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발 수선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한국에서 연락되는 몇안되는 지인들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한국은 그냥 버리는데 고치는 데가 있어?..좀 버려라..징하다 진짜..스쿠루지다...죽을때 돈다발 들고 갈것도 아닌데..'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신발수선을 해주는데가 있었는데 요즘은 안보여..어릴때 시장에서 본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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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엄마가 호치민에 처음에 왔을 때다. 서울을 떠나 베트남 일상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는데, 겉으로는 멀쩡한 운동화의 고무밑창이 벌어져서, 오가면서 미리 봐두었던 3군 신발 거리 골목 아저씨에게 수선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엄마가 그것을 보시더니, "쯧.. 그냥 버리지 않구선...".엄마는 서울로 돌아가셔서는 밤새 며칠간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서울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무조건 다 골라내어 버리고, 옷에 조금이라도 뭔가 이상하면 안 입고 투정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내가 이곳에서 조금씩 돈을 보내는 것도 쓸 수가 없고, 마음이 크게 아프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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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 꽤 부유했던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순진한 부모님의 친척조카의 사업을 도와주려던 은행 연대보증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 부터는 신림동 한전단지의 넓은 주택을 떠나, 영화 기생충에서 나왔던 반지하로 이사를 갔다. 책을 많이 봐서 그랬던건지..대견한 어린마음이었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침착했다. '그래 살다보면 이럴수도 있는거지.' 별로 크게 괘념치 않았다..
어느날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 이었다. 신림동 판자촌(난민촌)에 살던 짝꿍 성재가 군청색 프로스펙스를 신고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이 교단에 서있다는 것도 잊은채 나는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우와 프로스펙스야!"
현대미가 물씬 풍기던 여자담임은 성재에게,
"프로스펙스 신고 오느라고 늦게 온거야?" 라고 핀잔을 주었다.
내 모습은 쑥색바지에 교복입던 형아들이 신던 검정색 운동화였다..노래를 잘하던 내 모습을 알고 있는 음악수업 담당인 여자담임이 내가 신고 있던 허름한 검정색 학생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중학교때는 그랬다. 스포츠화 유명 브랜드,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프로스펙스, 아식스, 조다쉬, 이런 것들이 한창 급우사이에서 인기가 있던 그런 선망의 때였다.
티비에서 매일같이 나오던 아식스 달리고 싶은 충동, 아식스, 날을것 같은 기분..아식스...아식스맨이 스포츠맨..아식스~ CM송이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이니 얼마나 빠져있었는지 알수 있을 것 같다.
내게도 꿈에 그리던 날이 왔다., 아식스 스포츠화 군청색(12,900원) 신림사거리 대리점에서 엄마와 같이가서 사던 날은 정말 광고처럼 날을 것 같은 기분이었던 날이었다..아식스 대리점 주인 아저씨가 "엄마가 좋은 신발 사니까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하던 의례적 멘트조차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후로 나는 좋은 브랜드 신발을 신었다. 딱히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옷은 허름했어도 신발은 나이키나 프로스펙스 좋은 것 신어야 했고, 늘 그런 것을 선호했다..다른 것은 중요치 않아..신발만 멋지고 좋으면 돼..
아버지와 함께 했던 까까머리 고등학교 입학식에서도 우중충한 밤색골덴바지였지만, 신발 만큼은 파란색 마크 모양이 앞에서부터 동그랗게 말려 하늘로 상승하는 듯한 흰색 테니스화 나이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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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와서 살다보니 모든 것이 환경이 서울에 있을때하고 달라지고, 이곳에 적응해서 살아야 하니, 나도 이곳 환경에 맞춰 생활이 변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10여년전만 해도 한국 좋은 제품을 사는 것은 한국보다 많이 비싸고, 또 이곳에서 생활에서 벌어 들이는 것으로 좋은 제품을 사기에는 꽤 큰 비용이 들어가기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요즘 같은 코로나 장기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은 더욱 말할것도 없고...
그래도 습관과 관념이라는 것은 좀처럼 잘 변하지 않아서 호치민에 산다고 해도 신발을 살때는 꼭 브랜드화를 찾게 되고, 예전에 뿌듯하고 좋아했던 기억과 함께 그래 역시 신발은 나이키가 튼튼하고, 내구성이 있고 오래 가는 것 같아 하고 계속 자기암시와 최면을 주게 된다. 신발이야 어느 것이든 품질이 비슷해서,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나이키가 좋아 나이키가 어울리는 것 같아 하고..사람마다 다르겠지 하면서도..개인적인 추억이랑 맞물려서 좋아하는 브랜드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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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가 있음 죽을때 잘가라고 소지품 태워요..
그중 꼭 태우는게 신발이예요
엄마가 애 보내는데 신발이 낡고 그런걸 태울수가 없었대요..
결국 신지도 못한 새신을 사서 태우고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았나 신발몇켤레도 못사줬나 통곡했단 이야기가.....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학생의 엄마가 아디다스 못사줬다고 사망자 발견하고 발표할때, 아디다스 나이키 신발 신은거 그런 것으로 발표할때 자기 아들은 그 신발 메이커 못사줬다고 할때...죽은 시신조차 못찾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는 그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메여 눈물이 흐른다..
추억은 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힌다고...이제는 늙어버린 우리 엄마도 어릴 적의 내 모습과 습관을 아직도 기억을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호치민에 왔을때 운동화 밑창 벌어진거 제가 버리지 않고, 수선집에서 고무를 기워서 가져왔던 것을 엄마가 한국에 돌아가서 밤잠을 못이뤘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그냥 여기 생활에 맞춰서 그렇게 사는건데..물론 제가 메이커브랜드 신발 엄청 좋아하는거 저희 어머니가 잘 알고 있는데 예전에 한국에 있을때는 그런거 조금 이상하면 입지 신지도 않고 다 버리고 했던거 그런 것을 기억하는데 여기와서 신발수선해서 기워서 신고 그러니 여기서 돈벌어서 보내는거 못쓰겠다고 하더라고요
신발 수선하는거 돈 아낄려는것도 있지만, 일단 그렇게 나가면 현지인들 사는 모습도 볼수 있고, 이야기라도 한번 더 할수 있고..여기에서 좀더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한것 같아서 그렇게 하는거죠..
어제 운동하면서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깨끗하고 지구에서 낭비하지 않고 사는 이유가..내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곳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우주여행하는 것처럼..
우리가 죽음 이후에라도 인간의 지능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데, 사후세계를 믿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구에 여행온 사람이 되어서 다시 우주의 공간을 여행하다가 언젠가는 다시 지구로 귀환해서 살아갈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부활의 소망이라고 하는데,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나 과학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다들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과 신념으로 살아간다. 그 답은 신앙 종교과학을 통해서 찾으려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도 우리가 뜻하는 대로 된다. 언젠가 소망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
그 소망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준비하고,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제게 항상 질긴 프로스팩스만 고집하셨던 기억이....ㅎㅎ
베트남에 온 이후로 프로스펙스와의 인연은 단절 되어버렸네요.. ^^
중고딩은 검정색 학생운동화. 잘사는 친구들은 구두도 신고 다녔지요. 선도부가 왜그리 무서웠던지 ㅎㅎ
제 위로는 교복세대이고, 저는 교복자율화 세대였어요..나중에 커서는 X세대로^^
@호치민의 밤은 깊어 저는 오렌지족 입니닼ㅋㅋㅋㅋ
@부채도사 어이쿠 몰라뵈었네요..오렌지는 될수가 없었던,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수저..
@호치민의 밤은 깊어 편히 하세요
저 라떼 아닙니다 ㅎㅎ
베트남은 나이스 나 아티스. 프로스포츠 가 없고 그냥 짝퉁 나이키만 있습니다. 한국도 다 죽어서 뭐라 할말은 없지만 그래도 자국 브랜드 키워야 합니다
요즘에는 한국 상품을 잘 몰라서, 인터넷의 정보로만 보고 들어요..^^
조부모님 부모님 저희부부 자식들 .. 우리집은 이상하게도 메이커에 대해서 관심들도 없고 잘 몰라요 .. 그저 모양좋고 질기고 저렴하면 사는거죠 ..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굳이 메이커를 고집하지는 안더군요 .. 보통 부모의 성향을 닯긴 닯나봐요 .. 베트남에 와서는 거의 쇼핑해본적이 없어요 .. 예전에 한국에서 구입했던거 10년 20년째 사용하고 있으니 .. 저의 외모가 좀 후줄근 하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쇼핑 하고싶은 생각도 없고 사고싶은 생각도 없어요 .. 아마 현지화가 어느정도 되긴 된모양입니다 ㅎ
북부 라오까이에 갔다가 노상에서 싸고 예쁜 신발들 발견 200,000동짜리 운동화와 쎄무 구두를 사왔는데 이놈이 질기고 가볍고 모양이 괸찬아서 몇개월째 신고 다녀요 ㅎㅎ 200,000동 10,000원 볼때마다 돈번거 같아서 기분좋아요
호치민있을때 님을 몇번뵌 기억에 법없이도 살사람 베트남에서 본 사람중 제일 선하고 열심히 성실한 인상 이였어요 .. 그렇다고 절대 호구라는 말은 아님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어렸을때부터 편하고 구김살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특정 메이커나 특정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반면에, 저처럼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와 굴곡이 심하거나 어려서부터 극심한 빈곤등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사람들은 특정의 대상에 집착하면서, 자신을 그 대상에 동일시하고, 투영하려는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마치 어린 아기의 소유욕처럼요..대장님은 이미 넉넉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모든 것을 다 한번씩 경험해보고, 소유해보셨으니, 이미 해탈하신거죠..^^
@호치민의 밤은 깊어 아이구 ㅠㅠ 저도 힘들었던적 가난했던적 여러번 있었고 .. 지금도 가난해요 ㅎㅎ
우리 조부모님 부모님 시절에 여유가 있는 삶이였든거 같기는 한데도 절대 사치나 낭비가 없으셨어요 ..
안전화 밑창 수리해서 6개월 더 사용 하라고 지급하면 퇴사하는 근로자 보면서 저 경우 년짝 화성 리복 신발은 수리해서 신고 다닙니다. 정이 들어서 버릴수가 없습니다. 신발 투정 모습이 떠 올라서 돌아 가신 부모님 생각에 운동화 이야기 읽고, 또 읽었습니다.
댓글만으로도 성실하고, 꾸준히 살아오신 인내력을 엿볼수 있어서 좋았네요..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되셨으면 합니다..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ㅎㅎ
아식스맨이 스포츠맨 아 식 스~ 흥얼거리면서 읽었습니다^^
머리속에서 생각나는대로 마구 썼습니다 하하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첫번째 신발 사진이 일명 .'스파이크'라고 하던 운동화네요......정말 추억의 신발입니다........빡빡머리에 검정교복을 입고 겨울에는 저 것,,,여름에는 흰색 운동화를 정확히 한달에 한켤레를 구멍내었던 기억이 납니다....고무 밑창에 지금과 비교하면 품질이라 할 것도 없는 수준이었죠 ㅎㅎㅎ
386세대들의 추억인가봐요 ^^
저도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프로스펙스를 처음 사 신고 날아갈것 같았지요..^^ 2학년때부터 교복 자율화했었네요..
푸른 5월이네요 호치민은 요즘 하늘이 푸른데...낙네임처럼 푸른 벳남에서 행복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