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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
오늘 하루 당신이 계신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먼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단 하나의 걸작품임을 스스로에게 일깨우세요.
그러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얼굴에 자신감으로 인한 미소가 피어날 것입니다.
이제 한사람 한사람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정다운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가슴을 열고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세요.
분명 마음이 닫혀있던 사람들이 당신에게 호감 어린 시선과 뭔가 기대에 찬 얼굴로 마주설 것입니다.
이제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 보세요 상대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해 부드러운 칭찬을 해 보세요.
가능하면 당신을 만난 것이 참 행운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말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상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시간이 되신다면 따뜻한 차 한찬 나누면서 마음속 사랑담아 축복해 보세요.
어려울 것 같지만 우리가 인상 찌푸리고 푸념하는 시간이면 충분하답니다.
내가 밝고 주위가 밝아져야 근심이 없어집니다.
당장은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마음에 여유로움이 생긴답니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언어는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열어줄 거예요.
이제 제가 당신께 고백드릴 차례입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둘도 아닌 단 하나의 걸작이십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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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시낭송가를 찾아라
김숙희 시낭송가
시 낭송 경연대회 분위기를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배우고 시를 익히고 성장한다. 경연에서 수상하기 위해 그 지도자의 패턴을 따르고 수상자를 모방하면서. 이렇게 시 낭송을 하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고 '시낭송이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 못 박힌다. 그래서 시 낭송 제조기란 신조어까지 생기며, 마치 우리나라 시 낭송의 정석처럼 몇몇 대 시낭송가 들이 시낭송 패턴의 큰 아류를 이루며 '우리, 서로, 자기와 다름'의 패턴을 인정하지 못하는 병폐! 시낭송은 감동과 자연스러움과 명료함의 기저에 수십 가지의 패턴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자연스러운 낭송이라 함이 일상적으로 대화하듯이 아닌, 그냥 흐느적거리는 듯함이 아닌 무용에는 연습된 무대 걸음걸이가 있고 춤에는 오랜 훈련의 춤동작이 있듯이 자연스런 낭송도 일정한 수준의 기교가 필요함은 당연한 이치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 세세한 기교조차 모방으로 답습하며 큰 대세를 이루어 버리니 모두 다 같은 시낭송 기법이 물결치며 똑같은 패턴의 시낭송에 대한 인식과 집단화 형성으로 자기 장르 외에는 은근히 옳고 그름으로 거부하고 있다. 기성 낭송가들의 무리 속에 섞이면 타인의 낭송에 대해 칭찬하는 기류를 거의 읽을 수 없음도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여러 가지 패턴! 남이 아닌 우리 '류'를 찾아서, 새로운 패턴의 감동적인 시낭송가를 발굴하고 분류된 힘들과 팬들이 다시 조금씩 결집되고 전파해서 결국은 시낭송 흐름을 시대에 맞게끔 폭넓은 다양성으로 유도해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시낭송 세계에 깊이 발을 담글수록 자기화!
자기 패턴만이 옳음으로 고정화 되어버린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피곤도가 높아지면서 대화의 문을 닫게 된다. 지금 현재도 3080 음악만 줄곧 고집하며, 전자음악이나 편곡이 많이 가미된 가락의 정형화되지 않은 듯한 노래를 거부하고서, 듣자마자 즉시 꺼버리는 변화의 흐름을 수용치 못하는 친구와 오버랩 되며...
인기 음악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을 보라.
‘불후의 명곡’의 기존에서 탈피한 독특한 창법과 세련된 감동을 초창기엔 인기가 없었으나 지금은 진정한 감동적 음악의 새로운 장르로 정상에 우뚝 올랐다. 시낭송 대회 초반에는 어제의 대상이 오늘의 예선 탈락자가 되고 어제의 예선 탈락이 우리나라의 인지도가 가장 큰 대회의 수상자로 기록되어, 상이한 방향의 선정으로 처음에는 조금 난해했던 심사기준! (공정성의 논란은 이 글의 관점 포인트가 아니니 접어두기로 한다)
이제 닻을 내리고 대회를 관조하고 조명해 보니, 대회마다 각기 다른 성향의 심사위원들이 차별적인 대회의 색조를 실어서 그 대회의 특색에 걸 맞는 대상을 배출하는 것도, 시낭송가로서가 아닌 수십 년 시를 애송한 관중 입장의 평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시낭송 발전의 장기적 안목으로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다행히도, 만연된 비슷한 패턴에서 차츰 개성적인 낭송가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대회들이 늘어남을 피부로 느끼니 아마도 새로운 취향을 가진 심사위원의 세대교체가 기성세대와 잘 융화되어 혼재해 간다면, 조금씩 낭송계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주된 요인이 되지 않을까?
김숙희 시낭송가 프로필 대학원 영문과 졸업, 공립 영암삼호고 현직 영어교사 상록문화제 심훈 전국 시 낭송대회 대상, (사단법인)한국 명시 낭송가 협회 시사랑 전국 시낭송 대회 대상, 천상병 전국시낭송대회 금상, 김소월 백일장 산문 준장원 및 김소월 시낭송대회 은상, 총 전국 시낭송대회 9개 대회 수상, 전국대회 심사위원, 월간문학세계 낭송문인,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시낭송대회 및 행사 기획진행, 시와 함께 하는 대합창제 특설무대 초청낭송 등 수필가 등단 준비 중
영상 제작 : 풍차주인
영상제작 : 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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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
마음은 우리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만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비결은 먼저 마음을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없습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최대한 낮추고 최대한 섬기는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는 마음뿐입니다.
그 마음은 순수해야 합니다. 그 마음은 깨끗해야 합니다. 그 마음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 마음은 상대방을 더 위하는 마음이여야 합니다.
성숙한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성숙한 마음은 세워주는 마음입니다. 성숙한 마음은 덮어주는 마음입니다. 성숙한 마음은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싫은 소리도 잘 들어주고 상대방의 감정도 잘 소화하고 상대방의 결점도 잘 덮어줄 수 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을 얻습니다.
마음을 얻는 것이 재물을 얻는것 보다 낫습니다.
마음을 얻는 순수한 지혜를 가지세요. 마음을 잘 만져 주십시요. 마음을 잘 치유해 주십시요. 마음을 잘 이해해 주십시요.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영상 제작 : 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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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산티아고 노인은 하바나에서 고기를 낚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이다. 일생을 바다에서 보낸 그는 이제는 노쇠하지만 이웃 소년 마놀린과 함께 배를 타며 어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84일 동안 계속해서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다른 배의 조수로 보낸다. 노인은 혼자 먼 바다까지 나가고 그의 낚시에 거대한 돛새치 한 마리가 걸린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대어를 낚아 배 뒤에 매달고 귀로에 오른다. 그러나 돛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따라오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노인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노인이 가까스로 항구에 닿았을 때 그가 잡은 고기는 이미 상어 떼에 물어 뜯겨 앙상하게 뼈만 남은 후다. 노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언덕 위 오두막으로 가서 정신없이 잠든다. 노인이 잠든 사이 소년은 상처투성이의 손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거대한 물고기와 인간의 끈질긴 대결에서 헤밍웨이가 강조하는 것은 승부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최후까지 위엄 있게 싸우느냐는 것이다. 노인은 스스로 곤경에 몰리면서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적에게 사랑과 동지애를 느끼며 외친다. "아, 나의 형제여, 나는 이제껏 너보다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귀한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 자, 나를 죽여도 좋다. 누가 누구를 죽이든 이제 나는 상관없다." 노인은 물고기와 자신이 같은 운명의 줄에 얽혀있다고 느낀다. 물고기는 물고기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은 어부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규범에 순응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의 육체가 갖고 잇는 시한적 생명은 쉽게 끝날 수 있지만 인간 영혼의 힘, 의지, 역경을 이겨내는 투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지속되리라는 결의이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
출처 : 장영희 에세이 <내 생애 단 한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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