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할인매장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식품의 뒷면에 작은 글자로 쓰인 영양성분표를 꼼꼼히 읽어 보는 소비자들이 이제 제법 눈에 띈다. 이는 국내 소비자들의 영양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아직 “유통기한 정도만 본다”거나 “귀찮아서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소비자가 다수다. 영양표시만 잘 봐도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데도 말이다.
이른바 ‘귀차니스트’라도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중요한 한두 가지 영양소 함량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가령 가족 중에 체중 문제로 고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열량 하나만이라도 보고 사는 것이 ‘가족사랑’이다. 고지혈증이 있다면 콜레스테롤, 골다공증이 우려되면 칼슘, 당뇨병이 있다면 탄수화물 함량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성분표로 하루 섭취 권장량 알 수 있어
가공식품의 영양성분표에서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필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 ‘% 영양소 기준치’다. 예컨대 ‘포장 돈가스’의 1회 제공량당 지방 함량이 12g이라고 가정해 보자. 사실 이 정보는 소비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양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소비자가 지방 12g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영양성분표 상에서 지방 함량의 바로 오른쪽(보통 괄호 안)에 표시된 ‘% 영양소 기준치’(해당 영양소 기준치에 대한 비율)가 더 소중한 정보다. 지방의 하루 섭취 기준치가 50g이므로 이 ‘포장 돈가스’의 ‘% 영양소 기준치’는 24%(=12/50×100)가 된다. 이는 이 식품 1회분을 먹으면 하루 지방 섭취 권장량(영양소 기준치)의 24%가 채워진다는 뜻이다.
어떻게 라벨을 봐야할까
평소 깐깐한 소비 생활을 한다고 소문난 40대 초반의 주부 강 씨. 라벨을 꼼꼼히 살피며 카트에 식품을 담았다. 그녀의 쇼핑 동선을 따라가 보자.
◆쌀=우선 쌀 매장 앞에서 쌀 포장지에 표시된 품질 등급을 확인했다. 고기처럼 쌀도 등급(1∼5 등급, 1등급이 최상품)이 매겨져 있다. 따라서 쌀 포장지에 쓰인 품질 등급은 확인해야 한다. 쌀에 단백질이 몇 %나 들어 있는지도 소중한 정보다. 쌀의 단백질 함량이 너무 높으면 밥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백질 함량이 6% 이하이면 ‘수’, 6.1∼7%이면 ‘우’, 7.1% 이상이면 ‘미’라고 쌀 포장지에 표시돼 있다. 가능한 한 올해 수확된 햅쌀, 최근 2주 이내에 도정된 쌀로 밥을 지었을 때 가장 맛있다. 쌀은 가급적 소포장된 것을 사서 전량 소비한 뒤 다시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견과류=강 씨는 요즘 웰빙 식품으로 뜨고 있는 견과류(호두ㆍ땅콩 등) 매대에도 들렀다. 견과류의 지방 대부분이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불포화 지방도 공기와 닿으면 산화해 몸에 해로운 과산화지질로 변한다. 따라서 견과류 구입 때도 유통기한 확인은 기본이다. 유통기한이 여유 있는 것을 사서 밀폐 용기에 보관한 뒤 되도록 빨리 먹는 것이 최선이다.
◆육류=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육류인 돼지고기의 라벨에도 등급이 표시돼 있다. 돼지고기는 흔히 마블링이라고 하는 근내(筋內) 지방과 고기색깔ㆍ지방색깔ㆍ외관 등이 판정 기준이며 1+등급, 1등급, 2등급 3단계로 구분된다. 쇠고기도 비슷한 잣대로 등급을 나누며 1++, 1+, 1, 2, 3등급이 있다. 쇠고기ㆍ돼지고기 모두 등급이 맛이나 영양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며 참고사항일 뿐이다. 닭고기의 품질은, 통닭은 1+, 1, 2등급, 부분육은 1, 2등급으로 구분되며 등급 판정일을 확인하면 신선도를 짐작할 수 있다.
◆농산물=강 씨가 불고기 부재료로 구입한 양파와 풋고추는 농산물이다. 가공식품과는 달리 농산물엔 영양성분표가 붙어 있지 않다. 더 안전하고 양질의 농산물을 원한다면 포장지에 GAP(농산물우수관리인증) 마크가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판 중인 채소ㆍ과일은 잘 씻어 먹을 경우 농약 잔류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견해다. 그래도 찜찜하다면 친환경농산물인증(유기농산물) 마크가 붙은 제품을 고르면 된다.
◆탄수화물=흔히 탄수화물을 당질이라고도 부르지만 가공식품 라벨의 영양성분표에 표시된 탄수화물 함량과 당류 함량은 다른 것이다. 라벨에 쓰인 당류는 단당류와 이당류. 즉, 단순당을 가리킨다. 포도당ㆍ과당ㆍ설탕ㆍ유당ㆍHFCSㆍ꿀ㆍ시럽 등이 포함된다. 전분 등 복합당은 탄수화물엔 속하나 당류엔 포함되지 않는다. 문제는 당류를 과다 섭취하면 비만ㆍ충치ㆍ혈당 급등락 등 건강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로’ㆍ‘무가당’ 등의 표시에 끌리는 소비자가 많지만 일부 탄산음료 제품에 쓰인 ‘제로 칼로리’는 수학적인 0㎉가 아니다. 열량이 5㎉ 미만이면 0㎉ 표시가 가능하다. 무가당 식품도 당이 일체 없는 무당 식품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설탕ㆍ과당 등 당류를 넣지 않았다면 무가당 식품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무가당 식품엔 과당 등 천연의 당은 얼마든지 들어 함유될 수 있다.
◆두부·두유=강 씨는 두부ㆍ두유 등 콩 제품은 브레인 푸드(brain food)이자 웰빙 식품이라고 여겨 장볼 때 거의 빼놓지 않는다. 콩물을 끓일 때 생기는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식품첨가물인 소포제나 유화제에 대해 우려하는 소비자들도 많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최종 제품엔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유는 다이어트 중이거나 당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우유를 마시기만 하면 배탈이나 설사가 나는 유당불내증으로 두유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칼슘 첨가 제품을 선택한다.
◆기타 식품=이외에도 라벨을 꼼꼼히 챙겨야 할 식품들은 한둘이 아니다. ‘국민식품’인 라면의 경우 나트륨이 적게 들고 유통기한이 넉넉하게 남은 제품을 고른다. 기름에 튀긴 유탕면은 유통기한(최장 5개월)이 지나면 지방의 산패가 일어날 수 있다.
시리얼은 제품 라벨의 영양성분표에서 열량ㆍ지방은 적고 식이섬유는 많은 것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통곡류ㆍ견과류 함유 등 장점을 라벨에 앞세운 제품이라면 원재료 명을 필히 살펴야 한다. 98%는 옥수수이면서 2%만 통곡인 ‘무늬만 통곡물’ 시리얼도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묵ㆍ맛살 등 어육 제품도 유통기한 확인이 중요하다. 어육은 육류보다 더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육 제품은 어육의 비율이 높을수록(80% 이상) 양질이다. 밀가루ㆍ전분 비율이 높은 어묵으로 탕을 끓이면 어묵이 불어나 식감이 그리 좋지 않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듯이 안전이 의심되는 식품이나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안전한 식재료를 바란다면 라벨에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나 GAP(우수농산물인증) 마크가 붙은 것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유통기한은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식품을 살 때 라벨에 표시된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가리킨다. 유통기한은 각 식재료의 라벨에 표시된 보관 기준(온도ㆍ습도 등)을 준수한다는 전제 하에서 정해진 기한 이내에만 판매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냉동ㆍ냉장 등 보관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유통기한 이내라도 식품이 변질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유의 라벨에 ‘유통기한 2014년 6월 25일까지 냉장 보관’라고 표시돼 있다면 반드시 냉장고에 보관한 상태에서 25일까지 유통이 가능하다.
식품 라벨에 유통기한 대신 제조연월일이나 품질유지기한이 쓰인 식품도 있다. 품질 유지기한은 각 식품의 특성에 맞도록 적절한 보존방법으로 보관할 경우 해당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이다. 기한 내에 섭취하면 상태가 최상인 식품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품질유지기한은 대개 장류ㆍ김치류ㆍ젓갈류ㆍ절임식품 등 장기간 보관해도 부패 우려가 적은 식품에 적용된다.
식품의 라벨을 제대로 읽기란 쉽지 않다. 지식 습득이 필요하다. 각종 식품에 쓰인 영양 표시만 잘 봐도 식요치병(食療治病)의 첫 단추는 채운 셈이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