구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라고...
이용암씨의 '새로운 출현'이란 시집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말해 주세요.
10권을 다 사야하는 건지...
인터넷에서 교보문고나 예스24에 들어가셔서
e북으로 검색해 구매하셔야 합니다.
종이책으로는 출판을 하지않은지라...
전집을 구매하시려면 한권씩 카트에 담아두었다가 구매하셔야~^^
살아가면서 시인 아닌분 없지요
문자로 남기니 소설이고 시 산문 하이쿠 등등 아닐까 합니다
평론님의 용기에 응원합니다
남기는 문자들이 시 산문이라..
멋진 하이쿠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들이 모여 멋진 소설로 남겨질 때
우리는 풍요로워질 것이지요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
에 아 나의 인생은 후회없는 예술이었구나 하고
미소지을 수 있기위해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산비탈양 언니~ 글에 리플 달았어요
연결이 될 것 같아서요
영일이가
그동안 몇번의 편지를 부쳐도 답장이 없더니
오늘 소식이 날아와 무척 반갑고
회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글을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