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쁘다 “너도 이쁘고 나도 이쁘다”
2024.10.17.목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107) 기념일
에페1,1-10 루카11,47-54
가을빛 완연해지기 시작한 10월 중순입니다. 예전 ‘늦가을(晩秋)’에 쓴 시가 생각났고 미소가 떠오르며 순간 행복했습니다. ‘모두가 이쁘다’란 시입니다.
“가을엔
이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이쁘다
작은 풀잎, 나뭇잎들...
사랑으로 타오르는 단풍되니
모두가 이쁘다
너도 이쁘고 나도 이쁘다”<2000.11.10.>
아마도 하느님 눈에는 다 그러할 것입니다. 색깔, 크기, 향기, 모양등 제각각의 고유의 이쁜 꽃처럼 사람도 그러할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 눈에 성인은 더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됩니다. 성 뽈리카르포와 함께 사도 요한의 제자로 사도교부에 속하며,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자’라는 뜻의 ‘테오포로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보편교회의 의미인 가톨릭교회란 용어를 사용한 교부이기도 합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로마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고 이곳에서 주교로 일하다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순교하기까지의 여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성인은 쇠사슬에 매인채 병사들의 감시하에 배를 타고 해로로 또 육로로 곳곳을 걸어 기나긴 여정 끝에 로마에 도착하여 맹수형으로 순교합니다.
이런 와중에 일곱 개의 주옥같은 서신들이고 마지막은 성 폴리카르보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참으로 순교가 너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이런 서간을 썼다는 자체가 주교의 놀라운 믿음의 깊이를, 내적평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간에 나오는 감동적인 성인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다가와 있습니다...제가 생명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고, 또 제가 죽음의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도 마십시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문득 캘커타의 성녀 데레사와 성 아오스팅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계시다.”
(Where there is love, there is God)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
(Love and do what you like)
오늘부터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 서간이 계속됩니다. 오늘 에페소서 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에 대한 찬가가 감동적입니다. 그리스말 본문에서는 3절에서 14절까지가 한문장입니다. 그야말로 숨을 멈추지 않고, 단숨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내리 노래합니다.
우리는 매주간 월요일 저녁성무일도때 이 찬미가를 노래합니다. 이 찬미에서는 하느님께서 거의 모든 동사의 주어로 등장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찬미와 감사입니다.
1.우리는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2.우리는 사랑 안에서 그분앞에 설 수 있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3.우리는 그분의 자녀들로서 양자로 불림 받았습니다.
4.우리는 영광스러운 은총의 찬양이 되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5.예수님께 불림 받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피로 구속 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불림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미입니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의 사랑이 바오로 사도는 물론 이냐시오 주교의 순교를 가능하게 했음을 봅니다. 사랑의 순교입니다. 새삼 순교야 말로 주님 사랑의 극치이자 사랑이신 성체와의 결합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님의 무지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불행선언은 계속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로 상징되는 악순환의 부정적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공경하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역설적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러니 과거를 똑바로 기억하게 하는 역사교육,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깨어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악순환의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에 대한 박해의 역사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지금까지 흘린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세가 참으로 결연합니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리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는 못된 심뽀를 지닌 율법 교사들 역시 불행선언의 대상이 됩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립니다. 회개는 커녕 참으로 완강한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무지의 병이, 무지의 악이, 무지의 죄가 얼마나 깊고 큰지 ‘주님의 전사들’인 신자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무지의 역사입니다. 참으로 남북한은 물론 세상의 모든 광적(狂的) 호전(好戰)세력들은 자숙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린 한반도의 역사인데, 이제 남북이 좀 간신히 살만하게 되었는데 무지한 이들로 인해 참으로 어리석게도 일촉즉발의 전쟁상태라 우려합니다. 전쟁이 아니어도 힘든 세상에 해결해야할 난제들 투성이인데, 정말 더 이상 피흘리는 악순환의 역사는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기도합니다.
참으로 세상의 빛이자 소금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 '그리스도의 지혜'가 되어, ‘그리스도의 평화’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추(晩秋)의 계절, 날마다 저마다 사랑의 이쁜 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하나되어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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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만추(晩秋)의 계절, 날마다 저마다 사랑의 이쁜 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