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석오균
미나리를 보았다. 미나리꽝의 미나리가 아니고, 팔공산 자락의 명품 미나리도 아닌 영화 <미나리>를 본 것이다. 출연자 가운데 70대 여배우(윤여정)가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조연상을 받게 되어 관심이 솟구친 것이다. 중국 우환 코로나19 여파로 극장에 가기도 그렇고 해서 집에서 다운받아 본 것이다. 달구벌에서 반세기 가까이 살다가 자녀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왠만한 세간살이는 연식이 오래 되어서 처분하고 취사도구 일부 외엔 거의 다 새로 마련했다. 그 중에 TV를 새로 마련한 것은 물어보나마나다. 새 아파트에서 신노혼(新老婚)의 설렘을 만끽할 작정이다.
우리 부부가 몇 차례 시장 조사를 해본 결과를 아들 내외에게 일러 줬더니 전자제품 매장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화면이 크면서 퀄리티가 뛰어난 할인 특판이 있다면서 82인치를 권유하였다. 30평엔 언바란스였다.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나 할까, 완전히 ‘개발에 주석편자요 모기발의 워커’다. 그러나 영화보는 데는 거진 극장에서 관람하는 수준이다. 영화 한 편 대여료가 일만 천원인데 50% 할인받아 감상할 수 있었다. 본전 뽑는답시고 세 차례나 보았다.
이 영화는 정이삭 감독 작품으로 낯선 미국의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에 뒤늦게 합류한 외할머니와 얽힌 시놉시스이다. 폐가 튼튼하지 못한, 그럼에도 무람없는 외손자 데이빗(앨런 김)을 위해 한약을 따려 줬는데 그 고마움도 모른 채 싱크대에 쏟아버리고 오줌을 누어 건네주곤,
"내 쉬 맛이 어때요?”
너무 어이가 없고 능청맞은 표정이다. 아빠가 뒤늦게 알고 벌을 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이 “회초리 가져 와!” 에 놀란 나머지 부러진 막대기를 가져오자,
“다른 걸로 가져와!" 집 밖에 나가 고르고 고른 끝에 허리 뒤에 숨겨 들어온 것은 강아지풀이었다. 백대를 맞아도 자국이 안날 솜방망이였다. 보는 이를 아연실색케하는 재치가 남달랐다. 환한 웃음으로 얼싸안은 할머니의 외손자 사랑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빤들 병치레하는 막내에게 매질하고팠을까? 장모님께 송구스러운 나머지···. 회초리란 어린 나무가 곧게 자라 튼튼한 재목이 되기를 염원하는 상징이 아니던가.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 생각이 오버랩 된다.
회초리 두 개를 마련하였다. 지리산 청학동에 갔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교편으로 구입하고 아들과 딸의 이름을 써서 각자의 방에 걸어두었다. 옛날의 자린고비는 조기를 천정에 매달아 두고 반찬값을 절약했다지만 녀석들은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들이 초등학교 4학년과 3학년일 때의 어느 날 오후였다. 아내와 외출했다가 집에 오니 저녁때가 되었다. 숙제 검사 시간인데 검사받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오후 내내 만화 영화만 보고 있었으니, 숙제 생각이 난 것은 현관 벨소리가 나고 부터였을 것이다. 동생이 먼저 점검을 받으러 큰 방으로 들어갔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나으려나. 매 맞는 소리와 함께 ‘아야!’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린다. 아들 녀석이 슬그머니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아빠, 이거 어때요?” 바지 속에 실과시간에 만든 걸레를 넣어 왔다.
“그거 통하겠니?”
“일단 들어가 볼래요."
엄마가 바로 눈치를 채고, “납작 궁뎅이였는데 각중에 애플 히프네!" 한다.
"엄마 아니 어머니 죄송해요. 앞으론 숙제를 소 풀 뜯어 먹듯 안하고 알뜰살뜰이 할게요.“
“약속 지킬 수 있나?”
"그럼요, ‘남아 일언 중천금’이죠 엄마가 일전에 일러주신 안창호 선생님 말씀처럼 거짓말은 꿈에서라도 안하기로 맹세했어요."
“그래 믿는다. 식사 편식하지 말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쿠션 넣지 않고 ‘애플 히프’ 만들어라!”
여러 해 동안 화분에 식물을 가꾸고 있다. 고무나무와 사프렐라는 수령이 꺾은 한 세기가 가까워 온다. 가히 분재 수준이다. 분재는 수형을 중시한다. 2,3년 마다 분갈이를 하면서 멀쩡한 가지를 자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한 소리 하는 이가 가까이 있다. 그리하나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가 미워서 일까? 매섭게 추운 겨울이 있어 오는 봄의 나뭇잎은 한층 싱싱하고 푸르게 된다. 부모나 교사 그리고 어른에게 야단을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큰 재목이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기‘라면 너무 과장된 묘사이런가? 선현들은 너나없이 역경에 단련되지 않고서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강변하신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귀한 자식은 매 한대 더 때린다'는 말이 생긴 소이연이다.
요즘 제대로 된 매를 맞을 무리들이 보인다. 1960년엔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땐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졌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했다. 지난 ‘4·15 총선’은···. 근래엔 선거가 가까워 오면 코로나로 긍휼한 국민을 위한답시고 공공연히 현금 풀기를 서슴치 않는다. 아이덴티티가 확립된 20대가 번번이 속아 넘어갈 것으로 언제까지 볼려는가? 그 막대한 자금이 어느 세대에 짐이 되는지를 알기나 하는지! 나라 경제와 국방, 외교 및 교육은 엉망에다 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내 자식과 내 자산만 챙기고 불리는 ‘내로남불'을 일삼고, 그보다 더 역겨운 것은 '자화자찬'이다.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 작품으로 미국 오스카 시상식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내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생관계를 다루었다. 감독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휩쓸었으니 작품으로선 비판할 의도가 없다. 다만 그 내용이 평화롭고 단란하고 여유 있는 글로벌 IT 기업 CEO (이선균) 가정에 기택 (송강호) 가족이 잠입해 기생하면서 주인집을 풍비박산 시키는 스토리다. 지금의 나라꼴이 영화 <기생충>과 너무나 흡사하여 쓴웃음이 난다. 전력 문제만 해도 그렇다. ‘최첨단 원자력을 포기하고 나무 때서 전기 만들겠다는 나라'로 전락했으니 이는 누가 봐도 역주행이다. 잘못 하거나 실패했으면 사과하고 바르게 궤도를 수정한다면 국민들은 용서하는 아랑도 베풀 터인데···. 똥고집은 폐가 망신의 지름길이라고 했던가?
영화 <미나리>의 데이빗처럼 강아지풀로도 치유되는 사회를 염원해 본다. 멀쩡하고 평화로운 자유 대한민국에 자신을 백신으로 착각하는 기생충이 잠입하여 ’자유‘를 빼고 국가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미친개‘처럼 날뛴다. 그들에게 적합한 회초리는?
《한국수필》 2001년 7월호
석오균 ogsheog@hanmail.net
《문장》 2012 가을호 등단
·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 문장작가회 이사 · 달구벌수필문학회 이사
· 수필과지성문학회 회장
서울특별시 강동구 강동대로 55길 39, 102동 503호 (성내동, 힐데스하임 올림픽파크)
우 05408 석오균 · 010-6343-1601
첫댓글 서울 생활은 적응 되시나
그냥 안부만 전하네
옛날에는 매년 회충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했는데, 지금은
이 나라를 좀 먹는 기생충들을 박멸하는 것이 급선무일세.
자네 없는 대구는 텅 빈 기분이었다.
허나 이제 자네 글을 대하니 자네를 본 듯 갈증이 해소되네.
늘그막에 신혼 기분 낸다니 참 듣기 조오타!
차분하게 회초리 치는 모습에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어이든동,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마라! 100살 까지는.............
서울 가서 어찌 사나 싶더니 글 반갑게 읽었다
팔공산 자락에서 오래동안 잘 살았는데 서울 가서도 미나리 처럼 잘 살겠지 생각했다
서울에도 친구가 있으니 잘 어울리고 소식자주 전해주기바라네
자네 회초리에 오랜만에 정신이 든다
올린 글 보니 얼굴 본듯 반갑네.
대한민국엔 현재 기생충같은 존재들이 많고 회초리를 맞아야 할 인간들이 설치고 있지.
자네 글에 공감하네.
좋은 인성을 가진 자네, 어딜 가나 환영 받을 것이니까 서울생활도 잘 하리라
여겨지네. 어디서나 잘 지내게.