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근 몇 달동안 국내 정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일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상황입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검란이라고도 표현하더군요.^*^
역사에서 '란'이 쓰인 경우는 병자호란과 인진왜란이 대표적입니다만,
고려 인종 4년(1126년)에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드랬습니다.
왕궁을 침범하여 국왕파 신료를 제거한 다음 정치를 독단하였지만,
인종이 척준경을 이자겸과 갈라서게 해야 된다는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한 결과,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들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자겸의 난'이었습니다.
인종 13년(1135년)에는 신채호가 조선 역사 천 년의 대사건이라고 한 '묘청의 난'이 일어났더랬습니다.
묘청은 고려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개경의 지덕이 쇠한 때문이라며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가
김부식을 비롯한 반대 세력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자, 난을 일으켰지요.
김부식이 진압 책임자가 되었고,
반란군의 실권자인 조광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묘청의 목을 베어 개경으로 보냈지요.
무신 정권기에는 무신들이 번갈아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고 합니다.
문존무비의 풍조 속에서 문신의 횡포에 시달리며 온갖 수모를 감수하던 무신들의 분노가
1170년 의종의 보현원 나들이에서 폭발했고,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은 수백의 문신을 살육했습니다.
이로써 무신들의 천하가 되었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난은 왕위를 놓고 형제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벌였던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453년 발생한 계유정란(癸酉靖難)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 황보인 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한 다음,
어린 단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자신이 왕좌에 오른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난들이 어지럽다는 의미의 '난(亂)'을 쓰는 것과는 달리
어려움이나 재앙을 의미하는 '난(難)'을 쓰고 '정란(靖難)'이라 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합니다.
'계유정난'은 어려움이나 재앙을 바로 잡았다는 뜻으로서 승자 세조 즉위의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1592년의 '임진왜란', 1636년의 '병자호란' 등이 모두 어지러울 '난(亂)을 씁니다.
그런데 동학도들이 봉기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는 의미로 동학란(東學亂)이라고도 했지만,
이제 이 말은 더 이상은 쓰지 않고 '동학농민항쟁' 또는 '동학혁명'이라고 부르는 시대입니다.
역사에서 급작스러운 정치적 변동이나 재앙은 변(變)이라 불렀습니다.
1884년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등 급진 개혁 세력이 우정국 낙성식 날 일으킨 사건은
'난'이라고 하지 않고 '변(變)' 자를 써서 '갑신정변(甲申政變)'이라고 합니다.
이날 수구파 한규직 윤태준 이조연 민태호 민영목 등이 처참한 죽음을 당했지요.
'정변'의 사전적 의미는
'혁명이나 쿠데타 따위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큰 변동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변'만 놓고 보면, '갑자기 생긴 재앙이나 괴이한 일'을 의미하는데요.
그러므로 '정'과 '변'의 합성어인 '정변'은
비합법적인 정치적 수단에 의해 갑자기 발생한 재앙 또는 괴이한 일로 인해 생기는 변동을 의미합니다.
10년 후 우리는 또 한 번 '변'자가 붙는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1895년 발생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乙未事變)'인데,
여기서 사변(事變)은 다양한 뜻을 갖고 있습니다.
1.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나 그 밖의 큰 사건.
2. 전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
3.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
(예) 우리나라의 가정은 사변 때 식구들의 생사조차 서로 모를 정도로 파괴되었다. <김승옥, 역사>
지금은 한국 전쟁, 6·25 전쟁 등으로 부르는 '6·25 사변'은 위의 세번째 정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6·25 사변'이라 하면, 북이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한 것을 강조했던 것이지요.
돌이켜 보면 '한국동란(韓國動亂)'이란 용어도 사용했었는데,
'폭동, 반란, 전쟁 따위가 일어나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진다'는 의미의 '동란(動亂)'이었습니다.
사건 규모나 지속시간으로 구분되지만 명확하지 않아서 때로는 헷갈립니다만
묘청, 정중부, 만적, 왜, 호 등 사건에는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는 의미로 난(亂)을 썼습니다.
그러나 계유정란은 어지러움이나 재앙적인 상황을 바로잡았다는 정반대의 의미로 '정난(靖難)'이라 했습니다.
정치적인 성격의 사건이라 해도 어떤 것은 난이고 어떤 것은 변입니다.
사건의 규모를 고려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은
소수에 의해 일어나고 희생자 수도 많은 인원이 관계된 여타의 난과 비교하면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난과 변이 대별되는 것을 찾는다면 사건 지속 시간이랄 수 있습니다.
난은 사건 발생에서 종료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묘청의 난(1135.1~1136.2)은 2년,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과 합쳐 7년간 지속되었거든요.
갑신정변은 3일, 을미사변이 밤사이 시작되고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6·25 사변'은 3년간 지속됐잖아요.
따라서 사건의 성격이든 규모든 기간이든 난과 변을 뚜렷한 기준을 갖고 명쾌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네요.
오늘날의 검난이든 검변도 지켜보면 역사가 절의할 수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