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풀장서 시사회 관객들 보트에 앉아 생생한 관람
삼성생명, 마포대교에 희망 메시지 자살 방지 캠페인으로 호평받아
제품을 단순히 써보게 하는 데서 호의적 경험 주는 방식으로 진화
지난해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시사회 풍경은 독특했다. 관객을 극장이 아닌 수영장에 모아 놓고 보트 위에 앉힌 뒤 영화를 상영했다. 한 소년이 구명선에 호랑이와 함께 타고 바다를 표류하는 내용이라 이를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제작사 측이 고안한 행사였다. 색다른 이벤트에 관객은 환호했고, 구전(口傳)을 통해 6억달러 흥행 대박을 도왔다. 이른바 '체험 마케팅(experience marketing)' 기법의 최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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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영장에서 영화 시사회_ 영화 '라이브 오프 파이' 이색 시사회. 극장이 아닌 수영장에서 관객들이 보트를 탄 채 영화를 관람했다. / 20세기 폭스코리아 제공
OB맥주는 '한국 맥주는 밍밍하고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자 소비자들을 초청해 맥주 문화 체험 행사를 수시로 열고 있다. 맥주의 역사와 종류, 각기 다른 음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한국·미국·일본·유럽 등 서로 다른 브랜드 맥주 4~5가지를 내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인다. 참가자 대부분은 어떤 게 한국 맥주인지 구별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편견이 체험을 통해 자연스레 일축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라거 맥주와 에일 맥주는 잔에 따르는 방법부터 다르다는 점도 직접 체험해 익히게 한다. 송현석 OB맥주 전무는 "소비자들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단순한 브랜드 홍보로는 차별화할 수 없다"면서 "경쟁 기업과 다른 감성적 만족을 제공해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험에 스토리를 입힌다
체험 마케팅은 제품을 직접 써보게 한 뒤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주로 이뤄져 왔다. 화장품 샘플, 온라인 동영상 강의 맛보기, 사고 싶은 제품을 직접 써볼 수 있는 애플 스토어나 삼성전자 디지털 플라자 등이 대표적이다.
네스프레소는 지난 4월 캡슐형 에스프레소 커피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팝업 스토어를 열어 고객들에게 무료로 한 잔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캡슐 커피도 전문점 커피에 맛과 향이 뒤지지 않는다'는 체험을 각인하려 한 것이다. 신우석 올리버와인만 코리아 상무는 "체험에는 '재미'와 '스토리'가 녹아 있어야 한다"면서 "체험 그 자체가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스토리와 콘텐츠 개발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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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판기 껴안으면 콜라가 나와_ 코카콜라가 세운 '허그 미' 자판기. 자판기를 껴안으면 센서가 작동. 콜라가 나오도록 했다. / 코카콜라 코리아 제공
아디다스코리아는 브라질월드컵을 맞아 지난달 명동 매장에서 직접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고 공인구 '브라주카'를 발로 차 속도가 얼마나 나오는지 파악할 수 있는 행사를 펼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신형 UHD TV를 선보이면서 TV 속에 나오는 동물에게 손을 대면 이 동물이 반응하도록 하는 가상 동물원을 매장에 설치했다. 고화질이란 장점을 설명하도록 하는 장치다. 코카콜라는 2년 전 중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허그 미(Hug Me)'라 쓴 자판기를 설치하고, 자판기를 껴안으면 센서가 작동, 콜라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다만 "체험 마케팅이 재미에 너무 치중해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광수 연세대 교수는 지적한다.
니베아는 독특한 자외선 차단제 잡지 광고를 낸 적이 있다. 광고 페이지에서 팔찌 모양 종이를 뜯어 아이 손목에 달아주고 이와 연동한 앱을 내려받아 작동시키면, 팔찌에 달린 거리 추적 센서를 통해 아이가 일정 거리를 벗어날 때마다 알람을 울려준다. 자외선 차단제는 야외 활동 시 필요한 제품인데, 야외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소비자의 마음을 미리 읽고 한 번 더 챙겨주는 배려가 담긴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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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포대교 자살방지 메시지_ 삼성생명이 마포대교에 설치한 '생명의 다리'. 마음을 위로하는 글귀를 넣어 자살 예방 효과를 노렸다. / 삼성생명 제공
체험 마케팅 2.0 시대
체험 마케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민동원 단국대 교수는 "제품을 단순히 써보게 하는 시용(試用·trial) 위주의 '체험 마케팅 1.0'에서 브랜드에 대해 유의미하고 호의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체험 마케팅 2.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투신 자살자가 끊이지 않아 '자살대교'라는 악명까지 얻었던 마포대교에 설치한 '생명의 다리' 조형물이 좋은 본보기다. 삼성생명은 서울시와 함께 마포대교에 설치한 전광판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을 띄웠다.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아들의 첫 영웅이고, 딸의 첫사랑인 사람, 아내의 믿음이고 집안의 기둥인 사람, 당신은 아빠입니다" 같은 메시지가 그것이다. 민 교수는 "보험사가 지향하는 '생명의 소중함'을 우회적이지만 설득력 있게 알려 젊은 층까지 고객으로 유입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소비자가 신발 한 켤레를 살 때마다 다른 한 켤레를 가난한 국가에 기부하는 탐스슈즈는 구매에 공익(公益)이라는 체험을 입혔다.
고객 취향에 맞는 상품을 주기적으로 선별해 보내 주는, 이른바 '정기 구독 상거래(subscription commerce)'도 체험 마케팅의 신개척 분야다. 한국의 미미박스나 미국의 버치박스는 일정 금액을 내면 고객 취향에 맞는 화장품 샘플을 골라 매달 한 번씩 배달해 준다. 잡지를 정기 구독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서 정기 구독 상거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미박스는 '뷰티 큐레이터'를 표방한다. 제품의 시용(試用) 자체를 상품화한 경우다.
제품 홍보만 강조하면 역효과
지난해 한 주류 회사는 한강에서 신제품 출시 기념으로 VIP 파티를 열었는데, 수용 가능 인원의 10배 가까운 인원이 몰려 참여하지 못한 참가자들로부터 빗발치는 항의를 들어야 했다. 올 초 국내 한 자동차 회사는 새 중형차 성능을 과시하는 홍보 행사를 스키장에서 기획해 열었는데, 정작 현장에서 이 자동차가 눈길을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미끄러져 참가자들에게 조롱거리가 됐다. 이장우 이장우브랜드마케팅 대표는 "체험 행사를 열 때 프로그램 준비가 엉성하거나 지루하면 역효과를 부르기 쉽다"고 말했다.
자사 제품을 너무 강조하거나 구매 압박을 가하면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 호프집 프랜차이즈 업체 와바는 맥주 시음 행사를 열면서 진행 요원들에게 '와바'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않도록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한다. 신우석 상무는 "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무료로 체험했으니, 그 대가로 실제 상품을 사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서 "체험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