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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생활을 한 지도 이제는 30년이 넘어섰다. 처음 교단에 들어선 곳이 경남 고성군이었는데 당시 고성고등학교는 한 학년에 7학급으로 총 21학급이었으니 시골 학교치고는 제법 큰 학교였다. 당시 내가 맡은 학급의 반장이었던 이윤수 군과 이갑용 군 그리고 몇몇 학생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들도 중년에 접어들어 서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맡은 학급은 이른바 문제아가 몇 명 있는 학급이었고 잦은 결석과 여러 번의 가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는 미혼인 상태였을 뿐 아니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숙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에 비해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런 이유도 이유겠지만 하여튼 자율학습 감독은 자주 했던 것 같다.
야간자율학습이 있어서 밤 9시까지 학생들을 잡아두고 있었으며 매주 매일 조를 짜서 감독하는 선생님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감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초임 시절 야간자율학습 감독으로 학기 초에는 거의 몇 달 동안 밤늦게까지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니, 어느 날 심한 몸살을 앓게 되었는데, 하필 그날은 내가 야간자율학습을 감독하는 날이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교탁에 엎드려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학생들을 잠시 자율학습을 하도록 하고 숙직실에서 몸져 누워 앓고 있었다.
반장인 윤수 군에게 떠드는 사람은 명단을 작성해 두라는 말과 함께 30분만 누워있다가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숙직실로 향했고 비몽사몽인 상태로 누워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서 열어보니 윤수 군이 감기몸살약을 싸 온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의 용돈 중 얼마씩을 모아서 싸 온 것이라고 했다. 한창 성장인기인 그들은 당연히 용돈도 궁했을 텐데, 담임인 나를 위해서 용돈을 각출했다고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 여린 정을 가진 학생들의 얼굴은 지금도 어제 본 듯 생생하다. 이들이 말썽을 부릴 때는 무척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 시골 학생의 여리고 순수한 감정을 마주하다 보면 금방 화가 풀렸다.
요즘 전국 곳곳에서 교사와 학생 혹은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좋지 못한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자주 알려졌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에 가봐야 한지만, 미래를 알려면 그 나라의 학교로 가보란 말이 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이나 나라나 모두 잘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학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양상을 보면 그런 점이 매우 부족한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부모 입장에서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선생님도 열 학생 모두 정이 안 가는 학생이 없다. 하루빨리 학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학교와 가정이 협조하여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화기애애한 풍토가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한 아이를 잘 못 키우면 학교나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겠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가정에까지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부모의 이기심도 함께 닮아 끝까지 부모 앞에서도 금쪽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졸업생이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도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일찍이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에게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으니, 그중 한 가지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 동창회 자리에 나가면 사회적으로 나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동창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들을 부러워한 적이 없다. 그리고 항상 그들에게 내가 일개 서생(書生)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인 것을 부끄러워한 적도 없다. 아니 오히려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많은 졸업생 중에는 이미 사회적으로도 영달하여 큰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소시민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이들이 자랑스럽다. 오늘날처럼 험난한 세상에서 내 졸업생 중에는 아직 한 번도 사회적으로 나쁜 소문이 난 사람이 없다. 모두 사회 곳곳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그들 중에는 나처럼 교단에 서서 후학을 가르치는 사람과 큰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가진 사람, 공직에 근무하는 사람,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 등등 나는 그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들은 모두 나의 졸업생들이다. 맹자가 말하는 천하의 영재를 얻지는 못해도 나의 졸업생을 정직한 사회인으로 많이 배출한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사회풍토가 너무 가파르게 흘러가고 있어 이제는 최후의 보류인 학교 선생의 위치마저 휘청거리는 현실을 볼 때 참으로 우울하기 그지없어서 넋두리를 펼치고 있다고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독자 제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경남 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